12주간의 묵상
제3주간 여섯째 날 (7.13.연중 제14주간 금요일) : 에제 34 11-16
본문 : 좋은 목자 예수 그리스도(18)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3 그들을 민족들에게서 데려 내오고 여러 나라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의 산과 시냇가에서, 그리고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14 좋은 풀밭에서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은 그곳 좋은 목장에서 누워 쉬고, 이스라엘 산악 지방의 기름진 풀밭에서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좋은 목자 예수 그리스도(18)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좋은 목자 예수님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매고 다니는 당신의 양을 찾아서 구해 내셨습니다. 세상의 것들 썩어 없어질 것들을 불나방이 되어 쫓아갔습니다. 궁핍하여 허기지고, 과로로 피곤하여 죽어가는 양을 찾아내어 당신 품에 안으시고 어루만지며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여 살려 주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대학교 2학년 겨울 방학에 제주 성안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을 때 목사님께서 자매님은 기도를 언제 얼마큼 하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밥을 먹을 때 잠깐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는 정도라고 대답하였다. M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며 앞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신앙을 키워가도록 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대학졸업 후 효돈 중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는데, 하루는 함께 근무하던 K 선생님께서 서귀포 제일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해 오셨는데 설교가 아주 좋다면서 한 번 같이 가 볼 것을 권하였다. 그 목사님이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제주 성안 교회에서 오신 M 목사님이라고 말씀하였다. 세례 받을 때 교리를 가르쳐 주신 M 목사님! 깜짝 놀랐다. 교사 발령을 받은 후에는 주말 마다 친구들을 만나서 놀러 다니느라 주일도 빠질 때가 많았는데 예수님께서 K 선생님을 통해 M 목사님의 사목하시는 교회로 불러 주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서귀포 제일 교회로 나가기 시작하였고, 효돈 중에서 근무하는 2년 동안 신앙의 뿌리를 내릴 수가 있었다. 그때 K 선생님과 함께 중고등부 교사회에서 봉사하였는데, 하루는 한라산 기도원에 가게 되었다.
저녁부터 찬양을 하고 뜨겁게 기도하고 설교를 듣는 시간이 지난 후 자유기도 시간이 되었다. 많은 분들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나는 정신이 멀쩡하여 잠은 오지 않는데 기도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성찰하여도 남에게 피해를 준 사실도 없고 자기 나름대로 지금까지 열심히 정직하게 살았는데 특별히 죄를 지은 것이 없으니 회개할 것이 없었다.
새벽녘이 다 되어 가는데 어떤 영상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한 명을 왕따 시켰던 장면! 친구는 교실 뒤편 가운데 의자 위에 앉아 있고, 다른 친구들은 돌아가며 친구의 머리 위에 침을 뱉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나도 그 친구에게 침을 뱉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입에서 주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친구를 욕하고 침 뱉고 따돌렸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말이 나오면서 눈물이 나오고, 또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 젖을 빨며 젖이 나오지 않는다고 어머니의 젖을 힘껏 깨물어 어머니가 아야~ 하며 소리 지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도 나의 잘못이었다. 또 고등학교 3학년 졸업 시험 때 커닝을 하여 선생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장면도 떠올랐다. 아침 될 때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릴 적 행동들이 떠오르면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며불며 회개를 하였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밥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에 조용한 개울가를 찾아 가 큰 바위 위에 걸터앉아 하늘의 구름과 불어오는 바람과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취하여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계속 회개할 거리를 찾아가며 기도하였다. 모든 것이 새롭고 힘이 있고 생기 있게 말을 걸어왔다. 그때가 내 생애 첫 회개였다.
80년 1월 5일 결혼하여 서울로 왔다. 서울에 오면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꼭 나가고 싶었다. 개봉동에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까지는 가까웠다. 버스 한 번만 타면 갈 수 있다.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에 푹 빠지게 되었고, 남편도 나와 함께 순복음 교회에 몇 번 나갔다. 그러다가 서초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역삼동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방배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방배동 성결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장거리 통근을 하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신앙생활이 게을러졌다.
첫 아이가 8개월쯤 되었을 때 가성 콜레라에 걸려 다 죽게 되자, 울며불며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우리 아이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셨던 분이 상도동 감리교회 신자였고, 신앙심도 좋아서 그분을 따라 상도동 감리교회에 나갔다.
85년 광명에 집을 사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허름한 집을 사서 완전히 개축하는 공사를 시작하게 되자 아이들 둘은 당분간 제주 시댁으로 보냈다.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일꾼들의 수발을 들어가며 우리 부부가 3개월 동안 집수리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때 집을 짓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많은 기술이 필요한 지를 체험하였다. 석공, 문짝, 전기, 수도, 창호, 페인트, 보일러, 벽돌공 모든 기술자를 개인적으로 섭외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뒷수발을 들어야 했다. 특히 기술자들은 낮에 일을 하고 우리가 퇴근하는 저녁이면 집에 가지 않고 술상을 벌여서 그 치다꺼리가 힘이 더 들었다. 이렇게 3개월의 공사를 마치고 새집에 들어가니 기분을 좋았지만 내 몸이 망가져 버렸다. 전에 없던 병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덜 들여서 집수리를 하려던 어리석음…
86년 3월 안양 서여중에 근무하면서 막내를 낳았다. 광명에서 안양까지 출퇴근 하는 것이 힘이 들었는데 더욱 힘이든 것은 세 아이가 번갈아 가며 아팠다. 도무지 나의 힘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서 주님께 의탁하며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였다. 점심식사는 금식하였고, 그 시간에 옥상 상담실에 올라가 성경을 창세기부터 읽으며 기도하고 있던 때였다.
그 당시에는 다니엘서를 읽고 있었는데 하루는 너무나 멋진 꿈을 보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은 올레가 아주 좁고 길다. 집 뒤 울타리에는 큰 동백나무가 세 그루 있다. 동백나무는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 놀이터가 되어 주었고, 겨울에는 동백꽃이 새빨갛게 피어 아름다움을 주었다. 동백나무 기둥에 새끼줄을 묶어서 항아리와 연결시켜 놓으면 비가 올 때마다 빗물이 모여서 그 물로 목욕하고 빨래도 하였다. 또 잘 익은 동백 열매는 따서 기름을 짜서 머리 손질하는데 쓰곤 하였다. 동백나무 아래에서 흙과 열매와 돌멩이를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내겐 잊을 수 없는 추억나무인 것이다.
고향집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복면한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온다고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다. 나는 놀라 숨을 곳을 찾았지만 그들은 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냈다. 숨을 헐떡이며 광속으로 들어갔는데 그곳까지도 그들은 나를 붙잡으러 왔다. 급기야 개구멍으로 난 좁은 구멍을 통하여 집 뒤에 있는 동백나무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동백나무 밑에서 나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두렵고 무서워서 나무 위로 계속 올라가는데 동백나무가 내가 올라가면 그만큼 더 커지는 것이다. 나무가 계속 커지고 나는 하늘을 향하여 계속 올라가고… 끝없이 반복 되는데 갑자기 나무가 뚝 잘리면서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들은 역시 나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치고 있다. 난 큰 목소리로 주니임~하고 소리쳤다. 순간 집안 식구들이 놀라 모두 일어날 정도였다. 그런데 더 이상 나무가 커지지 않고 멈추는 순간 동쪽 하늘이 환해지면서 구름 속에서 예수님이 광채에 휩싸인 채 큰 손을 뻗으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예수님의 장엄한 모습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거룩하였다. 꿈에서 깨었는데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이때 꿈속에서 뵌 주님과의 만남은 잊을 수가 없다.」 주님은 수없이 많은 유혹과 시련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도록 지켜주셨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다니엘서 7장을 읽는데 지난 밤 꿈속에서 뵈었던 영상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 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다니 7,9-10)
87년 광명여고로 전입하였고 그해 7월 29일 성당으로 가게 되었다. 나라에서는 88서울올림픽 개최 준비로 열기가 뜨거웠다. 88년 4월 2일 세례 후, 열심히 가톨릭 신앙을 익혀갈 무렵이다. 역시 꿈속에서 십자가를 높이 들고 있는 예수님과 묵주를 손에든 성모님을 뵈었다.
「나는 혼자서 매우 험준한 길을 가고 있었다. 낭떠러지와 같은 길을 가야하고, 깊은 계곡을 건너야 하고, 성난 파도 위를 걸어야 하는데 눈을 들어 쳐다보았더니 오른 쪽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고, 왼쪽에는 성모님이 묵주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따라오라고 하였다. 예수님과 성모님을 바라보며 가고 있으면 공중에 뜬 것과 같은데 가는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가다가 밑을 내려다보면 역시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길이 펼쳐지는 것이다. 위험에 처할 때마다 고개를 쳐들면 주님과 성모님이 웃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십자가와 묵주를 보여주셨다. 한참을 가다가 밑을 내려다보니 평탄한 길이 쭉 뻗어 있었고, 예수님과 성모님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주님과 성모님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이 길로 계속가면 길을 잃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곧은길로 쭉 걸어갔는데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이 나왔다.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는데 전광판에 나의 일생 스토리가 쭉 흘러갔고 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은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나는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내가 앉아있을 자리로 갔는데 남편은 이미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신비로운 꿈이다. 그 꿈은 30년 동안 나의 신앙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려운 고비마다 예수님과 성모님이 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어주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요 추구해야 할 진리이며 평생 갈망해야 할 영원한 생명이다.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영성신학(12주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의 죄와 하느님의 진노 : 나의 교직생활 후반기(21) (0) | 2018.07.18 |
---|---|
예루살렘의 역사 : 나의 교직생활 전반기(20) (0) | 2018.07.16 |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17) (0) | 2018.07.12 |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16) (0) | 2018.07.11 |
새 계약(15) (0) | 2018.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