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신학(12주간 묵상)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16)

기도하는 어머니 2018. 7. 11. 23:18

12주간의 묵상

 

3주간 셋째 날 (7.10.연중 제14주간 화요일) : 이사 49, 1-6

 

본문 :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의 빛으로 세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16)

 

주님의 종인 제2이사야는 바빌론으로 유배를 왔다. 그는 예언자로서 억압받는 동포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먼저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위로를 받아야만 했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다. 고통 중에 하느님의 위로를 받았던 사람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 사려 깊은 제자처럼 그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를 전달한다. 이 일을 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의심을 품고 적대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모욕을 받으면서도 그는 하느님께 계속 충실함으로써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자기에게 동의하는 세력을 더 키울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꿋꿋하게 활동을 계속한다.

 

주님의 둘째 종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볼 수 있다. 2이사야가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하면서 고통을 받는 고달픈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고 있다면, 신약의 그리스도는 로마의 속박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물리적으로 해방시키는 것보다 그들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게 할 메시아적 사명이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세상에 그대로 펼치셨다. 그리고 당신의 후계자인 제자들에게도 당신의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을 수 있게 하였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하느님은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영적인 자유를 누리게 하고 싶으셨다. , , , 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류에게 참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사랑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고 싶은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700년이 지난 후에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계시할 적절한 때를 계속 찾고 계셨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한 위격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성부의 뜻을 실현하고자 강생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뜻과는 다르게 하느님께서는 강제적으로 구세주를 세상에 보낼 수는 없다. 물론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전권을 가진 하느님이시기에 인간의 동의 없이도 구세주를 내려 보낼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 인내와 질서의 하느님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동의를 받으셔야 했다.

 

하느님의 뜻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아버지의 계획에 동참할 동정녀를 찾고 계셨다.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당신의 뜻에 협조할 인간을 찾고 또 찾았을까? 물론 구약시대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백성은 이스라엘 밖에는 없었기에 이스라엘 백성 가문에서 또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이어줄 가문에서 동정녀를 찾아야 한다.

 

1이사야의 예언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여인들 가운데서 특히 다윗 가문에서 구세주가 태어나야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메시아 구세주를 잉태할 수 있는 여자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 않았을까? 얼마나 오랜 세월 또 얼마나 많은 처녀들을 만나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였을까?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여인들을 잘 알고 있다. 어느 날 주님의 사자, 가브리엘 대천사를 나자렛 고을의 한 처녀에게 보낸다. 그는 요셉과 약혼하였기에 하느님의 뜻을 거부할 수도 있다. 물론 원죄 없이 잉태하는 특은을 입었고 흠과 티가 없는 동정녀이긴 하지만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마리아가 거부를 하면 또 다른 마리아를 찾기 위해 하느님은 인내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마리아는 마음을 열고 영으로 깨어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천사가 마리아의 영혼에게 말을 건넸다. 마리아는 몹시 놀라며 두려움에 휩싸여 대답도 못하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천사가 다시 말을 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아들을 낳는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하느님의 아들? 다윗의 왕좌? 야곱집안을 영원히 다스릴 분? 마리아는 순간 조상들로부터 전해들은 모든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열다섯 살의 어린 마리아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신앙으로 배워서 잘 알고 있다. 또한 그분의 뜻이라면 거부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요셉과 약혼한 사이가 아닌가? 만약 임신한 것이 드러나면 요셉에게는 얼마나 민망한 일이 될 것이며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일 것이 아닌가?

 

마리아는 다시 천사에게 질문한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한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래도 마리아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 평생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엘리사벳의 임신 사실을 알려준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하자, 마리아는 확신에 찬 대답을 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피앗)” 순교를 각오한 대답이다.

 

마리아의 대답을 들은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천사는 단 한 번에 마리아의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리아는 신중(곰곰이 생각)하였다. 그리고 섣부른 대답을 해서도 안 된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분은 하느님이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느님의 뜻에 협조하는 것일까? 수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각오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를 신앙의 모델, 최초의 순교자, 인류 구원의 협력자로 공경하는 것이다.

 

한 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하는데도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대학교 4학년 가을, 졸업과제를 제출하기 위하여 학과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는데 벤치 위에 앉아있던 남자가 다가와 요즘 시간이 어떠냐? 내일 시간이 되면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시간이 좀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내일 몇 시에 어디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다. 그 전에도 가끔 만난 적이 있지만 오늘처럼 심각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군복무를 마치고 그는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나는 졸업학년이다. 나이가 두 살 연상이지만 군복무 3년을 마치고 나니 나보다 후배가 된 것이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후 그는 나를 정처 없이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녔다. 산과 바다를 누비며 별다른 이야기도 재미도 없이 하루를 허비하였다. 난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자치 방에 돌아오자마자 피곤하여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화장실에 가려고 집 밖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곳에 그이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난 너무나 놀라서 왜 아직도 이러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느냐?” 고 물었다. 만나서 별로 할 이야기도 없는데 다시 만나서 무얼 하려느냐?”고 대답하였다. 오늘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도무지 꺼낼 수가 없었다. 만일 내일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으면 나는 죽을 수도 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뚜벅뚜벅 떠나갔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볼 일을 보고 올라왔는데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의 집안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홀어머니에 밑으로 동생이 넷이다. 열일곱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장남인 그가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잠은 오지 않았고 엎치락뒤치락 새벽까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만약 그를 만나주지 않아서 그가 죽음을 선택한다면 나의 꼴은 무엇이 되겠는가? 그리고 그 집안은 어떻게 되겠는가? 아들과 오빠, 형님만 바라보고 있는 그의 가족들 생각으로 고민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였다.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하였다. 그래 불쌍하니 한 번만 더 만나보자. 다음날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는 여전히 무거운 얼굴로 별로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데리고 방파제를 거닐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할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오늘도 아무 말이 없으면 다시 만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비웠다.

 

그런데 헤어지기 바로 직전에 나를 기다려 줄 수 있느냐?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꿈이 있다. 그리고 성실하게 노력하여 좋은 가정을 만들 각오는 되어 있다.” 얼마나 떨리며 그 이야기를 했던지 그의 심장 고동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그럼 뭐야 연애가 아니라 결혼을 하자는 이야기인가? 순간 당황하여 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의 침묵은 나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 실력과 노력만 있으면 되었지 돈은 벌면 되는 것이 아니냐? 지금 돈을 가진 젊은이는 자기가 노력하여 번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들인데 그것이 오래 가겠느냐?” 기다린다는 말은 하지 않고 그렇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헤어졌다.

사실은 한 남자를 선택하는데도 이렇게 긴장되고 떨리고 두려웠다.

 

성모님의 피앗(그대로 이루어지소서)은 처음부터 순교를 각오한 것이다. 그리고 아들 예수님을 위해 한 생애를 희생하겠다는 결심이다. 자신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생각하였다. 태어날 아기가 하느님의 아드님이 된다는 것은 고난 받는 주님의 종으로써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겪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닥칠 고난과 고통을 알고서 하느님께 대답을 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구세주,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는 데는 마리아의 깊은 고뇌와 마음의 순교가 있었다.

 

훌륭한 인물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이 자녀들을 훌륭하게 만든다.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기 전에 저 분을 낳아 젖을 먹여 키우신 분은 어떤 분이실까? 훌륭한 인격체 뒤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찾아보면 역시 그렇구나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가진 하느님이며 사람이시다. 예수님을 참 하느님과 참 사람으로 키우신 어머니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의 빛으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