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간의 묵상
제3주간 다섯째 날 (7.12.연중 제14주간 목요일) : 요한 3,16-18
본문 :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였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였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17)
오늘은 2018년 음력으로 5월 29일이다. 18년 전 2000년 6월 29일(양력) 저녁의 일이다. 남편은 담배를 사서 온다면서 저녁 식사 후 밖으로 나갔다. 집에는 나 혼자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물 묻은 손을 닦으며 전화를 받았다.
동서 : 형니임~~
나 : 응 그래 ~~무슨 일이야~~
동서 : 지수 아빠가~~
나 : 지수 아빠가 왜~~
거의 부르짖음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나도 너무나 당황하여 목소리가 떨렸다.
동서 : 지수 아빠, 튀니지에서 사고가 나서 병원으로 실려 갔데~요.
나 : 상태는 어떻다고 하는가?
동서 : 잘 모른데요~
청천벽력, 기절초풍할 일이다. 3일 전에 튀니지 출장을 다녀온다며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했었다. “형수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이번에 출장 다녀오면 맛있는 것 사 드리겠습니다.” 라는 것이 마지막 말이 되었다. 삼촌이 무사히 잘 다녀오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동서와 통화를 마치고 맥없이 앉아 있는데 남편이 담배를 사들고 왔다. 나의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다그쳤다. 남편 성격이 불과 같아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혈압이 높아져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남편을 진정시켰다. 너무 놀라지 말고 천천히 이야기를 듣고 냉정을 찾아야 한다고 안심을 시키고 방금 동서와 전화했던 내용을 말하였다.
남편은 더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동서에게 전화를 하였다. 동서는 맥이 빠져서 그대로 앉아 있었는지 남편은 전화를 끊은 후 회사로 전화하여 지금 상태가 어떠냐고 계속 질문을 하였다. 회사 측에서는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라고 말하였다. 앞이 캄캄하여 보이는 것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서둘러 부천으로 달렸다. 밤 열 시가 조금 지났지만 아침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삼촌은 우리 집안의 기둥이다. 실력이 있고 일을 잘하여서 회사에서도 촉망을 받았다. 대학교수가 되고 싶은 꿈도 가진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다. 젊은 나이였지만 회사에서는 이사였다.
이번 출장은 튀니지에 건설하고 있는 왕궁경기장 스페이스 프레임의 진행과정을 살펴보고 5개국이 합작하여 건설하는 것인 만큼 5개국 대표들과 관계자들 앞에서 브리핑을 하기 위하여 떠난 것이다. 시동생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건축기사 자격증을 받고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수재였다. 인천국제공항, 금강산에 있는 평양예술극장, 전주월드컵 경기장 등 2002 월드컵 축구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국내 축구경기장을 건설하는데도 공헌하였다.
2000년 초부터 남편은 동생에게 올해는 밀레니엄 징크스가 있으니 해외 출장을 자제하고 조심해야 한다며 주의를 주었다. 시동생은 형님을 아버지처럼 형수를 어머니처럼 의지하고 의논하였고 잘 따랐다. 아내에게도 딸과 두 아들에게도 남편으로서 자상하고 아버지로서 인자하였다.
그런 그가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사고를 당하여 지금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분명하지 않으니 남편과 나는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부천에 갔더니 아이들은 자고 있었고 동서는 정신이 나가 있었다. 남편은 회사 측 사람을 불러 사건 경위를 알려달라고 재촉하자 현지 동행한 회사원을 통하여 알게 되었는데 추락 사고였고, 사고 직후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이동 중에 운명하였다는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럴 수는 없어. 거짓말이야. 소식이 잘못 전해진 거야. 수없이 많은 상상을 하며 아침을 맞았다.
남편은 위기 상황이 오면 침착해진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 누이들에게, 일본에 있는 작은 동생에게 침착하게 전화를 하였다. 오전 내로 가족들이 모두 올라 왔다. 서로 말도 없이 얼굴을 쳐다보면서 황망해 하였다. 나도 정말 할 말을 잃고 마음속으로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믿을 수 없는 일이야 하며 하느님께 꼭 살려달라고 탄원을 하였다. 모두가 넋을 잃은 상황에서 시간은 흐르고 있다. 회사 측에서 사장과 직원들이 왔다. 죄송하다며 사장은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빈소를 꾸려야 하는 것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데 꽃다운 나이다. 아직 봉오리가 활짝 피어나기 전이다. 그의 역량과 실력은 이제 피어나기 시작하였을 뿐이다. 39세의 젊은 나이, 동서는 38세, 큰 조카 10살, 둘째 7살, 막내 6살~~ 의지할 곳 없는 가족을 두고 떠나야 하는 본인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그날 저녁 난 안양으로 돌아왔다. 어안이 벙벙하고 정신이 혼미하여 할 일을 잊고 있었다. 학기 중이었기에 학교에는 연가처리를 부탁하였다. 다음 날 새벽에 성당으로 갔다. 기도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멍하였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고백소로 들어갔다.
“신부님 여차저차한 일이 생겨 정신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저의 집안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우리 집의 기둥이며 희망입니다. 하느님, 너무 야속합니다.” 란 말과 함께 엉엉 울고 말았다. 신부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자매님, 마음을 진정하세요. 물론 갑작스런 사고로 온 가족이 황망하고 정신이 나간 줄은 알지만 그런 사고를 겪지 않는 가정이 있다면 한 번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신앙이 있다는 자매님이 이렇게 정신 줄을 놓고 있으면 나머지 식구들은 누구에게 의지하며 위로를 받겠습니까? 마음을 진정하고 식구들을 위로하고 기도하십시오.” 라며 사정을 듣고 난 후 사죄경을 주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정신이 났다.
주님! 저와 함께 병원으로 갑시다.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빈소에는 시동생 영정사진만 걸려 있고 나머지 식구들은 미사에 참례하려고 성당으로 갔다. 난 영정 사진에 있는 시동생을 똑바로 쳐다보며 “삼촌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정말 믿을 수가 없다. 당신의 시신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겠다.” 며 울부짖었다. 그런데 고요한 가운데 삼촌의 음성으로 말을 걸어왔다. “형수님, 침착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일이 잘 해결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제 육신은 세상에서 떠났지만 저는 하느님 안에 살아있습니다. 어머니와 집사람, 형님과 누님들, 아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 중에 가족들이 돌아왔다. 내가 기도하고 있으니 온가족이 영정 앞에 앉아서 울기 시작하였다. 우리 집에는 나와 그 당시 순복음 교회 다니는 큰 시누가 기도를 잘하였다. 그래서 큰 시누에게 소리를 내어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는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기도하였다. 이어 남편, 어머니, 작은 시누가 기도를 이어나갔다. 기도 후 신비하게도 모두가 차분해졌다. 남편은 우리 모두 부화뇌동하지 말고 마음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자며 용기를 주었다.
우선 아는 지인들과 친척들에게 부고장을 내고 가톨릭대학교 부천 성모 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받았다. 일본 유학 중이던 막내 시동생도 귀국하였다. 갑작스런 부고를 듣고 전국에서 친인척과 친구들이 몰려왔다. 시신이 튀니지에서 오는 데는 여러 날이 걸렸다. 시신이 비행기에서 내려 병원에 도착하였는데 관 두껑을 열고 시신을 확인할 때까지는 죽음이 믿어지지 않았다. 가족들이 입회한 자리에서 장례사가 관 두껑을 열고 시신을 확인시키는데 그때는 정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나도 거의 미친 사람처럼 울었다. 많은 이들은 형수가 왜 저렇게 울고 있느냐고 의아할 수도 있다.
우리가 결혼하여 서울로 올라 올 때 시동생도 대학입시를 보기 위하여 함께 왔다. 단칸 셋방에서 함께 살면서 시동생은 대학 입시를 응시하였고, 한양공대에 최종 합격하여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줄 곳 같이 살았다. 남편은 시동생을 아들과 같이 여겼고, 나도 그를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시때때로 닥치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시동생은 나를 형수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하여 늘 누나라고 불렀다. 조카가 태어날 때까지는 누나라고 부르겠다고 선언을 하였다. 내가 월급을 받으면 당시 생활비로 3만원씩을 주었다. 요즘 삼십 만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 갔다 오고 대학원을 하면서 회사에 다닐 때까지 한 집에 살았으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
내가 아이를 낳을 때 마다 꼭 옆에 있어주었다. 우연일지도 모르나 신기한 일이다. 막내는 삼촌이 군대에 갔을 때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 휴가 오던 날이 아이를 낳는 날이었다. 또 아들이 커갈 때에 함께 놀아주고 귀여워해서 아들은 작은 아빠를 아버지보다 더 좋아하였다. 아들이 사춘기가 되어 말을 듣지 않고 무조건적 반항을 할 때에도 시동생은 아들 편이 되어주었고 응원해 주었다. 나에게도 좋은 시동생이었다. 남편이 취업이 안 되어서 대학 강사로 보따리 장사를 할 때 “형수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렵지만 지금은 조카들 교육에만 신경을 쓰십시오. 노후에는 제가 큰 집을 지어서 함께 살면 됩니다. 그리고 어려움 있으면 말하십시오.” 라며 위로하였다.
그렇게 함께 살아온 세월이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이다. 시동생의 죽음은 내 인생에서 가장 뼈아픈 고통이었고 크나큰 충격이었다. 남편도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여 혼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시어머님은 아들의 죽음에 고통스러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년간을 부천에서 동서와 살았다. 그리고 매월 초하루에는 삭망을 지내었고 1주기가 되어서야 탈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시동생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근본 문제를 생각하게 하였다. 그래서 하느님께 시동생의 죽음이 갑자기 닥친 원인을 알고 싶어 매일미사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100일 미사를 봉헌하며 그레고리오의 영원한 안식을 청하였다. 그런데 100일 후에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렇게 200일, 300일 하다가 1000일 미사를 드려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일 년 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부나 어떤 일이 있어도 미사를 빼먹지 않았다.
1000일 미사가 다 되어갈 즈음, 성전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있었는데 온 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있는데 정말 아주 가까이에서 시동생의 평상시 음성이 들려왔다.
“형수님,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 매일 미사를 드리고 있는데 저는 매 미사 때마다 형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도 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가족들을 떠나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수님, 저는 하늘에서 우리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형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저의 집 사람과 아이들을 부탁합니다. 부족함이 있어도 먼저 전화하고 기도하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아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위로의 말이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그는 나의 생명이다. 나는 그와 함께 세상에서 39년을 살았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 죽은 것만 탓하지 말고 그런 인격을 가진 인물이 너희 곁에서 함께 살고 있었음에 감사하여라.” 아하 그렇구나. 인간의 삶과 죽음, 불행과 행복은 주님의 것이구나. 우리의 삶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 예측 불가능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저녁에는 손자 가브리엘과 아들 요한과 함께 부천에 가서 시동생 그레고리오의 기일을 지낸다. 큰 조카는 스물여덟, 둘째가 스물다섯, 막내 조카가 스물넷, 동서가 쉰여섯, 당시에 사돈님 내외도 50대였으나 이제 70대가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였다. 시동생은 성공회에서 성가봉사를 하였고 하느님을 믿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을 때 엄청 기뻐하며 선택을 잘하였다고 박수를 쳐 주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고,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믿고 있는 한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다.
'영성신학(12주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루살렘의 역사 : 나의 교직생활 전반기(20) (0) | 2018.07.16 |
---|---|
좋은 목자 예수 그리스도(18) (0) | 2018.07.13 |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16) (0) | 2018.07.11 |
새 계약(15) (0) | 2018.07.10 |
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에 있으니(14) (0) | 2018.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