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신학(12주간 묵상)

무소부재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13)

기도하는 어머니 2018. 7. 8. 20:51

12주간의 묵상

 

3주간 첫째 날 (7.6.연중 제13주간 금요일) : 시편 139,1-16

 

본문 : 무소부재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1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살펴보시어 아십니다.

2 제가 앉거나 서거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제 생각을 멀리서도 알아채십니다.

3 제가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당신께서는 헤아리시고 당신께서는 저의 모든 길이 익숙합니다.

4 정녕 말이 제 혀에 오르기도 전에 주님, 이미 당신께서는 모두 아십니다.

5 뒤에서도 앞에서도 저를 에워싸시고 제 위에 당신 손을 얹으십니다.

6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한 당신의 예지 너무 높아 저로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7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8 제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당신 계시고 저승에 잠자리를 펴도 거기에 또한 계십니다.

9 제가 새벽놀의 날개를 달아 바다 맨 끝에 자리 잡는다 해도

10 거기에서도 당신 손이 저를 이끄시고 당신 오른손이 저를 붙잡으십니다.

11 “어둠이 나를 뒤덮고 내 주위의 빛이 밤이 되었으면!” 하여도

12 암흑인 듯 광명인 듯 어둠도 당신께는 어둡지 않고 밤도 낮처럼 빛납니다.

13 정녕 당신께서는 제 속을 만드시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습니다.

14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

15 제가 남몰래 만들어질 때 제가 땅 깊은 곳에서 짜여질 때

제 뼈대는 당신께 감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16 제가 아직 태아일 때 당신 두 눈이 보셨고 이미 정해진 날 가운데

아직 하나도 시작하지 않았을 때 당신 책에 그 모든 것이 쓰여 졌습니다.

 

저는 당신 앞에 벌거숭이입니다. (13)

 

12주간의 묵상은 하느님께서 펼쳐주신 인생의 무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나의 영혼 저변에 깔려서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어떻게 조명할 수 있겠습니까? 정녕 말이 제 혀에 오르기도 전에 주님! 제가 아직 태아일 때 당신 두 눈이 보셨고 정해진 날 가운데 아직 하나도 시작하지 않았을 때 당신 책에 그 모든 것이 쓰여 졌습니다. 현미경처럼 망원경처럼 저를 들여다보시는 주님! 제 삶의 과거, 현재, 미래는 당신의 섭리 안에서 퍼즐처럼 엮어졌습니다. 이미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낱낱이 아시기에 당신 앞에 벌거숭이가 될 수밖에때론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남의 것을 신비롭게 들여다보듯이지나온 삶을 돌아봅니다.

 

날짜가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전학생 한 명을 교실로 데리고 들어와 시내에서 전학 온 학생이라며 소개하였다. 마침 내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선생님은 내 옆자리를 전학생 자리로 정해주었다. 그는 겉보기에도 깔끔하고 야무지고 영리해보였다. 시골뜨기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든 부분에서 똑똑하고 질문에 대답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였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어려운 나눗셈 문제를 내주었다. 우리 가운데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지만 전학생인 짝꿍은 용감히 앞으로 나가 칠판 위에 문제를 풀어 나갔다. 자릿수가 많았기 때문에 풀이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긴장을 하였던지 그의 바지 밑으로 물(오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태연하게 문제를 풀어나갔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오히려 얼굴이 붉어지면서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으면 하였다. 선생님은 문제풀이가 끝나자 그를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갔고 한참 후에 교실로 들어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그의 비밀을 감추어 준 담임선생님이 감사했고, 그날 이후 그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그와 친하고 싶었고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 꼬마가 이성에 눈이 뜨이는 첫 징조였다.

 

공부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고 노는 데만 집중하던 내가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아침 교회 종소리가 울리거나 닭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일어나 공부하였다. 책 읽고 공부를 하는 것에 취미가 붙으니 학교생활이 즐겁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와 함께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늘 경쟁을 할 수 있었다. 중학교 입학 성적에서 그는 1, 나는 6등을 하였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영어와 수학을 가르쳐 주겠다는 이웃집 오빠가 있었다.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오빠가 중학교에서 배울 영어, 수학을 재미있게 가르쳐 주어서 1학년 전 과정 선행학습을 단기간에 하였다. 덕분에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 여학생들 중에는 항상 1, 2등이었다. 3때 우열반을 편성하여 그와 같은 반에서 공부하였다. 예체능을 제외한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등 도구교과 성적이 좋았다.

 

중학교 졸업성적은 좋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은 불가능하였다. 당시 연로하신 할머니 두 분(아버지를 낳아준 분, 길러주신 분)이 계셨고, 동생들이 많아서 학업을 계속할 형편이 못되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 부산 어머니 집에 가서 살면서 취직하고 야간 고등학교에 다닐 마음을 먹었다. 그 해 겨울 부산 국제시장에 있는 어린이옷을 만드는 봉제 공장에 취직하였다. 한 달 동안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였다. 먹는 것도 어른 들이 먹다 남은 것을 먹어야 했고, 설거지를 비롯한 어른들 치다꺼리를 혼자 했다. 한 달 죽도록 일을 하여 번 돈은 단돈 삼천 원월급봉투를 받았는데 눈물이 나왔다. 인생에서 가장 춥고 배고프고 힘든 겨울이었다.

 

하루는 고모가 모회사 비서직 취업 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월급을 8천원 준다기에 들뜬 마음으로 회사를 찾아갔다. 한나절 기다려서 만난 사장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취직할 수 있다며 일언지하 면접도 못하고 돌아왔다.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하였던지 당시 유행하던 월남치마와 검은 코트를 입고 영도다리를 울면서 건너고 있던 중에 제주 고향 어른을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나를 보는 순간, “000아니가? 네가 웬일이냐? 어떻게 된 것이냐?”하면서 물어보는데 눈물이 와락 쏟아졌고, 그길로 돌아와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이튼 날 아버지께서 전보를 보내왔다. 귀향하여 고등학교 입학하라.” 간단한 전보였는데 얼마나 반갑고 눈물이 나던지 모든 짐을 챙겨서 당장 제주로 내려갔다. 영도다리에서 만났던 그분이 고향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딸이 부산에서 울면서 다닌다고 말을 하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보낸 전보였다. 그분은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준 천사였다. 동일계 고등학교 진학은 입학시험이 없이 2월말까지 등록금만 납입하면 되던 시절이어서, 2월말에 가까스로 입학금을 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은 꿈만 같았다. 다시 그와 같은 공간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기뻤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커졌다. 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40분 정도 거리였기 때문에 등하교 시간에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와 만나면 늘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에 등하교 길이 지루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를 만나지 못하는 날은 서운하였고, 학교 울타리 내에서 그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였다.

 

당시 대입 제도는 1차 예비고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많은 친구들이 예비고사에 합격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였다. 나는 일손이 바쁠 때는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야했고, 동생들이 많아서 동생들을 보살피고 자잘한 살림살이를 하였기에 공부시간은 항상 부족하였다. 그래서 아침 일찍, 등하교 시간, 밭에서 김을 매거나 집안 청소를 할 때면 늘 쪽지에 중요한 것을 적어서 외웠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틈새시간을 활용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전교 2등을 하였다. 물론 1등은 그 친구였다. 그는 아무도 넘나다 볼 수 없는 실력과 인성을 가진 우수학생이었다.

 

1 겨울 방학 때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위기가 또 찾아왔다. 등록금을 낼 수 없다며 학교를 중퇴하라고 하자 난 또 모든 짐을 꾸리고 부산으로 나갈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나의 처지를 전해들은 담임선생님()께서 가정방문을 하여 장학금을 계속 줄 터이니 학업을 계속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담임선생님에게 설득 당하였고, 부산에 나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2학년에 진급하여 공부를 계속하였다.

 

3때는 교장선생님이 교장실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는데 여학생은 나 혼자였다. 학교 선생님들도 나의 실력을 인정해 주었고 대학교 진학은 하지 않아도 예비고사는 보라며 격려해 주었다. 그 당시의 선생님과 친구들은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였다. 그들의 도움으로 예비고사에 합격하는 영광을 얻었다. 예비고사에 합격하고 보니 대학교에 꼭 가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부모님께서는 우리 형편에 고등학교 졸업도 대단한 것이라며 대학진학은 어림없다고 하였다. 내가 대학 졸업하여 취직하면 동생들 책임을 지겠다고 장담하여도 대학 입학은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제주교대 시험을 보게 되었고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예체능이 부족한 자신을 알고 있었기에 초등교사는 나의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제주대학은 교대 입시가 끝난 후기여서 대학은 다니지 못하여도 입학시험은 보고 싶었다. 대학에서 무슨 교과를 전공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가정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가정교육과에 지원하여 입시를 보게 되었고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합격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부모님은 내가 대학교 시험을 본 것도 합격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합격증을 보여드리면서 대학에 꼭 다니고 싶다고 애원하였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등록 마감 하는 날이 다가오자 나는 단식 투쟁에 들어갔고 아무튼 입학금만 내주면 나머지는 아르바이트하면서 졸업을 하겠다고 졸라댔다. 나의 고집을 꺾지 못한 어머니께서 당시 입학금 39,000원을 이웃집에서 빌려 마련해 주었다. 아버지는 너와 같은 고집쟁이는 세상에 둘도 없을 것이고 말했다.

 

시골 마음에서 여대생 1호가 되었다. 동네 어른들은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학에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친척들은 아버지를 찾아와 딸자식을 대학에 보내면 집안이 망할 것이라며 저렇게 많은 자식들을 어떻게 공부시키려고 딸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있느냐며 비난을 한 분도 있다. 그런 동네 어른들의 걱정을 불식시키고자 대학에 진학해서 아르바이트를 계속하였고, 집에서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였고 교사자격증도 받았다.

 

국립사대 학과 1등 졸업생에게는 졸업과 동시에 제주도에 있는 학교에 우선 발령을 내주는 특전이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보다 일찍 78515(24) 제주효돈 중학교 근무를 시작으로 교직의 길을 걸었다. 정말 꿈에도 그리던 교사가 되었기에 학생들을 사랑하고 가르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뒤돌아보면 그는 사춘기 때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정서적 안정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동기를 주었으며, 대학까지 진학하는데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다. 그는 당시 시골고등학교에서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지만 제주에 내려오면 가끔씩 만나 좋은 친구로 지냈다.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솔직한 표현을 못한 채 대학교 3학년 겨울 방학 그는 서울에서 여자 친구를 만나 연애한다고 고백하였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지만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여자를 만나는 것이 그의 행복이라면 그의 선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유년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그는 엄마가 없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고,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내적 힘을 길러주었다. 제대로 된 사랑(내가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만날 때까지 나를 지켜 주었던 하느님의 대천사였다. 하느님은 내가 걸어왔던 인생의 모든 사건 안에서, 또 만나는 사람들을 통하여 나를 성장시켜주고 보호하고 사랑해 주었다. 40세가 훨씬 지나서야 동창회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너무나 반가웠다. 내가 천주교 신앙에 귀의하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하자 자신도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며, 온 가족이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한다고 했다. 그때의 감동과 감격은 표현불가

 

무소부재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주님을 몰랐지만, 주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제 잘난 맛에 큰소리치며 살았지만, 매순간 당신의 눈동자는 나를 지켜보고 사랑해주고 몸과 영혼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시고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시는 주님! 당신은 나의 전부!!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한 당신의 예지 너무 높아 저로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시편 1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