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간의 묵상
제2주간 여섯째 날 (7.4.연중 제13주간 수요일) : 2테살 2,13-17
본문 : 구원받도록 뽑힌 이들
13 주님께 사랑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를 믿게 하여 구원하시려고, 여러분을 첫 열매로 선택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14 이렇게 되라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이제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구원받도록 뽑힌 이들 (12)
-성모님의 칠고와 칠극을 사는 이들-
7월 3일 화요일 저녁 범계성당 대성전에서는 서울교구 성령사제 이성진 미카엘 신부님을 모시고 「성모님의 칠고 칠극」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안양 대리구와 범계성당 주보에 이성진 미카엘 신부님이 오신다는 소식이 나갔고, 본당 수녀님과 신부님의 적극적인 홍보로 평소보다 많은 신자들이 참석하여 은총과 축복이 넘치는 시간을 가졌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아드님의 십자가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칠고 칠극의 삶을 사셨던 성모님의 수덕생활이 핵심 주제였다.
“여보게들, 이 모든 것을 내 눈이 보았고 내 귀가 들어 이해하였다네.”(욥기 13,1)
위의 말씀은 성모님의 눈이 아들 예수님의 삶을 직접 보았고 성모님의 귀가 말씀이신 예수님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 이해하였다고 고백하는 구절이라고 봅니다. 신앙인들은 성모님의 덕행을 본받아 이 세상에서 수덕생활을 실천함으로써 천국의 열쇠를 마련해야 합니다.
자신과 가족의 삶에 필요한 것을 채워달라는 초보적 신앙의 단계에서 벗어나 신비적 고통에 참여하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야합니다. 감각적으로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하여도 오직 주님만을 굳게 믿고 영혼의 어둔 밤에도 주님을 향한 날갯짓을 계속함으로써 무적의 용사, 기도의 특전사가 되어야합니다.
눈을 감고 졸음이나 분심과 망상이 가득한 기도를 드릴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뜨고 주님과 시선을 마주치며 주님의 성심 안으로 들어가 천국에 계신 주님을 내 앞으로 끌어내려야 합니다. 아는 것만큼 말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 예수님의 잉태, 베들레헴에서의 예수탄생, 이집트 피난, 어린 시절과 유년 시기, 공생활과 여러 기적 사화,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 부활, 성령강림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온전하게 이해하신 성모님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혈로 거룩해져야 하고 성인이 되어야할 소명을 받았습니다. 성모님은 지상에서 예수님이 걸었던 고난의 길에 동행 하였으며, 고통 중에도 주님을 신뢰하고, 평생 동정으로 하느님과 예수님과 인간을 사랑하셨지요. 우리도 신앙의 모델이신 성모님의 일곱 가지 덕행을 수행함으로써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이 당하신 그 모든 고통, 신비적 고통 안에는 주님의 뜻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첫 번째 고통 :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였을 때 들었던 시메온의 예언 (겸손의 덕)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2,34-35)
이 예언의 말씀을 품고 한 생애를 살아가셨던 어머니의 고통은 십자가에서 그 절정에 달합니다. 이는 인류의 교만을 어머니의 지극한 겸손으로 극복하셨지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독하며 짓는 교만의 죄를 성모님의 깊은 겸손으로 보속하셨습니다. 겸손의 삶으로 교만을 이겨냈을 때 주어지는 것은 참된 기쁨이죠. 신앙인은 얼굴 표정으로 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겸손한 영혼의 얼굴은 기쁨과 미소가 가득하여 하느님과 이웃에게 좋은 표양이 됩니다. 성모님의 겸손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태중에 잉태하는 축복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린 예수 아기를 데리고 요셉 성인과 함께 이집트로 피신하는 고통 (온유의 덕)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마태 2,13-14)
어린 아기 예수를 데리고 나자렛을 떠나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하는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해보십시오. 기약도 없이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땅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 하는 어머니의 고통을… 강도가 출몰하고 거친 비바람과 추위가 몰아치는 광야를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성가정의 아픔을… 어린 아기에게 젖을 먹여야하는데 엄마도 먹을 것이 없으니 아기에게 먹일 젖도 나오지 않지요. 하느님의 아들을 굶겨야 하는 고통, 엄마이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점을 아파하셨던 어머니의 고통…
인간의 인색함이 얼마나 가혹한지? 성모님은 모든 고난을 온전히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온유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묵묵히 피난길을 가십니다.
성모님의 온유한 마음은 하느님이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거처가 됩니다. 우리의 영혼도 성모님의 온유한 마음을 닮았을 때 주님이 머무는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인내로 위기를 극복하는 영혼은 영적인 매력을 가지게 되며 많은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습니다.
3. 성전에서 소년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의 고통 (정결의 덕)
예루살렘에서 그를 찾아내고 “애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사흘 동안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이었습니다. 이는 21년 후에 벌어질 성모님의 고통을 미리 예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훗날 예수님이 수난과 죽음으로 사흘 동안 죽음에 들어갔을 때 상실감의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었다고 봅니다. 성모님은 정결의 덕으로 상실감을 극복하였습니다. 주님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정결로 인간들의 음란과 악행을 보속하셨습니다. 주님께 대한 열정, 절제와 정결의 덕으로 얻어지는 열매는 영적으로 주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지요. 기쁨 중에 예수님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적으로 모시면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됩니다.
4. 십자가를 지고 가는 아들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고통 (인내의 덕)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고통은 참혹합니다. 성모님은 아들의 고통을 눈여겨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인내로 극복합니다. 인내의 덕을 지니고 있는 자에게 맺어지는 열매는 평화이지요. 이렇게 인내하는 영혼에게 예수님은 십자가 고통의 깊은 신비를 보여주십니다. 인내심이 큰 영혼일수록 십자가 고통의 더 큰 신비를 깊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5. 옷 벗김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고통 (청빈의 덕)
옷을 벗는 다는 것은 새로운 옷을 입기 위함이지요.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사욕과 탐욕의 옷을 벗고 청빈의 옷을 입습니다. 청빈으로 속된 것을 보속합니다. 당신의 육신과 영혼을 하느님의 거룩한 산 제물로 온전히 봉헌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봉헌할 때 거룩해집니다. 청빈과 거룩한 삶으로 인간의 모든 탐욕과 쾌락과 욕망을 보속하면 천국의 보화를 얻습니다. 청빈한 영혼은 하느님을 뵙는 기쁨과 평화를 선물로 받습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깨끗해야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은 그런 영혼 안에 머물면서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그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습니다.
6.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으신 고통(완전한 사랑의 덕)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엄청난 타격을 받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아들을 내려 품에 안으신 어머니의 고뇌에 찬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심장이 창에 찔리는 아픔을 바라볼 수 있는 영혼은 주님의 성심에서 인간들의 죄를 보게 됩니다. 성모님의 성심은 예수님의 성심과 일치하여 세상의 모든 죄악과 온갖 폭력과 악행을 바라보며 사랑으로 보속합니다. 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죄 안으로 들어가 자비심으로 용서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심 안에서 영혼은 완전한 사랑의 단계에 도달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주님께 영광과 흠숭을 드립니다. 이 지극한 고통을 극복했을 때 주어지는 선물은 주님의 완전한 사랑과 권능입니다.
7. 돌아가신 아들의 시신을 돌무덤에 묻어야 할 때의 고통 (근면의 덕)
어머니의 마음은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영원히 머물고 싶지요? 그러나 주님의 뜻에 따라 아들의 시신을 곧바로 무덤에 묻어야 했습니다. 돌아가신 주님께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성모님은 잘 알고 있지요. 성모님은 인간적인 모든 애욕을 내려놓고 아들의 시신을 내줍니다. 주님의 모든 상처를 어루만지고 사랑으로 축성한 후 아들을 빈 무덤에 묻습니다. 인간의 모든 나태함을 벗어버리고 근면해질 때 영혼은 자유롭게 황홀경에 빠집니다. 이런 영혼은 주님의 뜻 안에서 기도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천상모후의 관을 쓰신 성모님께서 모든 은총의 중재자로 지상의 모든 영혼을 다스릴 수 있듯이 이러한 성덕을 가진 영혼들은 기도하고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을 본성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지혜에 도달한 영혼은 기도의 질이 달라집니다. 하느님의 뜻과 마음을 알게 되고 영적으로 민첩해져 삽시간에 수많은 일을 처리하게 됩니다. 근면의 열매는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갑니다.
거의 두 시간 동안 아주 재미있게 신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성령의 불을 놓았다.
마지막으로 신앙을 성숙하게 하고 고양하는 길은 고해성사와 합당한 영성체라고 말씀하시며 시간이 늦어졌지만 마지막 안수까지 정성껏 해주셨다.
구원을 받도록 뽑힌 이들에게 주님은 당신의 어머니를 보여주시고 어머니의 성심을 느끼고 어머니의 덕행을 실천할 수 있는 충만한 은총을 내려 주셨습니다.
'영성신학(12주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도움은 주님의 이름에 있으니(14) (0) | 2018.07.08 |
---|---|
무소부재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13) (0) | 2018.07.08 |
성경은 모두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여 졌다. (11) (0) | 2018.07.05 |
말씀은 하느님이셨다(10) (0) | 2018.07.03 |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9) (0) | 2018.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