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신학(12주간 묵상)

이스라엘의 불성실한 회개(5)

기도하는 어머니 2018. 6. 27. 15:06

12주간의 묵상

 

1주간 다섯째 날 (18.6.26.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아들 요한의 생일) : 호세 6,1-6

 

본문 : 이스라엘의 불성실한 회개

1 ,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요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에지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려나보다. 아침부터 굵은 빗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새벽 미사를 드리며 12주간의 묵상을 하려는데 주님께서 인간 역사의 보편적인 죄의 흐름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에덴동산을 선물로 받은 아담 할아버지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을 수 있고,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하와를 짝으로 받았고, 하느님께서 빚으신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들의 이름을 작명할 권위를 받았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짝,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집짐승과 들짐승과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등, 선악과 열매를 제외하면 에덴동산의 모든 것은 당신 소유였다. 또 원하기만 하면 하느님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부족한 것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풍요로움 속에 있으면서도 왜? 하느님의 명령, 단 하나의 금기사항을 업신여기고 거역하였을까?(하느님과 대화부재,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세 2,`6-17)

 

어느 날 아담이 집을 비운 틈을 타서 뱀이란 녀석이 하와를 찾아왔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하며 여자에게 말을 건다. 하느님의 말씀과 유사한 말로 하와를 유혹하고 있다. 따 먹으면 안 되는 나무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 그런데 뱀은 어떤 나무에서든지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이에 하와는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고 하였다며 대꾸한다. 이 또한 거짓말이다.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가 아니라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고,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반드시 죽는다.’ 고 하였는데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고 하였다고 그럴싸한 답을 한다. 거짓은 거짓을 낳고 있다.

 

하와는 또 이토록 풍요로운 환경에서 무엇이 부족하여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게 되었는가? 또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다가온 뱀에게 왜 유혹의 기회를 주었는가? 그는 동산의 온갖 열매와 남편 이외에 무엇을 더 원하였던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여기서 인류의 보편적인 죄, 하느님의 영역에 도전하고 싶은 죄가 파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창조한 우주만물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짝이 있고, 먹을 것, 입을 것, 누울 자리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 인간들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며 불륜을 저지르고 우상을 숭배하며 자기중심적으로 하느님과 사람을 판단하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욕심을 내고 있다. 자신의 처지를 타인과 비교분석하며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고, 탐욕으로 가득하여 더 가지려고 한다. 교만, 이기심, 분노, 인색, 호색, 질투, 시기, 살인, 폭력, 중상모략, 분열, 전쟁 등 가진 것에서 더하려다 가진 것마저 모두 잃게 되는 것이 인간이 가진 슬픈 역사이다.

 

나는 과연 보편적인 인간의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는가? 전혀 그러지 못하다. 빛을 받지 못하여 어둠 속에서 살아갔을 때 내 모습은 교만, 인색, 분노, 시기와 질투, 탐욕과 욕망으로

뱀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뱀과 살았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

 

주님의 빛이 내 영혼과 삶을 비추었을 때 드디어 나의 어두운 자화상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뱀의 근성을 뿌리 뽑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투쟁을 하였던가?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뱀의 꼬리조차 잘라낼 수가 없었다. 뱀은 좀처럼 나를 놔주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였을 때 뱀의 머리에서부터 꼬리까지 간교하고 교활한 뱀의 본성을 뿌리 뽑을 수가 있었다.

 

예수성심기도원에서 23일 피정 중에 나를 속박하고 있는 죄의 본성을 발견하였다. 식음을 전폐하고 금식하며 결연한 자세로 주님께 매달렸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성심에서 흐르는 피에 나의 죄악을 씻어내고자 몸부림쳤다. 금식을 하는데 배도 고프지 않았다. 굳은 믿음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자유와 해방을 주시라고 주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의탁하였다.

 

그날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주님의 십자가가 갑자기 곡괭이와 삽자루가 되어 내 영혼을 휘감고 있는 죄의 근성을 뿌리 뽑는데뿌리가 뼛속 깊이 모세혈관까지 박혀 있어서 떨어져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주님은 계속하여 당신의 피를 흘리며 죄의 근성들을 하나하나 뽑으셨다.

 

얼마나 시원하고 통쾌한지 날아갈 것 같은 홀가분함에 참된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5)

 

그날 이후 주님은 내 영혼 깊은 곳에 장막을 치셨고, 성령의 은총과 은사와 열매로 주님의 성령이 머무는 궁전이 되었다. 주님은 내 마음의 지성소, 내 영혼의 궁방에 어좌를 마련하셨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과 천사들과 성인성녀들과 함께 삼위일체 하느님이 내 안에 살고 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시다.

 

내 안에서 뱀이 주인 노릇을 했을 때는 삶이 무료하고 짜증나고 힘들고 불만이 가득하였으나 주님이 주인이 되고 난 후에는 참고 기다리고 시기 질투도 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교만하지 않는 사랑을 실천할 수가 있다. 남들이 잘되는 것이 내가 잘되는 것이며 타인의 평화가 나의 평화가 되었다. 타인의 재능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용기를 북돋워 줄 수가 있다. 아니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한없이 자애로운 하느님 아버지! 친정어머니처럼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하느님 아버지!

힘들고 외롭고 고독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하고 싶은 순간에도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사랑한다. 나는 너의 구원자 예수다. 사탄에게 너의 몸값을 지불하였으니 너는 더 이상 사탄의 자녀가 아니다.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느님의 외동딸이다. 힘을 내고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시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네가 좁은 문으로 들어오느라 얼마나 고생하였느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빛 안에서의 삶은 넓고 광활하다. 구름같이 많은 성인들이 이 길을 만들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길을 꾸준히 가거라.”

 

온갖 말씀으로 위로를 주시는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 성모님 참으로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의 뜻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저의 기도와 바람이 하느님의 영광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 돌아가자,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주님은 철저한 회개, 진실한 회개를 바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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