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신학(12주간 묵상)

예언자의 소명(4)

기도하는 어머니 2018. 6. 27. 15:04

12주간의 묵상

 

1주간 넷째 날 (18.6.25.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예레 1,4-10

 

본문 : 예언자의 소명

4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5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6 내가 아뢰었다. ,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7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는 아이입니다.’ 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

8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9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는 당신 손을 내미시어 내 입에 대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10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은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예언자의 소명

 

주님께서 예레미야()를 모태에서 빚기 전에 알았고,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하였다.

 

여섯 살 어린 것은 할머니를 따라 밭으로 갔다.

할머니는 밭을 매고 있었고 어린 것은 담 밑에 앉아 흙 놀이를 하고 있다.

어디에선가 그립고 그리워하던 엄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이 아기를 받으십시오.” 하는 소리와 함께 세 살 박이 동생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담 밑에서 흙 놀이 하고 있던 어린 것을 보지 못하였는지 엄마의 모습은 이내 사라졌다.

 

엄마를 뒤따라가며 어멍~ 어멍~ 어디감수꽈? 하고 외쳤지만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골목 어귀를 획 돌아나가는데 엄마의 치맛자락과 옷고름만 아스라이 보인다.

뛰어가서 어머니를 붙잡으려 했지만 엄마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후 어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여섯 살 어린 것과 어미의 이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부모님은 여섯 살과 세 살짜리 딸 둘을 두고 이혼을 하였다. 나는 이혼 사유를 모른다. 두 딸을 남겨 둔 채 떠난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것은 젖이 먹고 싶어 우는 동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젖동냥을 하였다. 아기의 유일한 양식은 어미젖 외에 없던 시절이다. 동생이 세 살이었기에 밥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젖을 먹는 또래 아이들을 보면 침을 삼키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난 젖을 먹이는 동네 어른을 보면 우리 아시 젖 혼 번만 줍서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의 사정을 잘 아는 동네 어른들은 불쌍하다면서 자식이 먹다 남을 젖을 내 동생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재혼을 하였다. 새엄마를 모셔왔다. 친척들은 엄마가 왔다며 가서 안기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런데 여섯 살 어린 것은 자신의 어미를 정확히 알고 있다. 분명히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다. 어린 것의 눈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어른들이 야속했다. 동생은 새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새 엄마에게 마음을 붙여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린 것도 직감했다.

 

이런 아픔과 상처는 내적 아이를 슬프게 하였다. 사춘기(초등 4학년 때부터)가 되면서 친엄마가 그리웠다. 당시 책을 좋아하여 어머니를 주제로 한 동화책은 모두 읽었다. 신데렐라, 콩쥐팥쥐, 헨델과 그레텔, 어머니 찾아 삼만리 등 모두 기억을 할 수는 없다.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때때로 친 엄마와 사는 친구들과 동생들이 부러웠다. 친모에 대한 지나친 그리움이 미움으로 자라났고 원망과 원한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그 상처가 내적 아픔인 줄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22세 죽을 고비에서 하느님을 만나 죽을 마음을 버리고 최선을 다하여 살았다. 대학졸업이 힘들 것 같았지만 친구의 도움과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하여 4학년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 후 교사가 되었다. 대학 4학년 때 사랑하는 청년을 만나 26세에 결혼하였지만 종교적 가치관이 달라서 시시때때로 종교 전쟁을 하였다. 불교와 개신교를 각각 신앙하였던 부부가 한마음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이혼 위기에서 가브리엘 신부님의 도움으로 둘 다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아이들도 모두 세례를 받으면서 주님의 은총으로 성가정이 되어갔다.

천주교 신자가 된 후 가족들의 구원을 위하여 100일간 작정기도를 하고 있었던 어느 날 주님의 음성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왔다.

 

너의 생모를 용서하여라. 그래야 나의 어머니 마리아를 만날 수 있다.” 난 주저함 없이 외쳤다. 주님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울부짖었다. 그때까지 난 생모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들을 낳아다며 찾아온 어머니를 문 밖에서 돌려보냈으니 그 원망이 어떠하였는지 주님은 3일간 나의 입을 틀어막고 말을 할 수 없게 하였다. 당연히 기도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의 어머니 성모님을 알고 싶은 마음에 힘든 용서를 하였다. 생모를 용서하기 위하여 100일간의 매일미사와 묵주기도, 아침 금식기도, 토요일 철야기도를 하면서, 어린 딸을 두고 이혼을 선택한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찾아가 그동안의 아픈 마음을 전하며 용서를 빌었다. 어머니는 이혼하여 가정을 꾸려 자식을 낳고 살았지만 전 남편에게 맡기고 온 두 딸을 그리워하며 마음의 짐을 지고 힘들게 살고 있었다.

 

그 시절 주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온 질문이었다.

주님은 저를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어머니가 저를 버리고 가던 그날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부모님의 이혼 후에 나의 모든 삶을 기억하십니까? 어머니를 어떻게 용서해야 합니까? 용서할 수 있는 마음과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영혼 깊은 곳을 파헤치는 기도를 시작하였다.

 

주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모태에서부터 너를 기억하고 있다. 너의 지나온 삶과 눈물과 고통을 다 보았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나는 너를 사랑하였기에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였다. 아니 어떻게? 내가 너의 하느님이고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동생들과 네 이웃을 모두 사랑하여라. 모든 것은 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주님의 섭리였다니 반박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난 생모를 용서하였고, 더불어 새엄마와 시어머니까지 용서하면서 갖가지 질병에서 치유함을 얻었고, 영적인 자유와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사랑의 삶을 살게 되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아픔은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학생들과 이혼 위기의 가정을 구하는데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이혼위기의 가정을 설득할 수 있었다.

 

그 후 어머니의 재혼으로 낳아 준 4남매와 아버지의 재혼으로 낳아 준 6남매, 그리고 부모님이 같은 내 동생 모두 12남매가 화해하고 사이좋게 사랑하며 살고 있다. 주님께서 용서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난 지금까지 살 수가 없었고, 내면 깊은 곳에 쌓여있는 미움과 원망은 나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가족의 일치와 사랑을 이끌어 내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에 감사합니다.

 

또 한 번의 절망과 신앙적 위기가 닥쳐왔다. 믿음과 사랑으로 평화롭게 살고 있는 가정에 풍파가 들이 닥쳤다. 건강 검진하러 갔던 남편에게서 췌장암 말기진단이 나왔다. 앞이 캄캄하였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현대의학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그럼에도 고칠 방법은 없었고, 10개월간의 투병과 세 번의 큰 수술로 온갖 고통과 아픔을 겪은 후에 하늘로 떠났다. 남편의 선종은 나에게 상실감과 우울증을 가져왔지만 주님은 나의 손을 붙잡고 전국 천주교 성지 111곳을 완주하며 나를 위로하고 사랑해주었다.

 

60세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우울증에 빠져 있는 나를 부르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신 하느님!!

 

수석교사로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며 정년까지 잘 마치려고 하였다. 남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여전히 매일 미사를 드리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주님은 이제는 나의 사도가 되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결단을 내리기 힘들었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명하고자 정년을 3년 남겨 둔 채 명예퇴직을 하고 선교사의 길을 걷고자 신학원에 입학하였다.

 

2015년 하상 신학원 24, 1년 동안의 신학 공부는 그동안의 신앙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믿음이 같은 형제자매들이 모여 날마다 훌륭한 교수 신부님들로부터 영적인 가르침을 받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였다.

 

결혼 5년 만에 아들과 며느리가 아이를 낳았다. 얼마나 기다리던 생명인가? 손자 가브리엘이 태어나면서 육아를 전담하게 되어 1학년을 마치고 2년 간 휴학을 하였다. 2018년 손자가 세 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적응하게 되자 다시 신학원에 복학하였다.

 

12주간의 묵상을 하면서 오늘 다시 주님께 새로운 사명을 받습니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예레 1,10)

 

주님! 저의 소명은 분명합니다. 나를 비롯한 인간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뿌리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부활할 수가 있습니다. 나와 그들을 속이고 있는 뱀의 속성인 거짓 자아를 없애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우고 심으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와 이웃의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해야 할 일입니다. 남은 생애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주님을 더욱 더 사랑하며, 성교회를 위하여,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요긴한 곳에 쓰십시오. 나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과 자유의지를 당신의 뜻에 의탁하고 봉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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