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리 공소 (110)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평로 514 노암동 성당 033-643-8460)
2016년 5월 29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양양 성당에서 10시 30분 미사를 드리고 강릉에 있는 금광리 공소로 출발하였다. 강릉으로 내려가는 길에 하조대에 들리기로 했다. 아름다운 등대와 정자가 있는 하조대 해변은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사랑을 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곳이다. 교직원들과 강원도 연수를 오게 되면 처음 들리는 곳이다. 막내가 이곳을 와 본 적이 없어서 우선 의견을 물었더니 좋다고 하여 모녀가 함께 이 멋진 해변을 걷기로 하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등대와 정자를 배경삼아 사진을 찍으며 바다를 감상하고 있었다. 하늘빛과 같은 파란 물결이 끝없이 펼쳐지고 기암절벽이 만들어낸 절경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정말 멋지다! 아름답다! 이런 곳도 다 있네! 역시 동해 바다는 경이롭다!’
하조대 등대에서 사진을 찍고 바다를 구경한 후 정자에 올라 바다 절벽에서 기이하게 자란 보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시원한 바람과 끝없이 푸른 바다가 절경이다.
성지순례를 마감하며 이번에는 강릉 맛집을 찾아 맛있는 회를 먹기로 하였다. 그래서 사천 해수욕장에 있는 그린횟집을 찾아가서 모둠회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 금광리 공소를 검색하여 달렸다.
금광리 공소는 1887년에 설립된 곳으로 영동 지역 천주교의 모태와 같은 곳이다. 강원도 영동 지역에 천주교가 적극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계기는, 1866년 시작되어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할 때까지 계속되었던, 한국 교회사의 4대 박해 가운데 하나였던 병인박해라고 할 수 있다.
강릉 지방에 천주교 공소가 만들어지는 시기는 19세기 말경으로, 구정면 금광리와 내곡동 등지에 천주교인들이 이주하여 옹기 굽는 일이나 농사를 지으면서 은밀하게 전교를 하고 있었다는 기록과, 현존하고 있는 금광리 공소 현판에 ‘1887년 창립’ 이라고 적혀 있는 것과 부합된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여 보면 교우들이 강릉에 이주한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영동 지역의 전교 거점 본당으로서 1921년에는 양양 성당과 함께 영동 지역 두 개의 본당 중 하나일 정도로 신자 수도 많았으나 발전 가능성이 적어 1923년 주문진으로 이전하여 주문진 성당의 전신이 되었다.
박해를 피해 정착하여 오랫동안 신앙을 지켜가는 이들이 있는 이곳은 그동안 국내의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도 잡초처럼 신앙의 씨앗이 싹튼 곳이다.
금광리 공소에는 오후 3시 10분에 도착하였다. 우리보다 앞선 순례객들이 먼저 성당을 순례하고 나오고 있었다. 상주하여 돌보는 분은 없었지만 공소 마당에도 아름다운 꽃들을 심어서 순례객을 반갑게 맞이했으며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공소 마당 양지 바른 곳에 단아한 모습으로 서있는 성모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공소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고 제대 앞으로 갔더니 십자고상 모습이 우리 집 거실의 십자고상과 같은 모양이어서 너무나 놀랐다. 이곳에서 집에 모시고 있는 나무십자고상을 볼 수가 있다니 그리고 십자고상 좌우에 예수 성심상과 성모 성심상이 모셔져 있고 레지오 마리애 성모님이 계셨다. 신자들이 레지오를 하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주님이 이곳에 분명히 계시기에 순례자들의 마음을 이곳으로 이끌고 당신의 자비와 사랑으로 자녀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은총과 축복을 주실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과 감사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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