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관덕정 (108)
(제주시 삼도 일동 제주 중앙 주교좌성당 T 064-753-2271)
2016년 4월 29일 부활 제5주간 금요일
추자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배에서 멀미를 하여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제주교구의 마지막 성지인 관덕정을 돌아보고 제주 중앙주교좌 성당에 들려 순례스템프를 찍어야 한다. 관덕정은 제주시에 살 때 날마다 지나다니던 곳인데 이번에 천주교성지순례를 하면서 역사적 의미를 신앙적 차원에서 살펴보게 되었다. 제주 부두에 세웠던 승용차를 타고 관덕정으로 갔다. 예나 다름없이 중아로에서 서문로타리 가기 전에 전통적인 기와 지붕의 관덕정이 그대로 있었다.
1886년 한불 조약을 계기로 조선 땅에서는 공시적인 박해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는 부패한 관리와 완고한 유생들과 천주교인들과의 충돌이 결국에는 박해라는 양상으로 바뀌었는데, 그중 하나가 1901년에 발생한 제주도 신축교안(辛丑敎案)이다. 지방 관리와 기득권을 주장하는 토호 세력 등의 결탁으로 유도된 이 사건은 중안 정부의 새로운 조세 정책에 불만을 가진 백성들의 민란(이재수의 난)으로 출발했으나,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란군은 공격 대상을 천주교로 돌렸다. 관덕정(觀德停)은 본래 조선 세종 때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군사들의 연무장에 세운 정자였는데, 제주 신축교안 때 많은 신자들이 이곳 관덕정에서 민란군에게 처형당했다. 제주교구는 2003년 11월 7일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와 함께 화해 선언문을 발표했다. 곧, 교회는 과거 전통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교 활동을 펼쳤던 점들을 인정하고, 제주도 민중들도 봉기 과정에서 무고한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과거사에 대한 일방적인 시각을 버리고 화해와 화합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관덕정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5분이었다. 정자 안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제주에 관한 이야기와 관덕정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였다. 정자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고 제주중앙주교좌 성당으로 갔다. 주임신부님이 잘 아는 분이어서 만나고 싶었는데 출타 중이셨다. 제주에 내려왔을 때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배 멀미 때문에 만났어도 힘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위안을 삼았다. 예전 신성여고 자리에 새로운 성당이 지어졌는데 크기가 전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였다. 성당에 들려 제주교구에서의 마지막 성지순례를 무사히 마감하게 됨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렸다. 성당 내부를 촬영한 후 동생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어제 저녁 친정어머니와 하룻밤 지내지 못한 것이 아쉬워 힘이 들었지만 다시 하도로 내려갔다. 친정어머니는 딸이 오기를 기다리며 TV를 켜놓고 불을 밝혀 놓고 있었다. 늦은 시각에 도착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늦은 밤까지 그동안의 밀린 이야기를 다하였다.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는 한 고향은 늘 다정하게 나를 잊지 않고 맞아줄 것이다.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요. 사랑합니다. 주님 우리 집안에 아직도 주님을 모른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저들을 지켜주시고 그들에게 신앙의 빛을 비추어주소서. 그리고 제주교구를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으로 지켜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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