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성지순례

황사평 성지(105)

기도하는 어머니 2016. 5. 15. 14:37

황사평 (105)

(제주시 화북 2동 5618 T 064-751-0145)

2016년 4월 2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이시돌 센터 내에 있는 새미 은총의 동산을 순례하고 금악 성당에서 12시 미사를 드린 후 제주시로 건너왔다. 제주시에서 소고기 해장국을 먹었다. 아침도 먹지 않고 12시를 넘겼으니 배꼽시계가 요동을 쳤다. 오랜 시간 우려낸 쇠고기 뼈국물에 쇠고기를 듬뿍 넣어서 만든 국밥이 밥과 함께 꿀맛처럼 넘어갔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법무사에 할 일이 있어서 난 법무사로 갔고 동생도 잠시 회사에 볼 일이 있다면서 회사로 들어갔다. 각자가 2시간 정도 볼일을 보고 다음 순례지인 황사평으로 갔다. 화북이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 들리면 되었다.

황사평 성지는 1901년 신축교안(辛丑敎案) 때 희생된 무명의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당시 조선 왕실의 재정 확보를 위해 파견되어 온 봉제관이 과다한 조세 징수로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었고, 여기에 조세 중간 징수 관리자로 이용된 일부 신도들로 인해 교회는 많은 오해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미신 행위 등 신앙에 위배되는 지역 풍습을 시정하는 과정에서 자주 주민들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의 무리한 전교 활동과 왕실 조세 정책에 저항한 민회(民會)가 1901년 신축년에 대정현 모슬포에서 열리면서 민란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700여명의 신자들과 양민들이 관덕정 등지에서 피살되었는데, 이를 ‘신축교안’이라 한다. 신축교안으로 관덕정 등지에서 희생된 교우들의 시신은 다른 희생자들과 함게 별도봉과 화북천 사이 기슭에 옮겨 가매장했는데, 사태가 진정된 후 교회는 별도봉 밑에 묻혀 있던 피살된 교인들 가운데 무연고 시신 31기를 이곳 황사평에 이장했으며, 천주교 제주 선교 100주년을 맞아 이곳을 공원묘지로 새롭게 단장하여 무명 순교자 합장묘를 조성하였다.

오후 4시 30분에 도착하여 납골당, 무명 순교자묘와 초대교구장 현 하롤드 대주교님(1909-1976) 묘와 김병준 요한 사제의 묘, 임승필 요셉 신부의 묘(1950-2003)묘를 참배하였다. 성지관리 사무실 옆에 있는 순례 스템프를 찍고 돌아왔다.

신축교안 일명 ‘이재수의 난’

제주도에 천주교 신앙의 씨앗이 뿌린 지 2년밖에 안 되는 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교회와 주민 사이의 충돌 사건이 발생하여 대부분 무고한 천주교 교우 수백 명이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장두 이재수)들에 의해 살해되는 교회수난이 발생되었다. 사건의 원인은 제주민들이 과중한 세금징수의 폐단 시정이 목표였으나, 천주교의 선교 관정에서 천주교의 선교에 불만을 가진 토착세력과 토속신앙의 사주를 받은 세력간의 우발적인 사건으로 교민과 민군측이 충돌하는 사건으로 전개되었으며, 일부 역사학자들은 민란을 반봉건, 반제국주의 민중항쟁으로 규정, 민란을 주도한 이재수의 희생을 기려 ‘이재수의 난’이라고도 하나, 이 사건은 단순한 민란으로 그치지 않고 프랑스와 정부와의 갈등으로 국내외적으로 큰 영향(프랑스와 일본까지 개입되어 진압되었으며, 4년이나 걸려서 국제재판으로 매듭지어짐)을 미쳤으며, 최근 학계에서는 이를 ‘신축 제주교안’으로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