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김기량 순교 현양비 (106)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940-2 T 064-784-6173)
2016년 4월 2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황사평 성지에서 납골당, 무명 순교자묘와 한국에 레지오 마리애를 처음으로 도입한 제주교구 초대 교구장 현 하롤드 대주교님(1909-1976) 묘와 김병준 요한 사제의 묘, 신구약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임승필 요셉 신부의 묘(1950-2003)를 참배한 후 함덕에 위치한 복자 김기량 펠릭스 순교자 묘역을 향하였다. 화북에 위치한 황사평에서 조천읍 함덕리에 위치한 복자 김기량 순교현양비는 근접해 있고, 구좌 하도리 고향으로 가는 중간 일주도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금방 찾아갈 수가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순례지이기도 하여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궂은 날씨도 맑아져서 기분이 상쾌했다.
순교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제주시 함덕리 출신으로 작은 배를 타고 육지와 도내 포구를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소규모 무역상이었다. 그는 1857년 항해하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한 달 이상 표류하다가 중국 광동성 해역에서 구조되어 홍콩에 있는 파리 외방전교회에 인도되었다. 그곳에서 영세 입교한 그는 귀국하여 충청도 어느 교우촌에서 최양업 토마스 신부와 함께 지내다가 고향에 돌아와 제주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육지에 가서 조선 교구장 베르뇌(장) 주교에게 제주도 선교사 파견을 약속받기도 했지만, 1866년 병인박해로 인해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같은 해 그는 거제도에 갔다가 체포되어 통영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는 장살형으로 오랫동안 모진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이듬해 1월에 51세 때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특별위원회는 그를 시복시성 대상자 124위에 포함시켰다.
5시 28분쯤에 성지에 도착하여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가 성인품에 오를 수 있기를 기도를 드렸다. 레지오 마리애를 상징하는 성모님과 벡실리움도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어느 성지에서건 성모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성모님을 공경하고 사랑하며 묵주기도로 개인과 가족의 성화를 위하여 끊임없는 기도를 하며 신앙의 나무를 성장시켜왔다. 2015년 2월 37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고 신학교를 다니며 영성생활에 집중하고 있을 때 성모님은 꿈속에서 두 번이나 나타나 레지오 마리애 입단을 권유하였다. 그래서 2015년 7월에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을 하고 2015년 11월 11일 범계성당 정석화 베드로 신부님 앞에서 선서식을 하였다. 주1회 성모님 앞에서 일주일 동안의 신앙생활을 보고하며 내가 무심코 드린 기도와 선행들이 성모님께 봉헌이 되고 성모님께서는 그 기도를 즐겨 받으신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래서 뒤늦게 시작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이지만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행동단원으로 활동할 결심을 갖게 되었다.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순교자 현양비 순례를 마지막으로 오늘 동생 정선이와 제주교구성지 용수, 정난주 마리아 묘, 새미 은총의 동산, 황사평,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묘 등 다섯 곳을 순례하게 되었다. 또 아버님 기일이어서 성지에서 기도할 때마다 이재화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원한 삶을 기원할 수가 있었다. 이제 하도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 아버지 제자를 잘 모시면 된다. 고향에는 친정어머님과 시어머님, 남동생이 살고 있고 언제든 가면 반갑게 맞아준다. 오늘은 제주시, 함덕, 표선에서 동생들이 모두 올 것이다. 2012년 5월 13일 파티마 성모님 발현 축일 저녁에 아버지는 하느님 품안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호철 동생이 막내 준규를 낳았고 잘 자라고 있다. 다른 조카들도 무사히 잘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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