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숲정이 성지 (79)
(전북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196 T 063-838-8761)
2016년 3월 8일 사순 제4주일 화요일
천호성지에서 11시 미사를 드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산숲정이 순교성지로 향했다. 가는 시간이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천호성지에서 미사, 십자가의 길 기도, 고백 성사까지 보았으니 영적 에너지가 충만하다. 기분이 좋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감사의 묵주기도를 드리며 달렸다. 혼자서 하는 여행의 묘미는 차속에서 마음대로 찬미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고 성가 부르다보니 어느새 여산 숲정이 성지에 도착하였다. 넓은 들판에 여산숲정이 표시가 되어 있는데 순례스템프를 찍는 곳이 없었다. 순례스템프가 필요한 분은 ‘여산성당 사무실로 찾아오라’ 는 안내가 있었다.
여산은 작은 고을이지만 왕비가 배출한 지역이어서 특별히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다. 때문에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처형도 이뤄졌는데, 특히 1868년에는 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 이곳 순교자들은 여산, 고산, 진산, 금산 등지에서 잡혀와 다양한 방식으로 처형되었다. 배다리 근처에서는 교수형으로, 여산 숲정이에서는 참수형이 주로 집행되었고, 동헌 앞마당에서는 교우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얼굴에 물을 뿌린 후 그 위에 백지르 f여러 겹 붙여 질식시켜 죽게하는 백지사형이 집행되었다. 여산옥터는 옥에 갇인 신자들의 고통과 신앙을 묵상할 수 있는 곳이다. 여산의 순교자들은 옥에서 한마음으로 서로 격려하며 기도했던 공동체로 유명하다. 옥에 갇혀 있던 신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굶주림의 고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통 중에 있던 신자들은 옷 속에 있는 솜을 먹기도 하고 처형지로 끌려 나오자 풀을 뜯어먹기 바빴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곳 순교자들 중의 대표적인 인물은 김성첨이며 이들의 후해는 천호성지와 천호산 일대에 묻혀 있다. 지금은 논과 밭의 가장자리가 되었지만 박해 당시에는 숲이 우거진 곳이었기에 숲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여산 성당도 외모가 고풍스러웠다. 성당 앞마당에 차를 주차하고 성당 안과 밖을 모두 살펴보았다. 성당 마당의 성모님이 고운 자태로 반갑게 맞아준다. 교회의 어머니인 성모님은 어디를 가든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잘 왔다고 인사를 한다. 또 예수성심상도 팔을 벌려 안아준다. ‘주님! 성모님! 오늘도 두 분의 이끄심으로 순례를 잘하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순간까지 길잡이가 되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드렸다. 사실 주님과 성모님의 이끄심이 아니면 이렇게 여자 혼자서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순례를 다닐 수가 있을까? 벗과의 동행도 쉽지가 않다. 1박 2일 모든 것을 접고 홀가분하게 집을 떠나올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난 오직 주님의 뜻대로 순교성인들의 뜻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인들과 통교하고 그 시절의 아픔을 공감하며 이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봉헌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