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성지순례

되재성당지(78)

기도하는 어머니 2016. 3. 9. 22:31

되재 성당지 (78)

(전북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 729-1 T 063-262-4171)

2016년 3월 8일 사순 제4주일 화요일

금복리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되재 성당으로 향하였다. 천호성지 입구에서 오른쪽은 화산 가는 길이고 왼쪽은 여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네비게이션이 가르치는 대로 화산쪽으로 가는데 꾸불꾸불 산 고개를 넘고 또 넘어서 깊숙한 산속 마을에 도착하니 그곳에 되재성당지가 있었다. 과거에는 400여명의 신자들이 모여 끊임없이 기도를 하던 곳인데 인걸은 간 곳 없이 옛 성당 건물만 외롭게 서 있었다. 기도실에 들어가서 혼자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렸다. 성당 밖에서 스템프를 찍으려고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고산 성당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종탑 옆으로 성당문을 열고 들어가면 스템프가 있다고 한다. 난 원래 성당은 패쇄된 줄 알았는데 그곳에 문을 열 수 있는 장치가 있었고 매월 마지막 토요일 11시에는 순례자와 함께하는 미사도 드리고 있었다. 옛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과연 오래된 성당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옛날에는 남자신자와 여자신자가 앉는 자리가 따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중앙에 벽을 세워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성당 뒤쪽에 있는 순례 스템프를 찍고 성당 마당에 곱게 서있는 성모님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1886년 한불 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고산 지역에 성당이 세워지는데 이곳이 바로 1895년에 완공된 되재성당이다. 고산 본당의 전신인 되재 성당은 1893년에 비에모 신부가 차돌배기(현 백석,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에 거처를 정하고 전교를 시작할 때로부터 시작된다. 비에모 신부가 이곳에 본당을 정한 이유는 박해의 여파가 남아 신자들이 주로 산간 지대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고산 지역에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부터 박해를 피해 각처에서 몰려든 신자들이 많았으며 병인박해 때에는 이 일대에 교우촌이 무려 56곳이나 됐다고 전해진다. 실재로 되재 성당이 설립된 뒤 성당 주변에는 큰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나, 그후 신자들의 이주로 교세가 위축되었다. 되재 성당은 단층 5칸짜리 한옥으로 서울의 약현 상당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성당일 뿐 아니라 한수 이남의 첫 성당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당이다. 처음의 성당은 한국전쟁 때 국군에 의해 소실되었고, 전쟁 후 공소를 새로 지었다. 전라북도는 2004년에 최초의 성당 터를 도기념물 제119호(되재성당지)로 지정하였고, 완주군이 2006년부터 성당과 종탑에 대한 복원 사업을 시작해 2009년에 축복식을 가졌다.

이렇게 깊은 산골짜기에서 교우촌을 이루고 살면서 신앙심을 키웠던 조상들을 생각하니 한없이 부끄러웠다. 좋은 환경에서 편안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요즘의 세대를 옛 어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애들아, 그만하면 족하다 감사하고 살아라.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들이 주어지고 있으니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아라. 날마다 미사와 영성체를 할 수 있고 신부님과 수녀님의 지도를 받으며 어깨에 힘을 주고 자랑스럽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은총이고 축복인가? 천주를 공경하고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면 하늘에 있는 우리들도 행복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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