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성지순례

천호성지(77)

기도하는 어머니 2016. 3. 9. 21:55

천호성지 (77)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천호동 905-1 T 063-263-1004~5)

2016년 3월 8일 사순 제4주일 화요일

초남이 순례 후 시간을 확인하였더니 저녁 4시 30분이다. 이대로 전주시에 가서 숙소로 가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숙소를 정해 놓은 곳도 없으니 일단 천호성지까지 가기로 한다. 천호성지에 전화를 해서 숙소 문제를 말씀드렸더니 월요일이어서 토마스의 쉼터가 문을 열지 않지만 아래 동내에 와서 마을회관에 가면 이장님이 하룻밤 정도는 머물게 해줄 것이라고 한다. 천호성지에 가다보니 금복리 마을회관이 있었다. 마을회관에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노크를 하여 부녀회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쾌히 숙박을 허락해서 일단 안심하고 천호성지에 가서 성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성인묘역, 십자가의 길, 봉안성당, 겟세마니동산, 부활성당, 피정의 집을 살펴보고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로 내려갔다. 이장(여자)과 부녀회장이 반갑게 맞아주었고 부녀회장은 먹을 것을 집에서 가져왔다. 초면의 얼굴들이지만 오래 알던 사람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지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모두가 좋은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도움을 주려하고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하다.

천호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하여 주로 충청도 지역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천호산 일대에 들어와 신앙공동체를 이룸으로 시작되었다. 천호산은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의 대둔산 줄기가 서남쪽 호남평야로 이어지면서 충남과 전북의 경계지역에 위치한다. 천호산은 그 이름처럼 천주께 대한 신앙을 지켜낸 사람들을 품어 안고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피를 담은 병의 구실을 하고 있다. 천호성지 일대에는 박해시대에 다리실 교우촌(현 천호본당)을 비롯하여 주변 일대에 58개소에 달하는 공소가 있었다.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각 지역은 <택리지>의 설명에 의하면 ‘산세가 험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이라고 말할 정도로 첩첩 산중이다. 이런 곳으로 들어와 땅을 일구고 신앙생활을 하던 교우들의 피와 땀이 지금의 한국 천주교회를 일구었다. 천호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 사적지로 1866년 병인박해시 12월 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여섯 성인 중,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손선지 베드로, 성 이명서 베드로, 성 한재권 요셉과 같은 해 8월 28일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 아우구스티노,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열 분의 무명 순교자들과 많은 순교자들이 이곳 천호산에 종적을 알지 못한 해 묻혀 계신다. 이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듣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간적인 모든 것을 그 어느 것 하나도 남김없이 하느님께 송두리째 바친 것이다.

마을회관에서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되재 성지에 들렸다. 십자가의 길 기도와 묵상을 하고 천호성지 11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천호성지로 돌아온 시간이 10시 10분이다. 성지 순례자들과 함께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고 대성전으로 들어와서 고백성사를 보고 미사를 드렸다. 신부님께서는 강론을 통해 38년 동안이나 벳자타 못가에 앉아서 누군가 물이 움직일 때 자신을 넣어줄 것을 기다렸던 사람의 인내심을 칭찬하였다. 쉽게 포기하고 절망하는 우리의 나약함을 반성해야 한다. 병이 낫기를 기다렸던 사람을 측은히 여기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건강하고 싶으냐?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하시자 그 사람은 곧 병이 나았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내심과 기다림을 측은히 여기신다. 조급하게 응답을 기다리지 말고 주님께서 측은히 여기는 그날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난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당연히 여겼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 생겼다. 햇빛, 물, 공기, 산소, 건강한 몸, 부모, 남편, 자녀들, 형제들, 국가, 국민, 교회, 무엇보다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된 것, 성지순례를 다닐 수 있는 것 등 모든 것이 은총이며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38년 동안 구해줄 사람이 없어 연못가에 기다렸던 환자보다 60년 동안 큰 아픔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음이 더욱 큰 기적이며 은총이고 축복이다. 죽을병에서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는 것보다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더욱 큰 기적이다. 성인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모든 것이 정화되고 치유되고 하느님의 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을 가득 받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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