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위 (73)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산 1-9주변 T 063-284-3222)
2016년 3월 7일 사순 제4주일 월요일
풍남문을 순례하고 전동성당 앞에 주차한 차를 가지고 초록바위를 찾았다. 네비가 위치를 잘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차에서 내려 지나는 행인에게 초록바위가 어디냐고 했더니 바로 이곳이라고 하는데 옆에는 곤지산이 있고 산 앞으로 전주천이 흐르고 있었다.
초록바위는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남종삼의 큰아들 남명희와 남종삼과 함께 순교한 홍봉주의 아들을 교수형으로 죽인 후 전주천으로 밀어 넣어 수장시킨 곳이다. 남종삼이 처형되고 난 후 그의 부친 남상교와 큰아들 남명희는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를 한 감옥에 가두지 않는다는 국법에 따라 14세였던 남명희는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남명희는 국법에 따라 성인(15세)이 되는 이듬해까지 처형을 연기하고 옥에 가두어 두었다. 그후 이듬해에 이곳 전주천 옆의 초록바위에서 교수형으로 죽인 다음 그 시신을 전주천에 수장 시켰다. 남명희 집안은 3대가 순교의 영광을 입었다. 홍봉주는 충남 예산 출신으로 신유박해 때의 복자 홍낙민의 손자이며 부친 복자 홍재영 역시 기해박해로 순교한 바 있다. 그의 어머니는 정약종의 맏형인 약현의 딸로 기해박해 때 남편과 함께 순교했다. 이 두 가정은 온 가족을 처형하거나 노비로 삼고 가산을 몰수하는 혹형을 받았는데, 이 두 아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당시의 관례대로 전주 감옥에 수감했다가 나이를 채워 전주천에 밀어 넣어 죽였다. 병인박해 때 서울 인근에서 체포되어 의금부로 연행된 남종삼 성인은 홍봉주, 이선이, 최형, 정의백, 전장운 및 베르뇌 주교, 다블뤼 주교등과 함께 문초를 당하고 홍봉주와 함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되었다.
남종삼 성인에 관해서는 원주교구 묘재와 의정부교구 남종삼 묘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주님을 믿고 따름으로 최고의 관직과 권력과 재물을 다 몰수당하고 치명을 당하였으니 이와 같은 훌륭한 믿음을 과연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을까? 주님께서 내가 다시 왔을 때 믿음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하며 믿음을 잃지 말라고 했던 말씀이 생각난다. 주님 성인들의 전구로 흔들리지 않을 반석같은 믿음을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