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바위 순교성지 (67)
(충남 공주시 금성동 6-1 T 041-854-6321)
2016년 3월 4일 사순 제3주일 금요일
수리치골에서 황새바위 순교성지를 검색하여 달렸다. 30분 정도 소요가 되었고 11시 미사가 있기에 시간 안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미사예물을 봉헌하고 미사 전 기도를 하고 11시 미사를 봉헌하였다. 성지 담당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종착점은 어디인가? 질문하였다. 목표가 뚜렷하면 흔들림이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천국을 지향하고 있다. 고통과 시련이 있어도 확실한 목표와 지향점이 있으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오늘의 복음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말씀을 실천할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박해시대 교회의 심장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예로부터 황새들이 많이 서식하여 황새바위, 또는 목에 커다란 항쇄 칼을 쓴 죄수들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하여 항쇄바위라고도 불렸던 곳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순교자를 기록으로 남기며 박해시대에 한국 천주교회의 심장과도 같은 순교지이다. 당시 공주에는 충청도를 관찰하는 관찰사와 감영이 있었다. 공주 감영에는 세칭 ‘사학죄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끌려와 감사의 명령에 따라 황새바위에서 처형당하곤 하였는데 공개적인 처형이 있을 때면 맞은편 산, 공산성 위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병풍모양으로 구경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시신은 황새바위에서 제민천에 버려져 금강을 순교자들의 붉은 피로 물들이곤 하였다. 공주에서 처형된 순교자들은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꼬와 10명의 회장들을 비롯해 남녀노소 신분에 관계없이 무수히 많았다. 공주 감영록에 기록이 남아 있는 교우만도 337위이며, 이들 중 손자선 토마스는 성인품에 올랐고 이국승 바오로와 김원중 스테파노가 124위 복자품에 올랐다. 공주 황새바위는 1784년부터 1879년까지 100년 동안 순교자들이 줄곧 피를 흘려 목숨을 바쳐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했던 참으로 거룩한 땅이다.
미사 후에는 신부님께서 성지순례 온 우리들을 축하해 주었다. 신부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은 지석리를 가려고 한다니 잘 안내해 주었다. 성당 밖을 나와서 몽마르뜨 언덕을 지나 순교자 광장, 부활광장, 십자가의 길, 묵주 기도의 길을 둘러보았다. 또 부활광장에 놓여있는 다양한 십자고상들이 인상적이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부활에 이를 수 없음을 말하여준다. 십자가의 모든 고난과 고통과 아픔을 이겨낸 사람만이 부활의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말하여주고 있다. 순교자 현양비에는 이곳에서 순교하여 이름이 밝혀진 337명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었다. 황새바위도 성지순례를 통하여 처음으로 오게 되었다. 부활광장에서는 공주 전경이 평온하게 내려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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