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성지순례

다락골(청양) 순교성지(59)

기도하는 어머니 2016. 3. 6. 14:20

청양 다락골 순교성지 (59)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676-1 T 041-943-8123)

2016년 3월 3일 사순 제3주일 목요일

갈매못 성지를 순례하고 네비게이션에 청양 다락골 줄무덤을 검색하여 달리는데 중간에 좁은 산길로 들어가라고 하여 두어 번 좁은 길을 찾아 헤매다가 하는 수 없이 다락골 성지 성당으로 전화하여 길안내를 받고 찾아갔다. 10시 30분에 도착하여 대성당과 성당내부를 둘러보았다. 성당입구에 최양업토마스 사제의 일대기와 최경환 프란치스코, 이성례마리아의 삶이 지점토로 잘 표현되어 있었다. 미사시간이 되었는데도 신자들이 보이지 않아서 이상하다 생각하며 다시 사무장에게 전화를 해서 미사 드리는 곳을 문의하였다. 친절하게 입구까지 나와서 안내해 주었다. 성지 입구 성체 조배실에서 오붓하게 미사를 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다락골(탈을 안은 골짜기) 성지는 크게 새터와 줄무덤 두 부분으로 나뉜다. 다락골은 최경환 성인의 아버지 최인주가 신해박해(1791)를 피해 자신의 고향땅인 다락골의 ‘새터’에 정착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여 병인박해(1866)까지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다락골 교우촌은 경주최씨와 풍천임씨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마을이었으며, 박해 중에도 비교적 안전했던 교우촌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서울, 경기, 내포, 전라도 북부지역에 형성된 큰 신앙 공동체의 중간에 위치하여 가교의 몫을 담당하였다.

기해박해(1939) 기간 중에도 교회재건 운동에 힘썼으며, 1805년에 순교한 최신덕 바오로는 신태보 베드로 등과 더불어 신유박해(1801)로 흩어진 교우들을 집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새터는 다락골에서 남쪽으로 약 1km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새터와 그 일대는 최경환 프란치스코(1805~1839) 성인이 태어나 이성례 마리아와 결혼하였고, 또한 그의 장남이며 우리나라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1821~1861)와 그의 형제들이 탄생하고 성장한 곳이다. 다락골은 미래의 성인과 사제, 그리고 순교자들을 길러낸 터전이었다. 줄무덤은 다락골에 400년간 살아온 경주최씨들의 집성촌으로 마을 뒷산 종산에는 순교자들의 묘지가 있다. 이들은 병인박해시 홍주와 공주 감영에서 치명하신 무명 순교자들이며, 박해 당신 교우들은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한 봉분 속에 황급히 줄을 지어 가족끼리 시신을 묻었다 해서 ‘줄무덤’이라 전해져온다. 현재 40기 중 37기가 보존되어 있다. 제1줄무덤 14기, 제2줄무덤 10기, 제3줄무덤 13기이다. 성지에서 모시고 있는 유해는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앵베드 범 라우렌시오 주교, 성 모방 나 베드로 신부, 성 샤스탕 정 야고보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등 다섯 분의 유해를 모시고 있다.

원래 다락골 성지 신부님은 사제평의회에 참석 중이이서 친구 신부님이 대신 미사를 드리셨는데 얼굴이 빛나고 목소리가 시원시원하였고 강론 말씀도 좋았다. 신부님은 기쁨과 감사의 삶에 대하여 말씀해주셨다. “지금 기쁘신가요? 기쁘지 않다면 그 원인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기쁨이 사라지고 불평과 불만이 생깁니다. 기쁨은 현재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주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할 때 생깁니다. 순교자들은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며 주님을 생각하며 불평과 불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루하루 삶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기도하며 살아간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기쁨을 잃지 않는 신앙인들이 되기 바랍니다.” 오붓하게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서로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였다. 이 때 인천교구 갑곳 성지에서 만났던 방요왕 형제와 유 모니카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정말 반가웠다. 미사 후 신부님을 모시고 기념 촬영을 하고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말하였다. 그리고 다음 순례 행선지를 이야기 한 후 헤어졌다. 난 돌아오는 길에 새터에 들려 최경환 프란치스코, 최양업 토마스의 생가터를 둘러보았다. 집터만 남아 있는데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우리의 가족과 부모형제, 친인척들의 모든 가정들을 봉헌하고 집터를 한 바퀴 돌며 묵주기도 1단을 봉헌하였다. 양지바른 높다란 집터에서는 아랫마을이 내려다 보였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리 순교 성지(61)  (0) 2016.03.06
홍주(홍성)순교성지(60)  (0) 2016.03.06
황사영 알렉시오 묘(57)  (0) 2016.03.01
성 남종삼 묘(56)  (0) 2016.03.01
양주관아(55)  (0) 2016.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