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영 알레시오 묘 (57)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가마골 송추성당 T 031-855-1225)
2016년 2월 29일 사순 제3주일 월요일
황사영 알렉시오 묘에 관한 주소가 명확하지가 않아서 찾아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송추 부곡리 방면으로 약 2.7Km 정도 가면 도로 우측에 양평해장국 건물 뒤편에 있다고 하는데 양평해장국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을 회관에 들려 어른들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삼거리 동태집을 알려줬다. 겨우 이정표를 찾았는데 30M 들어가면 된다고 하는데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동태집 오른쪽 옆으로 들어갔더니 바로 황사영 알렉시오 묘가 있었다. 참배를 한 후 스템프를 찾았더니 없었다. 그래서 관할 성당 송추성당으로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네이버에 송추성당을 검색하였더니 주소가 정확히 떴다. 양주군 장흥면 호국로 477-31로 검색하여 큰 도로변까지 나와서 겨우 찾아갔다. 성당 마당에는 성모님이 추위에 떨며 쓸쓸하게 서 있고 성당 문이 열려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제 겨우 성당의 모습을 갖춘 듯하였다. 마음이 측은하여 감실 앞에 앉아서 송추성당과 신부님 신자들을 위하여 빛의 신비 5단을 바치고 성가를 부르고 잠시 기도하고 나왔다. 스템프는 성당 입구에 있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황사영 알렉시오는 신유박해로 인한 조선 교회의 참상을 장문의 밀서(황사영 백서)를 작성해 베이징 주교에게 전하려다 발각되어 대역부도죄로 처형되었다. 가마골 홍복산 자락 아래에는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의 무덤이 외롭게 있다. 당시 황사영은 양박청래(洋舶請來)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능지 처참형을 받았으므로 시신이 온전할 리 없었다. 또 정약현의 장녀이자 황사영의 부인인 정난주 마리아와 그의 어린 아들 황경한도 제주로 유배를 당했으므로 시신을 거둘 사람조차 없었다.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황씨 문중의 선산에 안장한 이들은 먼 친척이나 면식이 있는 신자들 몇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후 황사영의 무덤은 집안에서조차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그러다가 180년이 지난 1980년에 황씨 집안의 후손이 사료 검토 작업과 사계의 고증을 거쳐 홍복산 선영에서 황사영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발견하였다. 또 이를 발굴한 결과 석제 십자가 및 비단 띠가 들어 있는 항아리가 나오면서 무덤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성인의 묘는 외롭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정조대왕이 살았더라면 황사영은 조선의 역사에 빛나는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백서를 보면 필체와 문장이 뛰어나서 요즘 사람들은 감히 흉내도 못 낼 정도이다. 주님 때문에 능지처참을 당하고 온가족이 산산이 흩어지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슬프고 외로운 인생을 살았지만 하느님 품안에서 황사영 알렉시오, 정난주 마리아, 황경한이는 성가정을 이루며 행복한 영생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신앙을 하는 근본이다. 세상의 것과 바꿀 수 없는 영원한 것, 하느님이 다스리고 주님과 성모님 성인 성녀들 사랑이 흘러넘치는 곳 그곳이 우리가 가야할 본향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성지개발을 하여서 후손들에게 성인의 삶을 현양하고 추앙받을 수 있도록 모습을 갖추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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