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

테아 보우만 수녀이야기

기도하는 어머니 2012. 7. 6. 09:33

1. 타고난 음유 시인

  그녀는 다른 이들을 감화시킬 만큼 타고난 노래꾼, 춤꾼, 웃음꾼이었다. 또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는데,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종종 새들의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를 정도였다. 더욱이 그녀는 다양한 민족, 문화, 종교를 망라해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그녀가 사랑한 것은 단지 동시대인들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전 세대들과 앞으로 올 세대들까지 존중해 주고 축복해 주었다. 사랑에 힘입어 그녀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한데 아울러 이전의 것들과 앞으로 올 것들을 지금 여기 이 자리에 포괄할 수 있었다. 분명 테아 수녀에게 사랑은 경계가 없었다.

2. 사랑의 덕

믿음이 모든 덕의 기초라면, 사랑은 모든 덕의 원동력이다.

3. 사랑인 것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선익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이가 잘되기를 기원하며 그를 위해 바라는 것이 반드시 그 스스로가 바라는 것과 일치할 수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이 그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해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진정 선익이 되는 바를 알기 위해서는 덕의 본성과 인간 존재의 목적과 선한 삶의 윤곽에 대해 어느 정도 일반적 지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의  선익을 바라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의 그를 만든 상황으로 들어가 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이의 선익을 바라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전지대를 떠날 각오를 하고서라도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온전히 다가가야 한다. 사랑은 가없이 다가가는 것이다. 내가 어느 누군가에게 다가간다고 함은 내 모든 물질적, 정서적, 지성적, 영적 자산을 그의 처분에 맡기는 셈이 된다. 사랑은 본성상 가치 매김에 따라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이의 선익을 드높이려는 갈망에서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진다. 우리가 다가감의 정신을 함양해 나갈 때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는 심지어 적대자까지도 사랑받는 이가 된다. 자기 내어 줌, 온전한 다가감, 동반, 유대, 이런 것들은 진정한 사랑의 속성들이다. 이 사랑의 속성들은 바로 테아 보우만이 어렸을 때 배웠으며, 평생토록 길러 왔고,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다른 이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던 것들이다.

4. 선조들의 아이

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 걸쳐 미시시피 캔턴에 위치한 테아 보우만의 고향은 지역 농가 수확물들의 거래가 이루어지던 조용한 농업 중심지였다. 테아 수녀는 성장하면서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사랑으로 세워진 유대 관계 속에서 자신이 현재의 가족 친지뿐 아니라 자신보다 앞서 살다간 선조들과도 한데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흑인 영성의 전통과 깊은 친화력을 느꼈다. 선조들을 통해 그녀는 자기보다 더 큰 무언가의 세계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자신의 정체성을 의미 깊게 길러 나갈 수 있었다. 어린 버사는 “감리교회, 침례교회, 성공회, 예수재림교회, A.M.F(아프리카 감리교회), 시온교회에 두루 다녀봤다.”고 한다. 그녀는 “가톨릭 교회에 다닌 후부터 내 방황이 끝났어요. 마침내 내가 찾아 헤매던 곳을 발견한 것이죠”하고 고백했다. 1947년 여름 버사는 개신교 신자인 부모의 축복을 받으며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흑인 영가는 혼이 담긴 노래입니다. 우선 그것은 전인적입니다. 즉 생각과 상상과 느낌과 정서와 목소리와 몸이 모두 다 동참합니다. 둘째로 참여적입니다. 곧 예배드리는 공동체 회중이 관상과 찬양과 기도에 한데 참여하게끔 초대합니다. 셋째 현실적입니다. 곧 예배 공동체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슬픔이나 이별, 투쟁이나 탄압, 굳은 결의나 기쁨-을 기념하며 이러한 현실을 신자 공동체 내의 기도로 이어 갑니다. 넷째 그것은 영적으로 충만합니다. 곧 활기차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강렬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생명을 줍니다. 곧 생기를 주고, 격려해 주며, 위로와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귀 기울여 우리의 말을 들어 보세요! 세상은 미움과 투쟁과 원한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는 사랑과 웃음과 경배와 지혜와 정의와 평화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는 자유로우니까요, 우리 선조들은 태양의 열기, 채찍질, 노예 사슬을 견뎌 내야 했지만,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를 속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강하고 참으로 담대하니까요. 미국은 슬픔과 전쟁의 총성을 몰아내기 위해 우리의 힘과 우리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귀 기울여 우리의 말을 들어 보세요! 우리는 검은 미국의 목소리입니다.(The voice of Negro America)

1969년 비터보 대학을 졸업한 후 워싱턴 가톨릭 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서 미국 흑인 수녀 연합회 설립 회원이 되었고 흑인들의 음악, 시, 구전 전승, 역사를 주제로 한 강연을 한다. 영문학 박사 학위 취득 후 1972년 무렵부터 강사와 설교가로 초청을 받았다. 강연 중간에 절묘하게 노래를 삽입해 종종 자신의 애창 영가들의 가락을 읇곤 했다. 그녀는 비터보 대학으로 돌아와 영어 교수직을 맡고 흑인 가톨릭 신자로 살며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모든 존재, 내가 가진 모든 것, 내 흑인 영가와 춤, 동작, 가르침과 설교와 치유와 직무를 교회에 은사로 내어 주었다. 그녀는 대학 캠퍼스에서 가장 인기 높은 교수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성 토마스 모어, 윌리엄 셰익스피어, 윌리엄 포그너, 유도라 웰티, 그리고 일군의 미국 흑인 작가들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학생들을 감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인품과 전문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포크너와 웰티에게 영감을 준 장소들을 보여 주려고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인솔하여 미시시피로 견학 여행까지 떠났다. 그 후 병약해진 부모 곁에 머물기 위해 캔턴으로 돌아 온 그녀는 흑백 인종 간의 가톨릭 신자 교류를 만들어 나갔고, 교구 가톨릭 학교들에 다니는 흑인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향상과 교회 내 흑인 성소 증진을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실행했다.

테아 수녀가 수행한 직무의 요지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 다른 말로 표현하면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었다. 테아 수녀에게 있어서 하느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 중의 하나는 먼저 지극한 사랑이시자 연인이신 하느님과, 아울러 하느님의 창조 세계와 맺는 ‘동반(being-with)’관계였다. 프란치스칸 방식에 걸맞게 창조 세계 내의 모든 존재가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보았다. 동료 인간들, 선조들, 미래의 세대들, 자연과 야생 생물들, 이 모두가 하나의 유일한 사랑의 부모이신 하느님을 공유하는 형제자매들이었다. 가톨릭이란 말은 바로 모두를 뜻하는 것으로 사람들뿐만 아니라 창조 세계의 모든 존재를 포괄한다. 그녀의 세계 안에는 오직 ‘너’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테아 수녀가 주창하고 예찬한 장조 세계 내의 상호 연관성은 다수가 혼합되어 각 개별의 정체성이 소멸되는 상태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 동반하고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구체적인 너일 뿐이다.

그녀의 폭 넓은 사랑은 호소력이 있다.

검은색은 아름답습니다!

흰색도 아름답습니다!

갈색도 아름답습니다!

붉은색도 아름답습니다!

노란색도 아름답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며 만드신 온갖 색이며 중간색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머리도 아름답습니다!

곱슬머리도 아름답습니다!

대머리도 아름답습니다! 라고 선언했다.

다름과 차이는 소외를 낳을 필요도 없거니와 모든 창조 세계의 상호 연관성이라는 근본적 진리를 조금도 약화시키지 않는다. 사랑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볼 때, 다름과 차이는 우리의 세상 체험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자존감은 우리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지극한 사랑이시고 선이신 하느님께서 우리가 모두 사랑받도록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선함을 인식하지 못할 때 다른 이들과 더 나아가 창조 세계 전체의 선함에도 눈이 멀 수 있다.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자기혐오에 빠진 누군가가 용서의 과정을 밟아 가도록 그의 영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도우려는 것이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나 자신의 좋은 면을 느끼고 싶고, 여러분도 나의 좋은 면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이로써 나는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좋은 면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가르침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 화해를 이루어 갈 때, 서로 사랑하며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5. 죽을 때가지 사랑하고 싶어요.

1984년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이 보존 근치 유방 절제 수술을 하는 동안 암이 전이된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몇 달 동안 지속된 혹독한 화학 요법의 과정을 견뎌냈다.  1984년이 저물어 갈 무렵에는 그녀의 양친이 몇 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1985년 2월에 그녀는 화학 요법의 치료를 그만 하기로 결정했다. 휴유증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테아 수녀에게 남은 시간은 사랑의 궤도를 넓히는 걸 의미했다. 그녀는 청중에게 “우리가 집에서든 교회에서든 심지어 세상에서든 ‘나는 진정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점점 심한 구토와 어지럼증과 장 흡수 부전증과 통증을 겪었다. 결국 뼈가 너무 쇠약해진 그녀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다녀야 했다. 극도의 통증과 피로가 몰려 들 때에도 그녀는 기도 방법으로 흑인 영가에 의지했다. 그가 기억하기를 ‘선조들’도 기도하기 힘들 때 신음 소리를 냈다고 했다.

그래요. 저 역시 어떤 때는 신음 소리를 내고 어떤 때는 노래를 불러요. 기도하고 싶지만 너무 아파 힘을 낼 수 없을 때는 노래를 부르거나 신음 소리를 내거나 흥얼거려요. 아주 익숙한 노래들이기 때문에 기도하며 하느님과의 일치하는 데 좋은 방법이에요. 노래 부르거나 흥얼거리면 통증이 가시는 걸 느껴요. 노래에 집중하면 통증을 잊거든요. 이것은 내 선조들과 그들의 유산으로부터 물려받은 가르침이죠. “흑인 공동체의 선조들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주님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죽어 가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있다면 섬김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 있습니다. 죽음이 이 세상의 마지막 행위 절차이지만 최종적 판결이 될 수 없음을, 더욱이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동반’할 수 있음을 주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죽음에 직면하여 “내 삶의 역할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살아가게 해 주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또한 내가 늘 말해 왔듯이 죽을 때까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1989년 12월 테아 수녀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침상을 떠날 수 없었다. 1990년 3월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하얀색 묘비에는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이정숙 마리아 그녀는 평교사로서 교직을 떠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묘비명에 새기고 싶은 글-


6. 죽음처럼 강한 사랑

아가 8장 6절의 표현 : 사랑은 죽음처럼 강한 것이다. “그녀는 하느님과 깊이 사랑했고, 그 결과 사람들과 깊이 사랑했던 여인이었다.”죽음이 다가오면 우리는 저마다 완전한 무력감을 체험할 것이다. 죽어 감은 아무도, 가족도, 친구도, 사제도, 의사도 우리를 구해줄 수 없는 삶의 한 체험이다. 죽음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는 거부할 힘을 잃고 무력해진다. 죽음이 우리에게 분명해지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한다. 사랑을 실천한 사람에게 세상은 궁극적 당신인 하느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랑하는 이들의 현존으로 충만해져 점점 친숙한 자리가 된다. 우리가 죽어 갈 때, 그들의 사랑의 힘은 우리 곁에서 어두운 여정을 앞둔 우리를 위로해 준다. 테아 수녀가 우리에게 물려준 위대한 가르침이자 경고는 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능력을 심어 주셨지만, 훈련과 길들임 없이는 우리가 사랑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숨 쉬는 것처럼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온전히 다가가는 방식으로 다른 이들과 ‘동반’하려는 열망은 진지한 자기 성찰과 건강한 자존감의 함양을 수반해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상황으로 들어가려는 의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하는 헌신이 요구된다. 특히 실천하는 사랑은 때때로 혹독하고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생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또한 그러한 노력조차 거부한다면, 자신의 내적 자산과 힘이 동나기 시작하는 삶의 끝자락에 가서도 그것을 실행할 방도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행한 만큼 받는 자업자득의 결과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는 게 죽음이 아니다.


테아 보우만 수녀의 이야기는 나의 가슴에 흔적을 강하게 남겼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가 얼마 되지 않았고 영면하신 후 50여일 이상 아버지의 연미사를 드리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깊이 새기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아픔을 객관적으로 보고 너무나 쉽게 이해하려 했던 무지함이 아버지에게 죄스럽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살고 싶으셨을까? 얼마나 걷고 싶고 말하고 싶으셨을까? 손과 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을 때의 아버지의 실망감은 어떠했을까? 과연 이 깊은 마음을 알아 줄 자는 누가 있었는가? 우리는 아버지에게 무조건 힘을 내라고 용기를 내라고 모두를 용서하고 마음의 평화를 가지시라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몸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방광에 오줌이 조금만 샇여도 화장실을 가야 하기에 기저귀를 차기 전까지 밤새 잠을 못 주무시고 화장실을 나들었다. 마지막까지 기저귀는 안 된다고 하셨지만 그것조차도 거부할 힘이 없으셨던 아버지 너무 고통스러워 신음소리를 내며 고독한 밤을 보내셨다. 자신의 대소변을 어머니에게 돌보라고 하시며 딸들에게도 기저귀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마지막 때임을 아시고는 눈물을 보이셨던 아버지 아버지의 눈물은 본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얼마나 힘이 들어서 우셨을까? 아름답게 사는 기술에 등장하는 조셉 버나딘 추기경님의 췌장암의 고통, 테아 보우만의 유방암으로 인한 고통을 보면서 아버지의 전립선암, 방광암에도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수반했을까? 아버지에게 진심어린 사죄를 드립니다. 아버지 저의 기도를 통하여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로를 받으시기를 빌어봅니다. 그리고 성인들의 삶을 통하여 죽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감이며 그곳에서의 삶이 보장이 되어 있기에 인간의 삶은 결과적으로 희망적임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서의 모든 삶, 관계, 깨우침, 뉘우침, 사랑, 용서, 희망, 내어줌이 그대로 저 세계로 연결된다는 것, 우리의 눈으로 본적도 귀로 들어 본적도 마음으로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그 나라를 준비하고 있다는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에 가서는 얼굴을 마주대고 주님을 보게 된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참으로 많은 이가 죽음이 끝이라는 생각으로 세상의 삶에 있는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살아가고 있다.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울려 퍼진다. 주님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 과거에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이들, 앞으로 올 세대를 살아갈 많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어제 남편과 늦게까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영혼은 죽지 않기에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조상들로부터 들었던 어렴풋한 추억을 되살리며 억울한 삶과 죽음을 살았던 모든 분들을 위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선조들의 삶이 오늘 우리의 삶에 반영된다는 놀라운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주신 하느님은 영원한 찬미와 영광과 흠숭을 받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