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6월 10일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성 바오로딸에서 나온 21세기의 영적 멘토 토머스 머튼의 고백록‘칠층산’을 완독했다. 처음 가톨릭에 입문하여 감명 깊게 읽었는데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또한 대녀 안혜신 라파엘라에게 견진 선물로 사준 책인데 ‘칠층산’에서 감동을 느낄 수 없다하여 너무 어려운 책을 선물했다는 것이 미안한 생각도 들어서 한 번 더 읽게 되었다. 5월 초부터 시작하였는데 토머스머튼 성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읽고 5월 13일 제주도에 내려가서 우리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를 치루고 돌아와서 연결하여 책을 다시 읽었는데 바로 토머스머튼 성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장면에서 연결되었다. 성인의 아버지도 암으로 투병하다 온갖 고통을 다 겪은 후 돌아가셨는데 성인도 아버지의 운명하는 모습을 뵐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달려갔지만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영면 후 상실감에 빠진 성인의 마음과 아버지를 잃고 허탈감에 빠진 나의 마음이 얼마나 상통하던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슬픔은 누구에게나 똑 같은 아픔과 상처를 안겨 주는 것 같다. 쾌활하고 명랑하며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랑하는 어머니, 화가이며 자신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아버지, 늘 장손에 대한 기대와 후원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할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대신 돌봐주었던 할머니, 2차 대전에 참전하여 목숨을 잃은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동생까지 차례차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성인이 느끼고 생각하였을 인생이란 문제, 진리와 지성, 세상과 물질, 삶과 죽음, 또한 뉴욕의 슬럼가에서 고통받는 가난한 형제들을 보면서 느꼈던 아픔들, 가족 안에서 뚜렷한 신앙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여 방황했던 신앙의 문제 들을 깨달음의 순서에 따라 자서전 적으로 써내려간 고백록이다.
토머스 머튼은 1915년 프랑스 남쪽 프라드 지방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에서 유년기를 영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대학생활을 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열아홉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성년기를 보내면서 컬럼비아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게 된다. 영어, 불어, 라틴어, 독일어 등 언어에 능통하였고 시와 문학을 공부하였으며 당시에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모든 유흥 문화, 재즈 등에 열광하였다. 컬럼비아 대학 졸업 후 미국의 보나벤뚜라 대학의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교수로서 시인으로서 작가로서 세상적인 영화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지만 삶에 고뇌하면서 종교에 서서히 접근한다. 프로테스탄트, 성공회 등을 체험하기도 하였지만 다양한 종교적 갈등을 겪으면서 가톨릭을 서서히 알게 되었고 1938년에 전격적으로 회심하여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하여 가톨릭 신앙의 진리에 자신을 투신하며 영성적인 삶을 살았다. 1968년 전적으로 입회 하기까지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많은 갈등과 혼란과 망설임이 있었는가? 첫 번째 입회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수도자 사제가 될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수도원을 나오고, 두 번째 회심하여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칠 때까지 수사, 영성작가, 사회정의 수호자로 살았다. 칠층산은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나오는 칠층산에서 이름을 딴 것인데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칠죄종의 산을 하나하나 넘고 넘어 하느님의 산에 오르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난 군데군데 영성적인 깨달음 부분에서 공감했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 생각하며 마음에 새기고 싶은 글들이 있어 옮겨 놓는다. 성인을 나의 영성의 멘토로 삼을 것을 다짐하며
성인이 첫 번째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여름 피정을 하면서 미사 중에 느낀 것이다.
“보라, 보라! 하느님이 누구신지 보라! 이 미사가 무엇인지 깨달으라! 여기 십자가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라! 그분의 상처를, 찢어진 손을 보라! 영광의 임금님이 가시관을 쓰신 모습을 보라!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느냐? 여기 십자가 위에서 이 못들, 이 가시관으로 괴로워하는‘사랑’이 여기 있다. 너의 죄 때문에, 또한 그리스도를 모르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그분의 제사를 기억하지도 않는 사람들 때문에, 납이 달린 채찍으로 얻어맞아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죽기까지 피를 흘리는 ‘사랑’이 여기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과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그리스도한테서 배우라! 이 ‘십자가’와 이 ‘사랑’에서 그리스도께 생명을 바치는 법을 배우라.”
“보라, 하느님이 누구신지 보라. 모든 역사와 모든 생명과 온갖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맺어 기쁨과 슬픔으로 정착되는 이 무한한 제사에서 하느님께 올라가 하느님의 영광을 보라. 하느님 밖에 있는 모든 진리의 중심, 그 초점은 ‘사랑’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든 것을 네 중심으로 끌어당긴 너는 결코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여기 희생의 피로 가득 찬 성작 안에 ‘사랑’이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영광을 위해 죽는 것임을 너는 모르느냐? 그렇다면 네 사랑은 어디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기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너는 나를 사랑하는 시늉을 하지만 네 ‘십자가’는 어디 있느냐?” 칠층산 660-661쪽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가톨릭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유일한 종교이다. 유일한 삶의 길은 하느님의 현존이 가득한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영혼의 생명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은 의지 곧 인간의 최상급 기능이 동원되는 행위요 이 사랑으로 모든 노력의 최종목표인 하느님과 정식으로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영적 생명력과 행복의 원리이다.”
“마리아야 바로 내가 묵시록의 그리스도요 순교자들의 그리스도며 교부들의 그리스도이다. 성요한과 성바오로 성아우구스티노와 성예로니모 모든 교부와 사막교부의 그리스도시다. 하느님이요 그리스도요 임금이신 그리스도 바로 너의 구원자 네 영혼의 주인이다.”
“십사처에서 청원한 기도는 절대로 거절되지 않는다.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수도원은 행복하게 되는 법을 하느님한테서 배우는 학교다. 인간의 행복은 하느님의 행복과 무한한 자유와 완벽한 사랑의 완성에 참여하는데 있다. 사랑의 시초는 진리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당신 사랑을 주시려면 먼저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거짓을 깨끗이 고쳐 주셔야 한다. 트라피스트(침묵)수도자는 기도와 보속의 삶을 살도록 불린 사람이다. 미사와 성무일도와 기도와 영적독서가 관상생활의 수행이며 일과의 주요 부분이다.”
“수도자의 영혼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하러 오시는 베들레헴이다. 하느님 안에 머무르면 그 신비로운 지혜로 상처가 치유된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감싸고 있듯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감싸고 계시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하느님이 당신 사랑과 자비와 지혜로 늘 나를 감싸고 계신다. 때때로 어렵고 크게 느껴지는 문제가 나를 덮치기도 했지만 다 지나고나서 보면 내가 궁리해낸 해결책은 별 것이 못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용하게 나를 위해 모든 일을 해결해주신 것이다.”
“신앙 없는 행복이 가능한가? 만물을 초월하는 어떤 원리 없이 행복이 가능한가? 우리에게 하느님을 계시하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성화의 은총 하느님 자신의 삶과 아울러 영혼의 모든 약점과 한계를 극복하고 미친듯이 반란을 일으키는 육신을 제어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능력을 주신다.”‘칠층산’은 나의 전 생애를 조명하고 반성하고 영성을 다시금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특히 기도생활에 대한 확신, 묵주기도, 매일미사와 영성체, 십자가의 길 기도, 성무일도는 일전에 바치다가 쉬고 있는데 성무일도를 바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토마스 머튼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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