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성지순례

성지순례 제11일

기도하는 어머니 2021. 3. 2. 19:08

(순례 11일) 2020/2/7일 아레쪼(Arezzo)에서 라베르나로 이동하여 순례 열 번째 미사를 드린 후 점심식사를 하고 로마 미켈란젤로 호텔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아레쪼는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촬영지이기도 한데 늦밤 도착하여 투숙하고 아침에 바로 라베르나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도시 전체를 살필 수는 없었다. 조용한 외곽에 위치했던 호텔에서 나와 바로 라베르나로 달렸다. 출발할 때는 날씨가 흐렸지만 라베르나에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걷히고 날씨가 청명하다. 라베르나 산길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신부님은 예전에 이곳을 순례하였던 경험과 그때의 느낌을 기록했던 글을 읽어 주었다.

라베르나는 ‘프란치스칸 갈바리아’라 불리는데 여기서 프란치스코 성인이 오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산은 오를란도 카타니 백작이 성인에게 선물한 것으로 최고 높이 1283m이고 성지는 해발 1128m이다. 작은 계곡을 중심으로 깎아지른 듯 바위들이 있다. 일행은 성지 주차장에서 내려 산자락을 따라 걸었다.

2008년 이곳에 왔을 때의 감동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기도하던 동굴, 오상을 받았던 자리에서의 오열,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대기를 프레스코 벽화로 볼 수 있었던 회랑, 대성당 안에서 보았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낡은 수도복 등….

일행은 대성당 광장에 도착하여 커다란 십자가 주변에서 카센티노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첩첩 산중인 이곳까지 계곡을 타고 혼자서 힘겹게 올라왔을 성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잠시 후 수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성로렌조 경당으로 갔다. 이곳에서 순례 열 번째 연중 제4주간 금요일 미사를 드렸다. 신부님은 강론 중 우리가 일상에서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 시련, 유혹, 고독을 말씀하시며 극복하는 방법은 주어진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끌어안고 가는 것이라 하셨다.

미사 후에는 우선 프란치스코 성인이 상흔을 받았던 오상경당으로 갔다. 침묵 가운데 성인과의 내적 담화가 되었다. 기도하셨던 동굴들,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를 그린 오상 회랑,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이번에 눈에 들어온 것은 프레스코 벽화가 아닌 세라믹으로 조각한 성화들이다. 점심 식사는 작은 예수회 수사님들이 만들어준 샐러드와 빵, 감자튀김, 스파게티이다. 음식 맛도 좋았고 수사님들의 밝고 친절하고 생기 넘치는 서비스에 우리들의 표정도 한껏 밝아지는 느낌이다.

라베르나를 떠나올 때는 왠지 마음이 숙연해졌다. 다시는 못 올 것이란 생각 때문일까? 돌아오는 버스에서 디노님은 미켈란젤로의 시를 낭송해 주었다. 그는 조각, 회화, 건축, 시 등에 다양한 재주를 보이고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끊임없이 하느님을 갈망하고 자비를 청하고 있었다.

순례가 종착역을 향하여 달리고 있다. 이번 순례의 포커스는 성인이 되는 것인데, 과연 그 길을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로마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여러 가지 생각에 골몰하였다. 지금까지 삶이 나의 뜻대로 된 것은 없다.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나를 이끌었다. 주님께서 펼쳐주시는 삶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였을 뿐이다. 앞으로 주어질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껴안고 묵묵히 가는 것, 순례 중에 만났던 성인들처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라베르나에서 네 시간을 달려 로마 시내로 와서 첫날에 묵었던 미켈란젤로 호텔에서 마지막 여장을 풀었다. 저녁은 한식으로 먹었다. 외국에서 먹는 한식의 맛은 특별한 요리가 아니어도 그냥 맛있고 군침이 돈다. 호텔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모두가 1층 Bar에 모여 이번 순례에서 느낌을 나누었다. 소렌토에서 순례를 오게 된 목적을 이야기 할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들이다. 영혼이 밝고 맑아졌다고 할까? 모두가 받은 은총과 축복에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신부님의 탁월한 기획력과 실행력, 양떼를 향한 열정과 사랑, 디노님의 풍부한 지식과 해박한 설명, 가브리엘 부장님의 너그러운 마음과 넉넉한 미소, 또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형제자매들의 공동작품으로 이번 순례는 모든 면에서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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