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10일) 2020/2/6 목 시에나에서 피렌체로 이동하여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순례 아홉 번째 미사를 봉헌하고 하루 종일 피렌체를 순례한 후 아레쪼로 가는 일정이다.
피렌체는 토스카나 주 아르노 강변에 형성된 도시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과 예술로 유명하였다. 중세 유럽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동안 메디치 가문이 다스렸고, 1865년에서 1870년까지는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과거 피렌체를 호령했던 메디치 가문의 예술애호사상에 입각하여 배출된 수많은 르네상스 대표 예술가들의 작품이 피렌체 곳곳에 널려있어 마치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굵직굵직한 르네상스의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모두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수많은 작품을 피렌체에 남겼다. 이로 인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피렌체의 전경을 조망하기 위해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갔다. 피렌체 동남쪽 언덕 위 광장은 1850년 ‘쥐셉데 포기’에 의하여 만들어 졌으며 광장 가운데에는 미켈란젤로의 청동 다비드상(복사본)이 우람하게 서있다. 우리는 피렌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가서 도시 전체를 관망하였다. 오늘도 날씨는 맑고 시야가 깨끗하여 피렌체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가 있다. 도시 한 가운데 우뚝 솟은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쿠포라를 중심으로 산타 크로체 대성당, 아르노 강, 베키오 다리 등 하늘과 산과 강이 한 폭의 수채화다.
최고의 포토 존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광장을 내려와서 강가를 따라 산타 크로체 대성당까지 걸어갔다. 산타 크로체 대성당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다녀가신 곳으로 유명하고 꼰벨뚜알 수도사들이 관리하고 있다. 10시에 순례 아홉 번째 미사를 드리기로 선약되어 있어서 서둘러 성모 마리아 채플로 갔다. 매일미사 만 번을 지향하고 있는데 7,200번째 미사를 거룩한 십자가 대성당에서 봉헌하게 되다니…. 신부님께서 제의까지 다 입었는데 감실 열쇠를 가진 수사님이 계시지 않아서 미사가 조금 지연되고 있다. 앞자리에 앉아 기다리는데 순간 시선이 제대 정면의 프레스코 벽화에 머물렀다. 천사들에 휩싸여 하늘로 불러올림을 받으시는 성모님! 제대 맞은편 성모님께서 하늘에 올라 삼위일체 하느님께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시는 그림 두 작품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하! 지금 이 순간 천상의 모후, 하늘의 엄마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벅차올랐다. 잠시 후 수사님이 오셨고 감실 문이 열려서 우린 순례 아홉 번째,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미사 후 성당 전체를 돌아보았는데 이곳에는 피렌체를 빛낸 유명 인사들의 묘지가 있다.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마키아벨리, 로시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단테 등 르네상스의 예술가, 문학가, 음악가, 철학가, 과학자 등의 묘지가 성당 바닥에 묻혀 있다니 그분들의 기운이 대성당 안을 꽉 채우는 듯하다. 메디치 가문을 위한 경당도 있었는데 벽화는 대부분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산타 크로체 대성당에서 나와서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고풍스런 골목길을 걸어서 단테의 생가로 갔다. 한 때 그의 저서 신곡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어서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 직접 와 보게 된 것도 감동이다. 단테의 거리, 연인의 거리로 불리는 곳에서 잠시 머물러 단테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후 골목길을 빠져 두오모 근처에 위치한 점심 식사 장소(일 누티노)로 갔다. 피렌체 맛 집에서 티본스테이크(피스테카피오렌티나)와 와인을 곁들인 점심이야말로 순례 중 최고의 음식이다. 식사 때마다 일행들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듯, 모두가 와인 색처럼 볼그레해진 얼굴로 눈에선 사랑의 뚝뚝 흘러 내렸다.
오후에는 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 두오모 대성당을 관람하였는데 가장 눈에 뛰는 것은 106m의 거대한 주황색 돔이다. 이것은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만들 때 참고하였단다. 고딕 팔각 돔 하부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은 마치 천상의 모습을 재현한 듯하다. 설명을 듣느라 고개를 한참 쳐들어서 목이 아프다. 요한 묵시록 4장에 등장하는 스물 네 원로, 천사들의 합창,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성모마리아, 성인들, 덕행의 여인들, 성령의 열매, 돔 하부의 중대한 죄와 지옥을 그렸는데 이는 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 하느님의 손길인 듯하다. 종탑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나왔다.
다음은 도심 중앙에 위치한 시뇨리아 광장으로 갔다. 이곳은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정치 사회적 중심지였다. 광장에는 피렌체를 일으킨 코지모 데 메디치 동상이 있고,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모조품들이 서 있다. 당연히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 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인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잠볼로냐의 ‘사빈 여인의 강간’ 등 처음으로 보는 조각상들도 많다. 우피치 미술관은 시간이 없어서 관람할 수 없었고, 그냥 미술관 옆을 걸어서 아르노 강가로 갔다. 크지도 않은 강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고풍스런 역사적 도시가 형성되었다니…. 조금 더 걸어 베키오 다리 위에서 아르노 강을 바라보며 여유시간을 가졌다. 이때 재래시장과 백화점 쇼핑할 시간이 주어졌으나 우리는 아이쇼핑만 하고 돌아다니다가 질리 까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회전목마가 있는 곳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모두가 약속 시간을 척척 잘 지키고 있다.
이번에는 두오모 대성당 바로 앞에 위치한 산 조반니 세례당으로 갔다.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팔각형 건축물이다. 이 건물 남쪽과 북쪽의 청동문에는 유 안드레아 피사노가 제작한 청동 부조가 있는데 성당과 마주한 정문은 로렌초 기베르티가 제작한 ‘낙원문’이 있다. 이곳에서 낙원문의 제작 연대와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메디치 궁전과 메디치 성당은 겉으로만 보았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오늘 투숙하게 될 아레쪼로 달렸다.
피렌체를 하루 종일 다녔지만 가보지 못한 곳도 너무 많고 가이드의 설명을 많이 들었지만 뇌량 초과로 내용 정리도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도시를 단 하루 동안에 돌아다닌다 한들 얼마나 알겠는가? 기회가 닿는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피렌체에 다시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