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8일) 2020/2/4 화 아씨시에서 출발 오르비에토 두오모 대성당 내 성체포 소성당에서 순례 일곱 번째 미사를 드리고, 바뇨 레죠를 거쳐 볼세나 호수를 보고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을 순례한 후 아씨시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오늘도 아침 4시쯤 잠에서 깼다. 우선 아침기도를 봉헌하고 그날의 독서와 말씀을 묵상한다. 시간이 주어지면 순례기를 쓰거나 호텔 밖으로 나가 주변을 돌아보며 산책을 한다. 아침 6시에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작은형제회 수사님들과 성무일도를 할 수 있고, 6시 30분에 미사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5시 40분쯤 성당으로 갔더니 성당 문이 열려 있고 입장이 가능했다. 안으로 들어가 포르치운쿨라 소성당에서 성모님께 하루의 일정을 봉헌하였다. 지금까지 순례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쾌청하고 맑은 날씨를 계속 허락하시는 은총에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정각 6시에 대성당으로 갔더니 갈색 수단을 입은 멋지고 건강한 맨발의 수사님들이 모여들었다. 추운 날씨에도 맨발에 샌들을 신고 있었다. 어디에 계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수사님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성무일도를 하는데 고요하면서도 거룩하고 장엄한 화음이 천사들의 합창과 같다. 아침 6시 30분에 거룩한 미사가 거행되었고 영성체를 할 수 있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행복하고 영으로 충만했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자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하는 말씀이 영혼 깊숙이 파고들었다. ‘미사와 영성체, 말씀과 기도로 성인의 길을 가라.’고 했던 비오 성인의 말씀이 되살아난다.
조식 후 아침 8시 경에 오르비에토로 출발하였다. 오르비에토는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96km 떨어진 팔리아강과 키아나강 합류점, 해발고도 195m 바위산 위에 있다. 일행은 후니쿨라 정류장으로 가서 후니쿨라를 타고 오르비에토에 올랐다. 마을 중앙에 두오모 대성당이 있는데 화려하고 웅장한 대성당 건설은 볼세나에서 일어난 성체포 기적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성 마리아 프리스카 성당과 성 콘스탄쪼 성당이 있던 자리에 1290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여 3세기에 걸쳐 여러 건축가들의 의해 완성된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요소들을 고루 사용한 이태리 고딕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한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 성체포소성당에서 오전 10시 순례 일곱 번째 미사를 드렸다. 모세 신부님도 처음으로 들어 와 보았다며 성체의 기적 즉 성체와 성혈의 은총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다. 성체포소성당 제대벽화 중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들어 올리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또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라고 할 때, 승리의 십자가를 들고 무덤에서 부활하시는 예수님이 사제의 팔에 의해 들어 올리는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벽화에 그려진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고 타오르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데 나는 그 눈빛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매 미사 때마다 불꽃처럼 눈동자처럼 당신 자녀들을 살펴보고 계신 강렬한 눈빛, 우리의 내면의 모든 것까지도 환히 비추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라고 물어오는 듯하다. ‘주님 믿습니다. 부족한 저의 믿음을 용서하소서.’ 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미사 후에는 오르비에토 중심가에 있는 가게를 둘러볼 시간이 주어졌다. 이곳은 가죽 제품이 유명하다는데 가방, 지갑, 벨트, 장갑, 외투 등 수많은 가죽 제품들이 있고, 세라믹 제품들이 아주 예쁘게 여행객들의 손길을 기다리며 단장하고 있다.
점심식사 후 2,500년의 중세도시 천공의 성으로 알려진 ‘치비타 디 바뇨 레죠’ 로 갔다. 로마에서 북쪽으로 120km에 있는 아주 작은 도시다. 화산 분화에 의해 형성된 응회암 지형인데 두 번의 지진과 오랜 풍화작용으로 현재의 독특한 모양으로 변모했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오른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의 모습은 신비롭고 현대 문명과 다른 세계처럼 보였다. 이곳은 성 보나벤투라 성인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축일이 7월 15일인 보나벤투라 성인은 세라핌 박사로 알려졌고, 스콜라 철학에선 도미니코회 수도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와 쌍벽을 이루는 분으로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재건한 제2의 창시자로 기억되는 분이다. 현재 주민은 16명 정도 살고 있다는데 현지 주민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마을 중심에 대성당이 있고, 성물 가게도 있었다. 고색창연한 마을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 고즈넉이 남아 있어서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산책도 하고 담쟁이덩굴을 배경 삼아 온갖 폼을 잡아 사진도 찍으며 옛 도시의 정취를 만끽하였다.
바뇨 레죠에서 못 잊을 추억!! 우리를 이상한 눈빛(코로나로 우리를 중국인으로 오인하는 듯 힐긋거리며 뭐라고 함, 그때만 해도 코로나는 우리와 관계없는 이야기로 알았으니) 으로 바라보는 이방인들 때문에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주차장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버스를 타고 볼세나로 이동 하는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파아란 하늘과 자유롭게 흘러가는 구름들…, 시간이 날 때마다 들려주는 디오니 가이드와 모세 신부님의 이야기 등 천국이 이런 곳이 아닐까? 천상을 여행하는 듯 아주 많이 행복했다. 순례가 깊어질수록 함께 동행 하는 분들이 모두 살갑게 다가온다.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 엄마를 부모님으로 모시고 있는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 형제자매들이 아닌가?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들이다. 볼세나 강은 이탈리아에서 네 번째로 큰 강인데 차에서 내려 잠시 강가를 걷다가 바람이 세게 불어서 서둘러 버스를 타고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으로 갔다. 이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볼세나의 성녀 크리스티나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녀의 아버지는 우상숭배를 좋아하여 황금으로 만든 조각들을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 기도하곤 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성녀는 황금 조각들을 부숴버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다. 성녀의 아버지는 화가 치밀어 갖은 고문으로 성녀를 괴롭혔으나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되자 성녀의 목에 무거운 바위를 매달아 볼세나 강에 빠뜨렸다. 그때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성녀를 구해 주었다고 한다.
일행은 성녀 크리스티나가 모셔진 성당에서 기도하였다. 이 성당은 성녀 크리스티나를 기념하여 1077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 의해 봉헌되었다. 그런데 1263년 일어난 성체기적 성당으로 더 유명하다. 볼세나의 성체기적은 체코 프라하의 베드로 신부가 성체와 성혈에 대한 의구심에 사로잡혀 1263년 로마 성지 순례를 나섰다. 이때 볼세나를 지나던 중 미사를 봉헌하러 크리스티나 성당에 들렀다. 성찬전례 중 성체를 쪼개면서 그는 다시 의심에 사로잡혔다. “이 성체와 성혈이 진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일까? 바로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신부가 쪼개던 성체에서 피가 뚝, 뚝 흘러내렸던 것이다. 성체에서 흘러내린 피는 사제의 손가락을 적시고 제대에 깔려 있던 성체포로 흘러내렸다. 베드로 신부는 미사를 중단하고 오르비에토에 거주하는 교황 우르바노 4세를 찾아가 이를 보고 하였다.
그때부터 주님의 성혈이 새겨진 성체포는 오르비에토 두오모 대성당에 모셔졌다. 이때 교황은 토마스 아퀴나스 수사에게 성체를 공경하는 기도문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엎디어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으로 시작되는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이다. 우리는 성체포 기적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그 기적이 일어난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하루의 순례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성당을 나설 때도 비가 내렸지만 이동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아씨시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성체와 성혈,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묵상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