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5일) 2020/2/1 토 내심 이번 성지 순례의 핵심이라고 여겼던 산죠반니 로톤토에 가는 날이다.
소렌토에서 산죠반니까지는 네 시간 동안 서에서 동으로 가로질러 달려야 한다. 아침 출발 전부터 가슴이 뛰었다. 오상의 비오신부님은 20년 전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성인을 공경하게 되었으며 기회가 되면 산죠반니 로톤토에 꼭 가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열망이 꿈이 되었고, 꿈이 실현되어 지금 성인을 뵈러 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오늘도 날씨는 쾌청하고 싱그럽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보리밭, 올리브 농장, 겹겹이 접혔다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이탈리아 농촌의 속살을 보는 느낌이랄까? 우리네 농촌과 다를 바는 없으나 막힘이 없는 넓은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광활하단 느낌이 들었다. 어제는 나폴리의 아름다운 바다를 오늘은 이탈리아 내륙의 평화로운 농촌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비오 신부님 영상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였으나 영상 플레이가 고장 나서 모세 신부님과 디노님이 들려주는 비오 신부님에 관한 이야기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해발 566m 고지에 형성된 산죠반니는 주님의 품에 안겨 있는 듯 고요하고 평화롭다. 고통을 더는 집과 성인이 주로 머물면서 미사를 드리고 고백성사를 주었던 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이 고즈넉이 펼쳐져 있다. 비오 신부님 영성센터에 여장을 풀고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기념관을 둘러보고 신부님이 평생 미사를 드리고 고백성사를 주었던 성당에서 오후 3시에 순례 네 번째 미사를 드렸다. 성인의 따뜻한 마음과 위로가 느껴졌다. 미사 후 new church로 건너가 오상을 받은 가대와 성인의 무덤과 유품들을 살펴보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 시간까지 기도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서 여유가 있었다. 기도 후 성물 가게에 들려 대녀들과 레지오 단원들에게 나눠 줄 작은 액자를 여러 개 구매하고 영성센터로 돌아왔다.
새벽에 잠에서 깨었는데 그렇게 기대하였던 순례가 단 한 번의 미사와 유품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컸다. 다시 올 수 없는 곳이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비오 성인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성전 밖에 세워진 비오 성인 동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이곳에서 성인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지금까지의 삶을 고백하고, 어려울 때마다 이끌어주신 모든 은총에 감사드리며 이번 순례의 경위를 말씀드리고 잠시 주님 안에 머물렀다.
“딸아,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아주 잘 왔다. 사랑하고 축복한다. 이번 순례일정에 주 성모님과 성인들이 동행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상상 이상의 은총과 축복이 내려질 것이다. 성인이 되어라. 거룩한 삶을 살아라. 매일미사와 영성체, 성경말씀과 기도로 영혼을 가꾸어라. 일상의 소소한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성실하게 실행할 때 천국은 너의 것이다. 네게 닥치는 십자가를 모두 기쁘게 끌어안아라.” 말없는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렀다.
성인이 주신 말씀을 간직하며 6시 30분 신 성당으로 가서 현지미사를 드렸다. 미사 안에서는 인종, 언어, 국적 차별이 없다. 가톨릭 신자라면 세계 어디에서든 미사 참례와 영성체가 가능하다. 또한 그날의 말씀과 전례의 흐름이 같으니 미사를 통하여 모든 이가 주님과 일치할 수 있다. 마음 깊은 곳에 아무도 모르는 보화를 가득 채우고 성전을 나섰다. 이때 동편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은 성체의 형상으로 영혼 깊은 곳까지 쏟아져 내렸다. 찬미와 감사에 넘쳐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느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찬미합니다.”를 마음껏 외쳤다.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내려올 때 모세 성인의 감정이 이러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