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신학(12주간 묵상)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23)

기도하는 어머니 2018. 7. 22. 21:42

12주간의 묵상

 

4주간 다섯째 날 (7.21.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호세 1, 1-11

 

본문 :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23)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2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3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5 그러나 그들은 이집트 땅으로 돌아가고 아시리아가 바로 그들의 임금이 되리니 그들이 나에게 돌아오기를 마다하였기 때문이다.

6 그들의 계략 탓으로, 칼이 그 성읍들에 들이닥쳐 성문 빗장들을 부수고 삼켜 버리리라.

7 내 백성은 나를 배반하려고만 한다. 그들이 위를 향해 부르짖어도 누구 하나 일으켜 세워 주지 않으리라.

8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내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츠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10 그들이 주님을 따라오리라. 주님이 사자처럼 포효하리니 그가 포효하면 그의 자녀들이 떨면서 서쪽에서 오리라.

11 그들은 떨면서 이집트에서 새처럼 오고 아시라아 땅에서 비둘기처럼 오리라 그리고 나는 그들을 다시 제집에서 살게 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23)

 

마리아야!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마리아야!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너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오늘 네 마음을 바꾸어라.”(호세 11,8)

 

호세아서의 이 말씀은 나를 천주교로 개종하게 하였다. 막내가 심하게 아팠다. 연일 병원에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아기를 돌보는 시할머니가 아기가 많이 아프니 더 이상 아기를 볼 수 없다며 아기구덕을 팽개쳤다. 그날 저녁은 수요일이었다. 아기를 들쳐 업고 교회를 찾았다. 오늘 저녁 이 아이의 병세가 약해지고 잠을 잘 자면 내일부터 아침 100일 새벽기도를 드리겠다고 하느님과 약속을 하였다. 아이의 병세는 완화되었고, 다음날부터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하였다. 너무 열심히 교회에 나가자 남편은 느닷없이 제사문제를 들고 나왔다. 개신교회는 교리적으로 제사를 지낼 수 없다고 하자 남편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여자와는 살 수 없다며 이혼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은 이혼을 하지 않으려면 성당으로 가서 예수님을 믿어라. 그러면 나도 불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겠다.” 라는 제안을 하였다. 난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데 개신교를 떠나 천주교로 간다는 것은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과 이혼에 관한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 8살 어린 딸이 우리의 대화 내용을 모두 듣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엄마랑 새벽기도에 따라 나섰다. 당시 개척교회에 나가고 있었는데 담임 목사는 부흥회 강사로 출타 중이었고 내가 날마다 새벽기도를 나가고 있으니 교회 열쇠를 나에게 맡기면서 새벽기도에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도록 지시를 하였다. 난 목사님의 말씀에 따라 연일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새벽 기도에서 읽었던 말씀이 호세아서 11장이다. 나는 네가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마음을 바꾸어라.” 끊임없이 마음을 바꾸어라.” 하는 이야기가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는 큰 소리로 엄마 성당에 가, 성당에 가도 예수님과 하느님이 계시다고 했잖아,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면 난 죽어 버릴꺼야~~” 아이의 부르짖음에 황당하였지만, 천사의 음성으로 들렸다. 마음을 바꾸어라.” 하는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들렸다. 그래서 저녁에 성당을 찾아가게 되었고, 그날부터 날마다 미사에 나가면서 성당에서 교리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세례 후 성령쇄신운동에 참여하면서 본당 기도회, 교구기도회, 성령세미나, 성체세미나, 성모신심세미나 등 교회 신심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성모님께 드리는 묵주의 9일 기도를 통하여 복음의 신비를 묵상하게 되었다. 명오가 열리면서 신앙의 신비에 빠져들었다.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은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되었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된 성교회의 풍부한 유산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교계제도가 형식주의라고 생각했었는데 형식이 없는 내용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2000년 동안 사도로부터 이어져온 성교회를 사랑하게 되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처럼 구원받은 백성들을 세상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첫영성체, 병자성사 등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여 지는 표징으로 드러내주었다. 예수님을 대리하는 주교님과 사제들을 통하여 미사의 모든 은총을 받을 수가 있다. 성교회는 하느님께서 선택한 백성들로 새로워지고 자라나고 있다.

 

성당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성무일도를 바치는 수녀들의 뒷모습은 너무나 거룩하고 아름답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처럼 보였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제와 수도자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표징이다. 새롭게 부임해 오신 주임 신부님은 5년 동안 사목하면서 항상 같은 양복을 입으셨고 근검하였으며 임기를 마치고 다른 임지로 떠나실 때는 오실 때의 모습 그대로 가방 하나를 들고 떠나는 모습에서 가난과 청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년 또는 3년 동안 소임을 다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갈 때의 수녀님의 모습 또한 순수하고 청빈하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배우자와 행복하게 살 수 있음에도 세상의 기쁨과 행복을 모두 포기하고 하느님의 아들, 딸로서 살아가는 성직자, 수도자의 삶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그분들을 거룩한 삶으로 이끌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세례 후 3년 정도는 매일 미사를 나갈 때마다 눈물콧물을 흘렸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어느 날 아는 신부님께 저는 바보처럼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릴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데 주체할 수가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것은 영혼이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라며 눈물을 흘려 영혼의 떼를 씻어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남편도 세례 후에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 미사 중에 받아먹는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살과 피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먹이는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이다. 그리고 주님의 몸을 영하는 순간 주님의 몸으로 성변화가 일어난다. 생각, , 행동은 물론 감정과 의지와 지성까지도 주님의 것이 된다. 어둠이 걷히고 위선과 가식이 벗겨지면서 모든 것이 서서히 변하여 갔다. 미움은 사랑으로, 걱정은 기도로, 슬픔은 기쁨으로, 육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교만과 이기심은 겸손과 이타심으로, 불평과 불만은 감사와 찬미로 오직 하느님으로 만족하는 삶이 되어갔다.

 

세상을 창조해 주심에 대한 감사가 마음에 사무쳤다. 무상으로 주어진 자연의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늘, 구름, 바람, , 나무, 들판, 논과 밭, 모든 꽃과 열매들, 바다와 그 안에 가득한 것들,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하며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하느님이 작품임을 느꼈을 때 그들을 향한 애정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못마땅하게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남자들은 왜 그럴까? 고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이 내게는 십자가로 여겨졌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딸, 아내, 어머니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 거룩한 도구였음을 깨달았다. 아버지 눈빛에 숨어있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고, 부족한 아내를 극진히 사랑해 준 남편이 너무나 고마웠다. 사춘기 방황으로 어미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아들도 점점 이성적으로 지성적으로 성장하면서 그의 고유한 장점들이 드러났고, 숨겨진 재능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세상 수많은 남자들이 있지만 나에게 어머니라고 불러줄 남자는 오직 하나 나의 아들뿐이다.

 

나에게 늘 기쁨이 되어주고 보람과 긍지를 갖게 하는 귀여운 두 딸! 엄마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박수를 쳐주는 두 딸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어느 날 큰 딸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멋진 청년을 데려왔다. 자네 우리 딸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느냐?” 라고 물었다. 사위가 예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하였을 때 다른 조건을 내걸지 않고 결혼을 허락하였다. 날이 갈수록 믿음직하고 멋진 사위다. 주님께서 대한민국에 그런 사위는 없다.” 라며 우리 사위를 칭찬해 주었다. 큰딸내외도 아들 둘을 낳아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며 사위가 먼저 박사학위를 받고 딸도 곧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외손자 둘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재능이 뛰어나고 자립심이 있어서 스스로 자신의 꿈을 펼쳐가는 손자들이 너무나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요셉과 데레사, 비오와 베네딕도 모두가 하느님과 성모님의 아들, 딸이 되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아들도 어느 날 여자 친구를 엄마 아빠에게 소개시켜 준다고 하였다. 만날 약속을 정하였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마가 끼었다. 남편과 아무것도 아닌 일로 다투었다. 남편은 화가 나서 오늘 아들과의 약속을 파기한다고 선언하였다. 나도 속이 상하여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누워있는데 비몽사몽 중에 오늘 만나는 처자가 너희 며느리가 될 터인데 왜 약속을 어기려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렸다. 화들짝 놀라 깨어났고, 남편의 마음을 풀어드리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문에 보내주신 며느리라고 생각하니 느낌이 달랐다. 마음이 확 열리면서 꼭 끌어안아 주었다. 예쁘고 믿음직하였다. 결혼 전에 세례를 받아 혼배를 하고 올해는 견진을 받았다. 둘은 결혼 후에도 학업을 계속하여 박사학위를 같은 날짜에 받았다. 그 아이들이 하는 일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며느리는 나에게 가장 큰 선물, 가장 귀한 보물, 기쁨과 행복 덩어리, 손자 가브리엘을 낳아주었다. 지금 세살인 가브리엘은 온 집안의 사랑과 귀염을 받으며 잘 크고 있다. 얼마 전에 둘째까지 가졌으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나는 이 모든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며느리가 직장 생활하는데 방해받지 않도록 손자양육을 전담하고 있다. 사도요한, 헬레나, 가브리엘도 성가정 안에서 믿음생활을 잘하고 있으니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다.

 

막내 딸 글라라! 귀하고 사랑스런 딸이면서 나의 영적인 동지이다. 태중에서 하느님이 선택한 아이이다. 아직까지 자신이 뜻하는 대로 길이 열리지 않고 있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고 있으니 두려움은 없다. 대기만성! 주님은 분명 그 딸을 통해 당신의 꿈을 이루실 것이다. 고난 가운데서도 늘 긍정하고 최선을 다하며 하느님의 깊은 뜻을 찾아내는 신앙심이 깊은 딸이다. 글을 잘 쓴다. 언젠가는 글쟁이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리라 믿고 있다. 교사로서 학생들 지도에 탁월한 능력이 있고, 주일학교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주님과 성모님께 대한 믿음도 흔들림이 없고 올 곧다. 어렸을 때부터 이타적이었고 마음이 넓었으며 순결하고 성실하였다. 타인을 배려하고 어머니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주는 딸이 있어서 나는 정말 행복하다.

 

뒤를 돌아보니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며 축복이다. 가방하나 가지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주님의 돌보심 안에 이 모든 것들을 얻게 되었다. 주님은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우리를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부모형제들과 믿음의 형제자매들, 교직생활을 통해 알게 된 수많은 동료들!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