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성지순례

해미 순교성지 (53)

기도하는 어머니 2016. 2. 29. 21:52

해미 순교성지 (53)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274-10 T 041-688-3183)

2016년 2월 28일 사순 제3주일

어제 저녁부터 해미순교성지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움직이면 몸은 따라 나서기가 쉽다. 몸은 마음에 순명한다. 날씨가 오전에 흐리고 오후에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망설였는데 갑자기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이 생각났다. 신부님이었으면 어떻게 하였을까? 하느님이 이끌어주는데 ‘날씨가 무슨 장애가 될까?’ 를 생각하니 어느 새 밥을 하고 간단하게 김밥을 싸고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허락하면 해미순교성지→합덕성당→신리→신평 원머리까지 돌아볼 생각이다. 아침 8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네비게이션이 가르치는 대로 대전교구 해미성지를 향하여 달렸다. 주일은 고속도로에 차량이 없어서 성지순례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군포를 거쳐 비봉 IC를 거쳐 서해안고속도로를 탔다. 달리다가 서산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해미 IC에서 진입하여 해미순교성지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10분 정도 되었다. 백문의 불여일견이다. 참혹했던 순교의 현장에서 포승줄에 묶여 태질당하고 생매장 당했던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렸고, 이곳저곳 순교자들의 흔적을 마음에 새겼다. 이름 없는 집에서는 성경 이어쓰기(요엘 2장 25절에서 27절)도 하였다.

속칭 “해뫼”라 일컬어지는 해미 고을은 천주교가 전파된 내포지방의 여러 고을 가운데 유일하게 진영이 있던 군사 요충지였다. 1418년(태종 18년)에 병마절도사영설치, 1491년(성종 22년)에 석성이 완공된 해미진영은 1651년(효종2년)에 토포사를 겸하는 종3품의 겸영장을 둠으로 179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거의 100여 년 동안 천주교 신자들 수 천여 명을 국사범으로 처형하게 된다. 해미의 첫 순교자는 1797년 정사박해의 여파로 1800년 1월 9일에 순교한 인언민 마르띠노와 이보현 프란치스코이다. 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도 10년 간의 옥고 끝에 1814년 10월 20일에 해미옥에서 옥사하였고, 이 세분은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최근까지 밝혀진 해미의 순교자는 교회측 기록 67명 관변측 기록 65명으로 아직도 수천 명의 순교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이름 모를 순교자로 남아있다. 서문 밖 순교지에서는 군문효수, 백지사형, 교수형, 동사형, 자리개질 등 갖가지 방법으로 신자들을 처형하였는데, 돌다리 위에 연약한 순교자를 서너 명의 군졸들이 들어 올려 자리개질(태질)하여 머리와 가슴으로 으스러지게 하는 방법은 특별히 더 잔인한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학 신자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어 거머리 바위까지 흘러가 멈추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1790년대부터 병인대박해 때에는 동구 밖 서쪽의 나무가 우거진 숲정이라 불리던 곳에 수많은 신자들이 생매장 순교하였다. 이곳을 여숫골이라 부르는데 그 유래는 순교자들이 죽음의 길을 “예수 마리아”라 부르며 기도하여서 신앙이 없는 동리 사람들에게는 “여수머리”로 들렸기에 여숫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생매장 터로 가는 길에 큰 개울을 만나게 되는데 개울을 건너는 곳에 외나무다리가 있고 그 밑에는 물길에 패인 둠벙이 있었다. 두 팔을 뒤로 묶여 끌려오는 천주학 신자들이 외나무 다리 위에서 둠벙에 밀어 넣어 버리기도 하였는데 묶인 몸으로 곤두박질 당한 신자들은 둠벙 속에 쳐 박혀 죽었다. 이 둠벙에 신자들을 빠뜨려 죽였다 하여 동리 사람들 입에 ‘죄인 둠벙’이라 일컬어지다가 오늘날에는 말이 줄어서 ‘진둠벙’이라 불린다. 유해 발견 당시 이 뼈들이 수직으로 서 있는 채 발견되었다 하는데 그것은 죽은 몸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 묻혔다는 증거이다.

성지담당 신부님은 주일미사 강론에서 죄 없는 이들의 죽음과 회개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한 것이다.”

(루카 13, 2-5)

우리 기억에 떠올릴 수 있는 참혹한 사건들(서해 훼리호, 세월호, 삼풍백화점붕괴, 성수대교 무너짐, 가스폭발사건)을 보며 죄 없는 이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하느님은 계신가? 선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은 선한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두는가?

이러한 일들은 인간의 악행과 부주의가 저지른 사고이며 죽은 이들의 죄가 아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는 잘 알아들어야 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죽은 이들의 잘 못이나 죄를 말함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것이 전부인 양 쾌락, 물질, 명예, 학벌, 권력을 쫓아 살아간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것도 인간에게 안정감을 주거나 불안을 막아주지 못한다. 또한 그것들이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한다. 모든 인간(나)에게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이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우리는 사형선고를 받고 유한한 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죽음에 대비하여 하느님께 돌아갈 준비를 일상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찾아 만나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 우리의 시선을 세상의 것에만 둘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느님께 두어야 한다. 회두란 말머리를 돌리는 것 즉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려 하느님의 뜻을 살아가는 것이 곧 회개이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와 같은 것임을 알고 하느님만이 우리의 구원자,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갖고 있으며, 인생의 디딤돌이 되어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느님은 자비롭고 인내가 크시다. 그러나 그 인내에 한계가 있다. 시간이 남아 있을 때,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하느님을 찾아 만날 준비를 해야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에 대비하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된다. 신부님은 미사 후 잠시 성지에 대한 안내를 해주었다. 자비의 특별희년을 위한 상설 고해소 설치, 순교자 박물관, 형구 틀, 순교자들의 유해, 진둠벙, 십사처, 해미순교탑, 해미읍성, 호야나무, 해미성지묵주(무환자나무열매) 등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다. 나처럼 처음으로 순례 온 신자들이 많았다. 미사 후에는 해미성지에 대한 안내 동영상을 15분 정도 보여주었다. 병인박해의 참혹한 현상을 영상으로 돌아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천주신앙은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고문과 박해로, 죽음으로 이뤄진 것임을 뼈 속 깊이 알게 되었다. 또한 신앙인으로서 부모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끼며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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