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내면에 형성되는 예수님의 거처 (천상의 책 제2권)
“딸아, 모든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영혼 안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내 집을 짓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다. 그것이 없고서는 내가 그 영혼 안에서 살 수 없을뿐더러 내 집을 지을 수도 없다. 영혼이 모든 것을 나가게 한 후라야 내가 들어가서 그 영혼의 의지와 더불어 집을 짓는 것이다. 이 집의 기초는 겸손이다. 겸손이 깊을수록 벽은 더 높고 견고하기 마련이다. 이 벽은 극기라는 석재로 만들어지고, 그 위에 사랑이라는 순금이 입혀진다. 벽이 완성되면 나는 탁월한 화가로서 벽화를 그릴 준비를 하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그림들을 제작한다. 그러나 모르타르와 물이 아니라 모르타로로 상징되는 내 수난의 공로와 물로 상징되는 내 피로 그렇게 한다. 이로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른 어떤 충격을 받더라도 견고하게 버티는 데 도움이 되게 한다. 다음에는 문들을 만들 차례이다. 목재처럼 단단해서 잘 변형되지 않는 문을 만들려면 침묵이 필요한데 이것이 외적인 감각들의 죽음을 이룬다. 그리고 이 집을 보호하려면 안팎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파수꾼이 필요하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이니, 닥칠 가능성이 있는 결함이나 장애나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그것을 지킨다. 이 거룩한 두려움이 집 주인으로 하여금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행동하게 한다. 그는 거룩한 두려움으로 말미맘아 오로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활동할 뿐 다른 의향도 없다. 다음으로 이 집을 꾸미고 보화들로 채워야 한다. 이 보화들은 바로 거룩한 열망과 눈물이다. 즉 구약의 보화들이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그 보화들 속에서 구원을, 이들의 약속에 대한 충실 속에서 위로를, 고통 속에서 힘을 찾아내었다. 요컨대. 장차 오실 구세주에 대한 열망 속에 그들의 운명을 걸고 있었고, 이 열망 때문에 마치 육상 선수처럼 달렸다. 열망이 없는 사람은 거의 죽은 사람처럼 행동하므로 덕행들도 죽기 마련이다. 모든 선이 귀찮고 괴롭고 노엽고 한스러워서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게 되니, 선의 길도 기어가는 것처럼 느릿느릿 가게 된다. 열망을 가지고 있는 영혼들은 이와 정반대이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무겁지 않고 모든 것이 즐겁기 때문에 날아간다. 고통 자체 속에서도 기대에 찬 열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쁨을 찾아낸다. 처음에는 바라던 것을 나중에는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다 보면 더없이 유쾌한 기쁨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집을 짓기 전부터 이 열망과 함께 있어 온 것이다. 이 집을 꾸미는 장식물은 언제나 고통에 순수한 고통에 기초를 둔 나의 삶이라는 지극히 귀한 보석과 진주와 더없이 감미로운 향기를 풍기게 한다. 극히 작은 꽃으로도 그렇게 하면서 즐거운 천상 음악을 연주하여 낙원의 공기를 호흡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한 가지 빠뜨린 점은 이 집에 평화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바로 잠심과 내적 감각의 침묵에서 온다.”
“영혼들의 구원에 방해가 될 정도로 넘쳐흐르는 죄악의 강 그 흐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기도와 예수님의 상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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