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유고집

겟세마니의 기도

기도하는 어머니 2014. 2. 8. 12:29

2012년 6월 9일 마르코 14장 32절~42절 겟세마니에서 기도

저녁 만찬을 끝낸 예수님과 제자들은 겟세마니 동산으로 올라갑니다. 선선한 저녁바람이 부는 동산은 보름이 멀지 않았는지 저녁달은 이미 동산위에 떠올라 달빛이 참 밝았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개짓는 소리와 노랫소리, 만찬을 마친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들이 멀리서 들립니다. 제자들은 떠들썩합니다. 저녁 만찬 중에 한 잔씩 마신 포도주가 그들의 마음과 얼굴을 발갛게 달구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뻐하면 하느님을 찬양하며, 찬송가를 부르며, 천진난만하게 겟세마니 동산으로 올라갑니다.

(예수님) '얘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기만 하구나. 내 마음은 무겁기만 한데. 아까부터 사탄이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도망가라고도 하고, 하느님은 대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당할 일들을 생각하니 정신이 어지럽다.'

"내가 기도하는 동안 여기 앉아 있어라."

'오늘은 모두 술을 좀 많이 마신 것 같다. 얘들을 모두 기도하라고 할 수는 없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다. 조금 있으면 이들이 얼마나 겁에 질리고 의지할 데가 없어 할까? 그러니 오늘은 푹 쉬어 두어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좀 더 깊은 숲속으로, 더 조용한 곳으로 옮겨가자. 그곳에서 기도해야 겠다. 내 마음이 너무 조촐하니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

'좀 더 동산을 올라가니 밤바람이 찬데 기도하기 좋은 자리가 있어 머물러 앉았다. 그러나 주위가 좀 조용해지니 내 마음이 불안과 공포와 번민이 나를 휘감는다. 사탄의 유혹은 점점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이 아이들이 나를 보고 두려워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고 조금 앞으로 나가 엎드리시어,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며,"

'엎드려 기도를 시작하려고 하자 사탄이 나를 유혹한다. '예수! 당신이 지금하려고 하는 일은 성공하기만 하면 정말로 위대한 일이요. 인간을 구원하고, 죽음을 쳐 이긴다니 말이요.우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오.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을 한다고 해도 하느님은 천상 보좌를 당신에게 넘겨주거나 심지어 당신을 칭찬하거나, 위로하거나 그러지 않을 거라는 말이요.' '그러니 지금 이 일을 포기하고 다마스커스로 도망치시오. 유다스가 지금 대사제들과 약속하고 당신을 체포하려고 군사를 데리고 오는 모양인데 그건 내가 적당히 처리해 주겠소. 일단 다마스커스로 탈출하면 내가 당신을 위대한 예언자나 정치가, 상인으로 만들어 주겠소. 백성들은 모두 당신 것으로 해 주겠소.' '또 내가 보니 예수! 당신이 이 일을 하면 하늘에 계신 저 양반이 당신을 칭찬하실 것 같소. 아니요. 당신이 얻어터지고, 채찍질 당하고, 피를 흘리고, 아무리 고통을 당해도 그 양반은 절대로 대답하지 않을 것이요. 심지어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그 양반은 눈도 껌뻑하지 않을 것이요. 그러니 애시당초 포기해요. 내가 당해 본 일이요. 그 양반의 명령을 받고 온갖 수고를 다했지. 성과를 아무리 올려도 그만 아무 응답이 없었소. 그래서 내가 그 양반을 대신하려고 반란을 일으켰어. 실패는 했지만 그래도 뱃속은 편안해. 내가 그 양반에게 구애 받지 않고 멋대로 살아도 되고 말이요. 예수 당신도 그저 순명, 순명하며 하느님 일에 무조건 '예스' 하지 말고 한번 들이받아, 내가 도와줄게. 당신도 내 말만 들으면 나와 같은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다니까?'

'사탄의 유혹에 대한 나의 대답, 나의 결의, 그것은 내가 아버지에게 나의 지극한 사람을 드리는 것 뿐이었다. 나의 모든 존재,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당신께 순명하는 것, 그것이 나의 생명이고, 나의 빵이고 음료며, 삶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나는 나의 결의를 다진다. 하느님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진다. 아빠! 아버지!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은 당신께서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당신은 저에게 침묵으로 응답하셨다. 내가 피땀을 흘리는 동안 아버지 당신도 나와 함께 피땀을 흘리며 나보다 더 애달아 하신다. 더 피눈물을 흐리며 아들이 내가 걸어가는 길을, 내가 들어야 하는 잔을 눈물로 바라보신다. 자식의 일을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은 그 자식의 마음보다 더 아프다. 더 눈물겹다. 대답하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을 어이 자식이 짐작하랴. 그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을 깨달은 자식이 가는 길에 어떤 말로 위로하고, 응답할 수 있으랴. 그것도 고난과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자식에 대해서 말이다. 다만 하느님은 침묵으로 나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지 않는가? 나는 하느님의 침묵의 위로에, 그분의 눈물을 느낀다.

이 길은 나의 길, 하느님의 길,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길,

이 잔이 나의 잔, 하느님의 잔,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할 잔,

내가 이 길을 걸으리라, 내가 이 잔을 먹고야 말리라. 이제 나는 하느님의 의지를 깨닫는다. 현실로 다가온 그 숱한 아픔과 고난과 역경과, 모욕과 죽음을 나는 받아들인다. 나는 그것이 내 운명이며, 나의 길임을 안다.'

기도하다가 쉬는 순간에 생각해 보니 얘들이 너무 조용하다. 그들이 있던 자라로 돌아와 보니, 애들이 모두 잠이 들어 있다.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가 없더란 말이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아직은 애들이 야물지 못하다. 이들을 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메어진다. 그래도 하느님과 성령에게 이들을 맡겨야 할 것이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러나 기도해야지, 언제나 항구하게 기도할 수 있을지.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 아이들 같구나. 그래 아직도 자고 있다는 말이냐?'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되었다. 시간이 되어 사람의 아들이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위로나 도움을 포기한다. 이 세상이 나를 위해 해줄 일은 없다.

나는 이들로부터 받을 일은 없다. 그들이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이 나를 위로할 일이 없다. 이제 시간이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