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9일
좋은 오월 성모님의 달, 분주한 시간들 속에서 주님을 묵상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지난 주일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 장례절차, 그 속에 함축되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 두고 두고 가슴에 새기며, 묵상하고 기도 해야할 제목이다. 세상을 살다가는 모든 인간 삶 속에 감추어진 아롱진 사연들, 그 아픔과 슬픔, 아쉬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던 그 마음과 여건, 운명. 하나 하나가 생각할 수록 눈물나게 한다. 아 불쌍하고 가련한 인간의 삶이여! 하느님 도움 없이는 어느 누구도 그 시간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응답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조건을 제한성이 세삼 뼈저리게 다가온다. 모두 불쌍한 존재로서 순간에 의지하여, 순간에 집착하다, 순간에 그 삶을 그칠 수 밖에 없는 미망! 모든 인간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 “이스라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슬퍼하지 말라. 너희를 위하여 슬퍼하고 기도하여라.”
오늘묵상은 마르코 복음 10,17~27.
선하신 스승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님, 제가 구원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님 저의 기도가 구원을 받는데 소용이 됩니까?
주님의 말씀, 하느님만이 오직 선하시고, 당신을 선하다고 하지 않는다. 왜? 당신은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오신 구세주, 목숨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으시는 고난 받는 어린양, 죄 없이 죄인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모든 것은 우리를 구하시는 선한 목자이심을 드러내는 모든 증거가 아닌가? 그런데 당신은 선하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으로 계명의 준수를 우선적으로 말씀하신다. 그 응답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계명을 잘 지켜왔다고 말씀하는 부자 청년.
여기에 주님의 선하심에 겸손하신 뜻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으로 감히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생각한다. 우리가 선행을 함으로, 우리가 어떤 무엇을 선한 일을 함으로 그것이 조건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교만이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당신은 선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주님의 은총과 당신의 주도적인 약속과 이끎이 없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으니, 오로지 주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길만이 우리의 생명 길이다.
대답을 들으신 주님께서 사랑스럽게 바라보신다.
부자청년이 돌아보아 깨닫지 못하니, 주님께서 부족한 점을 지적하신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를 따라라.”
부자 청년은 자기가 지금까지 ‘선한 사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교육받은 대로 열심히 실행하였으니 ‘이만하면 내가 누구에게든 칭찬을 받지 않으랴!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수고했는데..’ ‘들으니 가까운 곳에 위대한 선지자가 있다는데 그는 아마도 나를 알아보지 않겠는가? 그가 만일 선한 선생이라면, 나처럼 계명을 잘 지킨 선생이라면, 나를 당연히 알아보겠지! 나를 칭찬하실 것이야.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살아 갈 거야.’
그런 젊은이의 마음에 정말로 아픈 주님의 말씀, “네가 가진 재물을 나누지 못한 것이 부족한 점이다.” 자부심으로 가득 찬, 부푼 젊은이의 마음이 부끄러움으로 터질 것만 같다.
젊은 알렉산더에게 따뜻한 햇볕에 그늘이 지니 비켜달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디오게네스가 던지는 충격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물밀듯이 치올라 얼굴을 붉히게 한다.
어려운 연습문제를 자랑스럽게 해결한 답안지에 틀린 점을 지적하시는 선생님을 바라보는 어린 학생의 마음과도 같다.
그 젊은이는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 장소를 떠나갔다. 그 부끄러운 장면에서 떠난다. 그 부족한 수행방법에서 떠나갔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을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주님의 말씀 “부자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은 선하십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도,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가능하게 하신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선하심의 표징이다. 하느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인간의지로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누는 일, 봉사하는 일, 기도하는 일, 자비로운 일, 구원하는 일,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의 선하심에서 우러나오는 우리의 행동이 아닐까?
부자가 스스로는 나누지 못할 지라도, 하느님의 선하심에 의지하면, 쉽게 가지고 있는 재물을 나누고 하느님 나라의 보물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자 청년은 드디어 가난한 이들에게 가진 것을 전부 나누어 주고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와 주님을 열심히 따라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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