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유고집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

기도하는 어머니 2014. 2. 8. 12:08

2012년 5월 2일

마르코 8,31~33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시다.

비로소 주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그 수난이 부활로 가는 중요한 과정임을 처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음을 당하십니다.

원로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입니다. 모든 면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 중에 가장 깊은 생각과 전통과 체제를 생각하는 집단입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보다는 집요하고 노련하며 사려깊은 음모와 자금, 다른 사람들을 은밀히 선동하고 뒷받침하는 深謀遠慮 집단의 사람들입니다. 속이 깊습니다. 표현을 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빛과 몸짓으로 다른 사람들을 부리는 집단입니다. 원로들의 행동은 수석사제들과 그리 차이 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수석사제들은 드러내고 어떤 의견을 표현합니다. 가장 중요한 결단의 순간에 이들의 말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이자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이는 너무도 결정적인 말입니다. 이들이 그런 존재입니다. 율법학자들은 말하자면 세속적 지위를 탐하여 부단히 노력하는 지식인 집단입니다. 출세를 위하여 능히 영혼을 팔 수 있는 자들입니다. 자기가 얻은 지식, 진리, 정신적인 능력을 세속적인 지위나 권력이나 부를 쟁취하는 수단으로 전화시켜 목적 달성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는 열기와 투쟁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구원을 입으로 말하지만 심중은 세상에 펼쳐진 권력과 부와 인정을 얻는 것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전부 동일한 집단의 족속들입니다.

주님은 이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의미가 너무 심중하고, 중요하면, 당신의 양식이고, 사명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명령임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안타까운 청원에 대하여 가혹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구나.”

베드로의 안타까운 청원. 이 대목에서 우리는 흔히 베드로나 제자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세속적인 출세를 하려는 사람들로 생각하고 해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정말로 마음으로 심복했습니다. 성급하고 비겁하기는 하지만 순간 순간 정의로운 개성을 보이는 베드로는 불의에는 바른 말을 하고야 마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베드로의 말은 왜 원로와 수석사제들과 비리사이들이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배척하며, 하물며 죽이fi 하는가? 그리고 그럴 양이면 그 자리를 피하면 될것이 아닌가? 에 대한 설득이고, 청원입니다. “안됩니다. 주님! 그런 자들의 모함을 받을 일도, 배척의 대상이 될 일도 없습니다. 주님, 당신은 옳고 바르며, 가난하고 불쌍한 백성들을 위하여 많을 일을 했고, 앞으로도 그런 능력으로 많은 백성을 구하실 수 있을 텐데, 지금 엉뚱한 말씀으로 마음을 괴롭히십니까? 저희도 불안합니다. 제발 그런 말씀은 하시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잘 살아봅시다.” 베드로의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말이 예수님의 마음 어느 한 구석을 울립니다. ‘베드로는 나를 아는구나.’ 하는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그때 주님이 제자들을 지긋이 둘러보십니다. 너희들은 어떤가? 주님의 마음은 제자들이 모두 베드로의 마음과 같음을 아십니다. 이 때 주님은 깨닫습니다. ‘아, 이 일은 누구도 같이 할 수 없다. 이 일은 오직 아버지 하느님과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이들이 나를 따른다고 장담해도, 아무리 베드로가 저런 말을 해도,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아버지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다만 내가 구원해야 할 백성일 뿐, 내가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거나 동정을 받거나 할 수 없다. 오히려 죽으러가는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이들을 용서하고 동정하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구나.’

‘나의 죽음 때문에 가장 침통하신 분은 하느님 아버지이시고, 가장 아픈 자는 내 자신이로구나. 누가 나의 운명을, 십자가를 대신할 수 있으랴? 없다. 오직 나 예수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을 뿐 이로 구나’

‘그러니 기꺼이 죽을 수 있다. 그러니 이 아무것도 모르는 내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내가 기꺼이 죽어 주리라. 내가 그들을 위하여 한 약속이 기꺼이 이루어지게 되리니, 내가 죽으면 이들은 깨닫게 되리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겠다. 그러나 먼저 이들의 마음을 단단히 해두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사탄의 유혹이 너무도 교묘하니..... ’

그리고는 이윽고 베드로에게 얼굴을 돌리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베드로가 사탄이 아닙니다. 하느님 일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하지 않게 하는 자의 행동은 사탄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사탄아, 너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그러니 너는 나와 상관없다. 뒤로 물러나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일을 생각합니다. 사람은 사람의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일인지 아닌지가 중요합니다. ‘선한 사람은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보물을, 악한 사람은 악한 마귀의 창고에서 악한 행동을 내놓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 마음에 무엇이 들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두 일 중에 하느님 일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느님 일을 하는 것이 먼저라는 말입니다. 하느님일도 사탄의 일도 모두 사람이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과 겸손과 진정과 순명과 우애와 호의와 생명입니다. 사탄의 일은 욕심과 교만의 열매를 맺습니다. 시기와 질투와 게으름과 방종과 죽음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