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하순 어느 날
마르코 복음 6,30~44 오천 명을 먹이시다.
파견되었던 제자들이 돌아와 저마다 하느님 백성의 현장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오고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을 먹을 새도 없이 바쁜 제자들, 주어진 하느님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지친 모습을 보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따뜻한 위로의 말씀이십니다. 외딴 곳으로 배를 타고 떠나는 스승과 제자들 본 백성들을 그들을 따라잡으려고 먼 길을 돌아 달려서 그들을 쫓아옵니다. 그리고 스승이 도착할 곳에 먼저 도착해 있습니다. 배에서 내리시며 그들을 보는 주님의 눈과 마음은 연민에 가득합니다.
아! 불쌍한 내 백성이여,
위로 받기를 원하나 위로 받지 못한 백성이여,
고침 받기 원하나 의지할 이 없는 가엾은 백성이여,
마음 둘 곳 없어 헤매는 가련한 내 동포여,
무엇으로 이들을 위로할까?
내 마음에 들어오너라. 내 사랑으로 너희를 감싸 주리라.
내 온정에 너희를 맡겨라. 내 너희를 길러 주리라.
내 연민에 너희를 실어라. 내 너희를 먹여 주리라.
주님께서 나를 보시고,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십니다.
얼마나 배고프냐? 얼마나 사랑받고 싶으냐?
얼마나 인정받고 싶으냐? 얼마나 품에 안겨 쉬고 싶으냐?
너의 갈급함이 무엇이든 다 내게로 오너라. 너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쉬어라.
너의 생명을 살리는 이 양식을 값없이 사서 먹어라.
내가 너희의 생명의 샘이 되어 끊임없이 퍼주고,
내가 너희의 반석이 되어 무슨 환난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고,
내가 너희의 영원한 생명이 되어 너와 함께 영원히 있어 주리라.
그 연민의 마음에 그들을 향하여 하느님 나라를 더 열정적으로 가르치시는 주님의 눈빛,
아 생명이여, 사랑이여, 당신의 눈빛이 나를 향하여 간곡히 호소합니다. 내가 생명이니라.
제자들이 말씀드립니다. 늦은 저녁나절에 지금 이곳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어서 그들을 보내시어 호구하게 시키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주님도 아십니다. 그런데 전혀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주님은 우리를 다 아십니다. 제자들 더러 처음에
“와서 보라.” 하신 분이십니다. 현실에서 무엇 하나 우리를 속이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저희가 가진 것이 어느 것 하나 모르시는 게 없으신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이런 명령을 하십니다. 수로 보아서 이백 데나리온 어치 음식이 있어야 한다고 제자들이 생각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천만 원 어치 정도입니다. 그 곳에서 이만한 음식을 장만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무슨 다른 뜻이 있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시는 분이시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경우하고는 다른 것 같습니다. 당신은 무엇인가 마음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 의미를 알아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주어라.” 이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이 있어 그들에게 주겠습니까? 주님!” 주님의 명령과 우리의 대답이 항상 비교됩니다.
“너희가 할 수 있다." "저희가 무슨 힘이 있어 당신의 명령을 완수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너는 이 십자가를 질수 있다.” “주님 저는 너무 나약하여 그 어려운 일은 할 수 없으니 다음에 더 쉬운 일을 저에게 맡기십시오. 주님”
주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너무 다릅니다. “너희가 주어라.” 주님은 우리에게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간구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닐까요? “너희가 주어라.” “너희가 나임을 먼저 알아보고 그들을 위하여 나에게 기도하면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요? 우리는 현실적으로 살아갑니다. 인간의 한계를 언제나 인정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떨어지는 주님의 명령 “네가 하여라.” 주님의 우리의 사정이나 능력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만 생각합니다. “이 저녁 늦은 시간에 어디에서 그 많은 양식을 구한다는 말씀입니까? 불가능합니다. 주님 저희 주제를 보십시오. 저희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대답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윽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빵이 몇 개 있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개가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나누어 주시어 장정만 5천명의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주님은 하느님의 빵의 기적을 실현해 보이신 것입니다.
주님의 연민의 마음이 이 수많은 군중을 다 배불리 먹이십니다. 그들을 하느님의 양식으로 먹이십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을 당신의 양식으로 삼으신 주님께서 연민으로 그들을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빵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우리의 가난한 마음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주님의 연민입니다. 허겁지겁 맨발로 달려와 주님 오신 곳에 먼저 당도한 당신의 백성들, 그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은 무엇으로든 그 백성을 먹이고 위로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깨닫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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