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 가거라.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창 12, 1-2)
주님의 명령과도 같은 말씀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 왔을 때 아브라함은 얼마나 당황하였을까? 일흔 여덟의 늙은 나이, 거느리고 있는 가족들과 가축들, 정든 사람들과 이별 등등 평생을 땀 흘려 얻은 것들을 두고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곳 하란에 정착하기 위하여 이방인으로 받았던 온갖 아픔들이 밤잠을 설치게 했으리라. 그러나 아브라함은 한평생 자신의 삶을 인도해주신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다. 오직 믿음으로 주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을 향하여 아내와 조카 롯과 함께 길을 떠났다. 이렇게 시작된 나그네 길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함께해 주셨고 약속을 지켜 그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주셨다.
동정녀 마리아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가1,28-33)
시골 처녀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사이였다. 아직은 남자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를 가브리엘 천사에게 묻는다.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돌로 맞아 죽던 때이다. 얼마나 두렵고 혼란스러웠을까?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할 줄 모르는 마리아는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청한다. 용감한 믿음의 고백 때문에 우리는 영원토록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이제와 죽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하고 노래하며 마리아의 신앙을 본받고자 한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인류의 구원을 마리아의 순명으로 완성하신다.
무지하고 어리석었던 철부지 시절 내게도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
“애야, 오늘 네 마음을 바꿔라. 네가 받는 고통을 보면 내 마음이 아프다.” 그날 난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있었다. 세 아이들 양육과 학교 및 가사 업무로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쳐서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의지할 곳은 주님밖에 없었기에 새벽 마다 교회에 나가 기도를 드렸다. 남편은 불교에 심취하여 나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앙의 갈등으로 이혼을 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당에 나간다면 자신도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함께 다니겠다고 제안하였다. 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려야 할지? 이혼을 해야 할지? 성당에 나가야 할 것인지? 앞이 캄캄했다. 이런 혼돈 속에서 기도 하는 중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왔던 말씀은 ‘마음을 바꾸라’는 것이다. 마음을 바꾸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소리에 번뇌가 가득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큰 아이가 외쳤다. ‘엄마 성당 가! 성당에 가도 하느님 예수님이 있다고 했잖아!’아이의 고함소리에 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지난 밤 아빠와 다투던 것을 지켜보고 밤잠을 설친 채 일곱 살 아이가 새벽기도를 따라 나섰던 것이다. 그 순간 난 천사의 소리로 알아들었다. 그래 성당에 한 번 나가보자. 집에 와서 이웃에 사는 자매님께 성당 가는 길을 알려 달라고 했다. 하느님의 뜻이었을까?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고향에 온 느낌과 함께 조용하고 거룩한 기도 행위들이 나의 마음을 끌어 당겼다.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저녁 미사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문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날 이후 날마다 아이들과 성당에 다녔다. 곧 집안 식구들 모두가 나의 선택에 기뻐하였다. 난 일순간에 가톨릭의 모든 전례에 매료되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를 받았고 그 후 매일미사, 묵주기도, 단체 활동을 통해 신심을 키웠다. 성모님, 천사들, 성인성녀들, 순교자들의 통공을 믿으며 깨달음이 더해 갈수록 나의 영혼은 봄 놀았고, 육신마저 건강해졌다. 남편, 아이들, 시어머님, 시누이, 시동생들이 차례로 세례성사를 받고 교회로 돌아왔다. 동료교사들, 함께하는 이웃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냉담 교우들이 회두했으며 개신교 동료들이 개종했다. 마음을 바꾸니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렸다. 가톨릭의 풍부한 영적 유산은 가난한 나를 부유하게 하였고 성경 말씀과 기도 생활을 통해 성장과정에서 받은 수많은 상처들이 치유되었다.
요즘 살아가기 참 힘이 듭니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질병, 실직, 자녀교육, 부부와 형제자매관계, 경제적 곤란 등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짜증이 나고 앞을 생각하면 두렵고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하시는 주님은 우리 곁에서 말씀하십니다.
“애야,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길을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네 후손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이사야 48, 17-19)
다시금 속삭입니다. “애야, 풀리지 않는 모든 문제와 너를 억압하는 것들과 절망과 어둠에서 떠나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에게로 가거라”
경기중등수석교사 이정숙 마리아
수원교구 범계성당
'영성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년 계사년도 주님과 동행!! (0) | 2013.01.04 |
---|---|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0) | 2012.12.27 |
연옥영혼들을 기억하며(성안드레아축일) (0) | 2012.12.18 |
연중 33주간 평신도 주일 (0) | 2012.12.18 |
라떼라노 성전 봉헌 축일 (0) | 2012.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