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

신앙의 위기 삶의 위기

기도하는 어머니 2012. 10. 25. 17:10

2012년 10월 25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어제 저녁에는 교복공동구매 건으로 신경을 썼더니 마음이 너무 힘이 들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의 순간, 목은 아프고 말은 나오지 않고 일찍 집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드러누웠다. 저녁도 먹지 못한 채, 그런데 그냥 그대로 있다가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용기를 내고 일어나서 저녁을 챙겨먹고 저녁 미사에 참례하였다. 시아버님 미사가 봉헌되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미사 중 박유현 빈첸시오 신부님 말씀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모든 일이 다 잘되고 순풍에 돛 단듯이 잘 나갈 때가 가장 주의해야 할 때이다. 오히려 문제에 부딪치고 갈등할 때 오히려 주님은 가까이에서 말씀하고 있는 때이다. 고속도로에 차가 없이 속도를 내고 달릴 때 사고가 난다. 차량이 많고 장애물이 많으면 오히려 사고가 나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다.” 라고 하신다. 항상 새로운 각도로 발상의 전환을 하시는 젊은 사고, 용기를 얻었다. 힘을 내었다.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 이제 교직 생활 35년을 마감하고 앞으로 정년 5년을 남겨두고 있다. 비록 내가 원하는 교감, 교장의 길을 가지는 못했지만 열정적으로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학생들 앞에서 부끄럼 없는 교사로서의 길을 가고자 노력하며 이곳까지 왔는데 여기서 주저앉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2010년 여름 남편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다. 지리산 정상을 오르는 것을 나의 교직 생활을 비교하면 9부 능선에 위치한 마지막 쉼터인 장터목까지 온 셈이다. 장터목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던 그날 저녁처럼 절망과 좌절과 어두움이 밀려온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천왕봉을 올라야 하는데 그날 밤 날씨는 엄청나게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밤새 기도하고 날이 좋기를 희망했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지쳐있고 날씨는 생각대로 받쳐주지 못했고, 밤새 불어치는 바람소리에 절망과 좌절과 포기를 생각했던 그 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새벽빛이 밝아오면서 날은 활짝 개이지 않았던가? 어제도 그와 같았다. 미사 후 정신이 맑아지면서 새로운 마음이 솟구쳤다. 주님이 주신 새마음이다. 집에 와서 정신을 가다듬고 수영을 갔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겼다. 힘을 빼는 것이 무엇인지 물살의 흐름이 어떤지를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자유형, 배형이 잘 되는 것 같았다. 수영을 마치고 집에 오면서 다시 한 번 수락 무념을 떠올렸다.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자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란 생각을 버리자. 두려움을 떨쳐버리자. 욕망도 버리고 욕심도 버리자 버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다. 집에 와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남편 식사를 챙겨드리고 묵주기도를 하고 나자로 마을로 왔다. 오늘은 수녀님들이 성전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신부님의 말씀은 또다시 나의 생각을 정리하게 해주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주님은 당신이 십자가 위에서 치러야 할 피와 순교의 제사, 수난과 고통을 생각하셨다. 주님이 받아야 할 세례! 자신의 몸을 불태워 우리를 구해 내신 주님의 위대한 사랑! 우리의 마음을 사랑의 불로 태우시고자 먼저 당신을 십자가 위에서 살라 바치는 아름다운 희생의 제사! 나를 위한 번제물이 되어 주셨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벅차 올랐다. 성체를 받고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성체 안에 현존하는 주님! 당신의 성체 세포가 나의 온 몸을 거룩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며 영혼의 자유를 주십시오.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피로 전 존재를 씻겨주소서’ 간절하게 기도하며 미사 후까지 성체를 음미하였다. 가만히 묵상하며 입 속의 느낌을 보니 성체는 사라졌다. 주님의 성혈이 나의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나는 살 수 없다. 오늘 이 순간 죽음이 나를 찾아 올 때 죽음을 맞이할 사람은 오직 나 혼자임을 절감하는 순간입니다. 남편, 부모형제, 아들 딸, 모두 지금의 나의 이 마음을 내 몸의 이 상태를 나의 영적인 상태를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오직 홀로 그 두려움의 순간을 맞이해야 하는 숙명적 존재입니다. 가진 것, 있는 것, 없는 것, 좋은 것, 나쁜 것,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다른 이의 비판과 질타와 존경과 위로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느님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인데 하느님 나의 전존재를 오로지 당신의 거룩한 십자가상의 제물로 봉헌합니다. 육신의 모든 것, 목 아픔, 정신 즉 사고 체계와 신념, 영혼과 마음 전체를 오로지 당신의 처분에 거룩한 심판에 맡겨드립니다. 당신의 사랑만이 나를 존재하게 만듭니다. 주님 이 몸과 영혼을 오로지 받아주십시오. 당신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오니 당신의 자애로움으로 저의 나약함을 씻어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소서. 주 예수님 오소서.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