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기도하는 어머니 2011. 4. 18. 00:20

 

2011년 4월 17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수난 복음(마태오 21, 1-11절과 마태오 26:14-27,66)이 선포되었다.

복음 말씀 중에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등장 인물들의 모습 안에서 나를 바라본다.  침묵가운데 등장인물들을 만나보자.

군중들 :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저분이 누구시냐?’ ‘저분은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이시오.’이렇게 환호하던 군중은 어느새 무엇 때문에 변덕이 생겼는지 두 사람 중 누구를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고 묻는 빌라도에게 ‘바라빠요’‘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예수님을 추종하고 따르던 군중들이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환호하고 예수님의 표징에 감탄하던 그들이다. 왜 그들은 순식간에 돌변한 것일까? 예수님에 대한 신뢰를 갑자가 무너뜨리게 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기대하고 희망했던 메시아가 아니었다. 명예, 권력과 힘으로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줄 정치적 힘이 있는 메시아를 원하였다. 그런데 자신들을 로마의 속박에서 구할 구세주가 처참하게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를 져야할 대죄인이 된 것이다. 이제 그를 믿어봐야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도 인식했던 것이다.

유다 이스카리옷 :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돈주머니를 관리하던 제자였다.

‘내가 예수님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라고 하였을 때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으시오.’‘죄 없는 분을 팔아넘겨 죽게 만들었으니 나는 죄를 지었소.’ 예수님 몸값으로 받은 은전 서른 닢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유다는 어쩌자고 주님을 팔아넘기고 자결을 하였는가? 유다의 마음 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보다는 돈에 대한 욕심 밖에 없었는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겨 드렸을 때도 이를 핀잔하며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옳다고 하던 자다. 예수님은 그의 배반을 알고서도 나무라지 않으신다. 예수님과 함께 빵을 나누어 먹던 제자가 예수님을 팔아 넘겼다. 나는 유다와 같은 점이 없는가? 불쑥불쑥 돈이란 놈이 나타나 나를 곤두박질하게 만들고 처참하게 만들고 걱정과 근심으로 몰아간다. 주님의 사랑보다 돈을 우선 생각하게 하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유다는 비관하여 제 갈길로 갔지만 저는 오늘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비를 청합니다. 돈의 위력에 무력해지는 불쌍한 딸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돈이 주님의 것임을 알게 하소서. 제게 필요한 만큼은 언제든지 채워주시는 주님을 바라볼 영안을 주소서.

베드로사도 :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호언장담하였건만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다. 하녀가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하는 물음에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다른 하녀가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하자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라고 한다. 조금 뒤에 거기 서있던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하자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하고 부인 하자 곧 닭이 울었다. 이 때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크게 뉘우치고 참회하였다. 십자가 아래까지는 갈 수 없었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때문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아셨기에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 사랑을 확인한 후 당신의 양떼를 맡기신다. 양들의 목자 으뜸 목자로 세우신다. 초대 교황님이 되게 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변덕을 아시고 형편과 처지에 따라 위선과 거짓된 행동을 할 수 있음도 인정하신다. 다만 뉘우치고 돌아와 용서를 청하고 자비를 구하길 바라신다. 주님 베드로 사도와 같이 입장과 형편에 따라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위선과 거짓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니 주님께서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십니다.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인간은 잘못을 용서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나약하고 한계성에 늘 노출되는 비참한 죄인을 용서와 자비를 주실 줄 믿습니다.

빌라도 총독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저들이 갖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내가 누구를 풀어 주기를 원하오? 예수 바라빠요 아니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요? 두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를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나는 이 사람에 대한 피의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총독이라면 판단이 분명했어야 한다. 그러나 군중의 소리에 자신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판단을 하는 모습이다. 그렇다 정의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대중의 힘에 눌려 정의를 묵인하거나 부정할 때가 많다. 소수의 진실이 통하지 않는 사회, 대중의 목소리가 법이 되는 적이 얼마나 많은가? 대중의 힘에 눌려 주님을 주님이라고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녀를 용서하십시오. 나의 아버지가 위기에 처해있는데도 타인들의 목소리에 눌려 나의 아버지라고 외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말입니다. 아버지 이 세상 모든 힘이 당신을 부인하고 모든 권력이 당신을 아니라고 해도 저는 주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시오. 빌라도처럼 못된 우유부단하게 기회주의자가 되는 속된 인간들, 주님의 뜻을 모르는척 외면하는 저를 용서하여 주소서.

예수님 : 이제 당신의 때를 아신 주님은 마음이 급하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성체성사를 세우시고자 최후의 만찬을 베푸신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아버지, 이 잔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때가 가까웠다.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실 것이다. 그러면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단 말이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지만 너희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예언자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등장인물 가운데서 초지일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인 사람은 오직 예수님이시다. 인간들의 배반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과 일치하여 자신의 길을 가셨다. 그토록 호언장담을 하던 베드로 사도도 주님을 배반하였고, 공생활동안 주님 곁에서 돈주머니를 관리하던 유다 이스카리옷도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 넘겼다. 그토록 환호하던 군중들도 일순간에 마음이 돌변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다. 최고의 권력을 가진 빌라도 총독도 죄 없는 예수님께 손을 들어주지 못한다. 인간의 한계성과 무지 때문일까? 왜 인간들이 이토록 하느님을 몰라주는 것일까? 인간인 나로서도 한없이 부끄럽다. 인간이 하느님에 대한 무관심, 무자비함, 잔인함, 파렴치함, 무지함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느님이신 그분 나를 빚어 만드신 아버지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리고 조롱하고 외투를 벗기고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가고 넘어지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목마른 예수님께 쓸개즙을 마시라하고 숨을 거둔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고자 늑방을 창으로 찌르고 모질게 했으니 주님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아버지에게 매를 드는 인간을 용서하소서. 당신을 인간 박제로 만들어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을 용서하소서 베드로 사도처럼 마음 깊이 참회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흠숭하고 공경하겠습니다. 아버지 이토록 크신 사랑을 베푸신 당신의 은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전교의 은총을 주십시오, 아직도 주님을 믿지 않는 부모형제들, 친구들, 동료들, 제자들, 이웃들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 저와 함께 그들을 사랑하고 부활할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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