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아께다 사건(축복의 사람 이사악)
화요일 성령기도회(사순 제1주간 화요일) 가르침은 서울 대교구 말씀 선교사 송정연 율리에따 회장님이 해 주셨다. 1년에 한 번 정도 오셔서 말씀을 해 주시는데 오실 때마다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흔들어 놓고 신앙을 반추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도록 힘과 용기를 주신다.
사순시기를 잘 살고 계신가요?
오늘 말씀의 주제는 축복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성조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중 이 사순시기에 누구를 닮고 묵상하고 싶으신가요? 하고 질문을 던졌다.
누구는 아브라함, 누구는 야곱 각각 다른 대답들을 하였다.
창세기에는 믿음의 성조들에 관한 이야기가 쭉 나오는데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12~50장, 이사악 이야기는 26장, 야곱 이야기는 27~35장,
요셉 이야기는 37~50장까지 나오는데 오늘은 가장 짧게 묘사된 이사악에 관한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하셨다.
이사악은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아들로서 아브라함은 그를 무척 사랑하였다.
어느 날 하느님께서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 2)하고 명령 하셨다.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번제물로 바칠 어린양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사악이 아버지에게 여쭌다.
“아버지,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창세 22, 7)
“애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
120세 된 아버지와 20세 된 아들의 대화이다. 둘 사이에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사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또 아들이 마음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리고 아버지에게 꽁꽁 묵인 채 장작 위에 올려놓았을 때 이사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버지의 믿음과 아들의 순종은 세상의 모든 논리를 뛰어넘는다. 바로 이사악은 인류구원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죽기까지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제물로 봉헌하는 예수님의 예표가 된다.
이 사건이 있은 뒤에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한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창세 22,17)
또한 이사악은 단 한 번의 순종으로 창세기 26장에 기록된 모든 축복을 받는다.
창세기 26장을 통해서 이사악은 하느님이 축복하신 땅(그라르)에서 살면서 온갖 축복을 다 받는다. “너는 이 땅에서 나그네살이 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에게 복을 내려 주겠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이 모든 땅을 주고,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그 맹세를 이루어 주겠다. 너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불어나게 하고, 네 후손에게 이 모든 땅을 주겠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에 순종하고 나의 명령과 나의 계명, 나의 규정과 나의 법을 지켰기 때문이다.”(창세 26, 3-5) “ 이사악은 그 땅에 씨를 뿌려, 그해에 수확을 백배나 올렸다. 주님께서 그에게 이렇듯 복을 내리시어, 그는 부자가 되었다. 그는 점점 더 부유해져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 이사악의 종들이 그 골짜기를 파다가, 생수가 솟는 우물을 발견하였다.”(창세 26, 19)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나의 아브라함을 보아서, 내가 너에게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의 수를 불어나게 하겠다.”(창세 26, 24)
모리야 산에서 아들을 제물로 바쳐지는 그 고통의 순간,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사악의 순종은 하느님을 감동시킨 것이다. 이 아께다 사건을 통하여 이사악은 성조들 가운데서도 가장 큰 축복을 받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각자 아께다 사건을 경험한다. 견딜 수 없는 수모와 하는 일이 풀리지 않는 답답함, 인간적인 외로움과 고독함, 물질적 고통, 육체적 질병, 죽을 것 같은 절박한 상황들, 진퇴양난으로 캄캄한 어둠 속에 처했을 때에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주님께 그 모든 사건을 제물로 봉헌하며 순명하는 마음으로 잘 견뎌낸다면 반드시 이사악과 같은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환경과 물질과 육신과 영혼에 얽힌 복잡한 상황들을 걸림돌로 여기지 말고 디딤돌로 삼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면서 기도하고 인내한다면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탈출기 20장 17절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생명 있는 것)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물질적인 것)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란 말씀이 있는데 우리가 불만족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깊이 묵상해보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들에 자족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탐욕을 부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힘에 눌려 굴복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고 깨우쳐 자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진정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또한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 “나를 불러라(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대답(응답)해 주고, 네가 몰랐던 큰일과 숨겨진 일들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하느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조금 하고 응답을 받는 것에 집중한다면 내가 할 일은 하지 않고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과 같다. 부르짖는 것은 나의 몫이고 응답하고 큰일과 숨겨진 일을 알려주는 것은 하느님의 영역이다. 이 사순시기에 하느님께 나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회개하여 헛된 욕망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에 의탁하는 삶을 산다면 하느님은 분명코 응답해 주실 것이다.
다시 한 번 내 인생의 아께다 사건(배우자, 자녀, 가족관계, 영적 내적 상처, 물질, 환경, 질병, 갖가지 고통, 죽을 것만 같은 절박함)을 깊이 묵상하며 하느님 앞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자. 그러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이 불가능한 신앙의 신비이다.
언제 들어도 감칠맛 나는 말씀이다. 조용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말씀을 풀어간다. 늘 새롭고 힘이 넘치고 깨우침을 주시는 가르침은 분명 성령의 능력이다.
'영성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인성소에 대하여 이냐시오 영성의 핵심 키워드 (0) | 2018.06.03 |
---|---|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 (0) | 2016.02.19 |
파티마의 성모님 하례하나이다! (0) | 2016.02.04 |
남양의 성모님 통일기원 성모마리아 대성당 건립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0) | 2016.02.04 |
죽음 그 이후 (0) | 2015.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