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

자비로운 아버지의 마음

기도하는 어머니 2013. 3. 13. 09:19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성령기도회 가르침

이정숙 마리아

주제 : 예수님의 마음

성경 : 루가복음 15장 11-32


사순 제4주일을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회개와 보속의 사순시기도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수난에 동참하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잘 짊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늘 하던 습관대로 사순절을 큰 의미 없이 보내고 있습니까? 오늘 저녁 기도회를 통하여 나를 향한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연민을 헤아리고 하느님 사랑에 새롭게 응답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성령의 인도로 기도함)

우리는 성령에 의탁하여 기도하는 참된 예배자요 참된 사제들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기도 드리고 영적으로 기도의 제물을 바친다면, 그 기도는 하느님께 합당한 것이 되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제물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요청하시는 제물이고 당신의 것으로 마련하신 제물입니다. 겸손하게 바치는 기도는 주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항구하고 겸손한 기도, 믿음의기도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죽음의 심연에서 건져 주고 연약한 자를 바로 세우며, 병자를 고쳐 주고 악령에 사로잡힌 이를 해방시켜 주며, 감옥의 쇠창살을 열고 무죄한 이들의 사슬을 풀어 줍니다. 기도는 또 죄를 사하고 유혹을 몰아내며, 박해를 없애고 소심한 이들을 위로하고 담대한 이들을 기쁘게 하며, 나그네를 인도하고 풍랑을 가라앉히고 도둑을 놀라게 하며, 가난한 이를 배불리고 부자를 다스리며,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고 흔들리는 이들을 받쳐주며, 서있는 이들을 붙들어 줍니다. 주님 오늘 저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무지한 상태로 당신 앞에 섰습니다. 얼마나 떨리고 겁에 질려 있는지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는 주님은 잘 아십니다. 제 입술과 혀를 이용하시고 당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합당한 말씀,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들의 아픔, 걱정, 근심, 암의 고통, 무진 괴질, 가난, 실직, 분열, 가족끼리의 불화, 자녀, 부부,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잠재워 주시고 마음 깊은 곳에서 회개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며 내적으로 사랑, 평화, 기쁨이 샘솟게 하소서. 언제나 성령의 감도에 민감하여 성령의 불이 우리 안에서 타오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여러분은 참 잘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제 입술을 통해 말씀하시는 동안 여러분의 영혼과 육체는 치유를 받아 내적 외적으로 자유와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회를 이끌어 가시고 가르침을 주시는 분은 삼위일체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는 성모님과 천사들과 특히 요셉 성인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지향과 이 시대가 필요한 모든 지향도 함께 봉헌합시다.-


오늘은 복음의 꽃,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음, 하느님의 측은지심, 가엾은 마음, 자비심이 가장 잘 드러나는 루가 복음 15장 11절에서 32절까지의 말씀, 되찾은 아들(돌아 온 탕자)의 비유와 예수님의 십자가상에 하신 일곱 가지 유언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루가복음 15장에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심과 하늘나라에 관한 세 가지 비유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되찾은 양의 비유입니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하는 하늘나라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되찾은 은전의 비유입니다.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 가운데 한 닢을 잃고 그것을 찾으면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로 하느님의 자비심, 가엾은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이야기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연민을 헤아려 보고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지극한 자비심에 대하여 말씀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준비된 것보다 더 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공관복음 중 루가복음에만 기록됨)

대상 : 이야기를 듣는 대상은 세리, 죄인들(가난한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세리 마태오, 간음한 여자, 사마리아 여인, 자캐오와 같은 사람들), 바이사이들, 율법학자(자기들보다 부정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가르치시는 주님을 사악하고 불경스런 태도로 비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며 우리도 지금 주님 앞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등장인물 : 작은 아들, 아버지, 큰 아들입니다.

아들상징 :

작은 아들-어리석은 우상숭배를 하는 다른 민족들, 이방인들, 불신앙인들

큰 아들-율법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

이야기배경

작은 아들 : ‘아버지 재산(작은 아들의 것은 원래 없음) 가운데 제게 돌아 올 몫을 주십시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자신의 몫을 챙깁니다. 물질, 명예, 권력, 학벌 등

아버지 :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줌(당신의 생명, 재능, 부모형제, 이웃)

작은 아들 : 자기 것(자유, 생명, 재능)을 챙겨 먼 고장(하느님 부재의 삶)으로 떠남,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교만, 이기심, 탐욕, 욕심), 자기 재산(건강, 재산, 명예, 권위)을 허비하여 모든 것을 탕진 함 → 심한 기근(식량의 기근이 아니라, 건강, 재물, 말씀, 선행과 덕행, 사랑의 기근), 곤궁에 허덕임(비참하고 외롭고 고독함 우울하고 참담한 삶), 그 고장 주민(하느님께 의지하지 않고 세상적인 것들에 여전히 매달림, 재물, 학벌, 명예, 인간관계)에게 매달리지만 받아주지 않음 → 돼지 치는 신세가 됨(진흙투성이 돼지우리에 뒹굴며 오물을 뒤집어쓰니까 그제야 제 정신이 든 그는 아버지 집의 평화로운 생활을 등지고 떠난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괴로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됨) →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려고 함→ 먹을 것을 아무도 주지 않음 즉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함을 암시함,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방황, 절망, 죽음 등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제 정신이 들어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 아버지에게서 떠남(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져 악을 행하고 가지가지의 죄를 거듭했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온 누리의 멸시를 한껏 받았나이다. 다니엘 3, 29)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떠났다는 의미로 그리스도에게서 떠난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고장에서 쫓겨난 사람입니다. 먼 고장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 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하느님을 외면하며 사는 삶 교만, 이기심과 음탕한 욕정의 세계 즉 어둠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고 주님의 얼굴에서 멀리 떨어진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함 인간은 나약하고 연약하여 자신의 주장대로 살게 됨 그러나 하느님 부재의 삶은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함 여러 가지 풍파 즉 질병, 실직, 고통, 죽음 체험, 형제간의 투쟁, 이혼, 등을 만나면서 회개의 삶이 시작되고 하느님을 의식하게 됨

회개(하느님을 등진 인간이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방향 전환, 주여 통회하는 정신과 낮추인 마음을 받아주소서)하느님을 등진 인간은 죽은 몸이요 하느님께 되돌아간 몸은 다시 사는 몸이다. 죄는 죽음을 초래하는 중병이요 회개는 새 삶을 잉태하는 선약 : 제 정신이 듦 → “내 아버지(창녀들과 어울려 재산을 탕진하였지만, 아버지를 떠나 남의 땅의 포로가 되었으나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영적이고 내적인 죽음)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회개의 삶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삶 자신의 탐욕, 이기심, 욕망, 허영과 방탕한 생활에서 하느님을 찾아 떠나는 삶이다.

아버지 :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전지, 전능, 전선, 편재하신 아버지는 먼 고장에서 곤궁에 빠진 아들을 지켜보며 그의 비참한 처지를 다 알고 있음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를 떠날지라도 아버지는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음) 언제나 아들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은 이미 짓물러 있었고 마음을 끓이고 애간장이 녹아 내립니다.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자비심)이 들었다. (하느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반기신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춤(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드러내거나 비참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입맞춤으로 아들의 죄를 용서하고 포옹으로 덮어준다. 아들의 저지른 행동에 대하여 추궁하지 않는다. 이미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기에 그렇다. 그렇게 상처의 흔적이 하나 남지 않도록 말끔하게 고쳐준다. 영적 육신적인 치유)→종들에게 일러 ‘어서 가장 좋은 옷(The best one)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가장 좋은 옷은 영원불멸하는 영광 영예를 아들에게 되돌려주고 반지(권위를 찾아 줌)를 끼워줌으로써 예전에 지녔던 명예도 되찾아 줌, 신발(자녀로서의 자격을 신겨주는 것은 발도 헐벗지 않게 하고 신발을 신은 채로 예전의 삶, 아버지와 누리던 영광스런 삶으로 돌아오게 해 준 것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 받게 되는 모든 은총과 축복을 그대로 되돌려 받게 되는 것, 잃었던 낙원을 되찾은 것이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 그리고 살진 송아지(되찾은 아들을 위해 준비된 송아지, 천주의 어린 양 하느님의 어린 양 희생 제물 예수그리스도)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하늘나라 혼인잔치, 성찬례)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큰아들 : 들에서 돌아온 큰 아들(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자신의 뜻대로 살았던 아들, 아버지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몸은 있지만 마음은 멀리 떠남, 냉담자, 발바닥 신자 들 입으로만 주님주님 하지만 주님의 뜻을 실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 회개해야할 이들) 율법의 백성은 아버지 집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데도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음 유대인들은 아버지의 집인 교회에 와서는 질투 때문에 바깥에 서 있다. 아직도 그들의 마음에는 교만, 이기심, 탐욕, 음란, 분노, 게으름 등이 남아 있다. 진정으로 회개해야 할 아들은 큰 아들이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온 아들은 작은 아들이다. 그들은 안에서 울리는 다윗의 수금 소리와 시편을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수많은 사람이 어울려 춤추는 것을 보지만 들어가려고 하지 않으면서 다른 민족 형제들을 심판하고 있다.  큰 아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아우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버지의 가산을 탕진한 방탕아로만 보려함

아버지 : 큰 아들을 타이르심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 “애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기뻐해야 한다.”

아버지의 것이 모두 그의 것인데, 아버지와 함께 살 던 모든 삶이 매일의 잔치였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종같이 살아온 큰 아들에게는 기쁨이 없었다. 더구나 이제는 시샘 때문에 형제가 파멸하기를 바라니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여 기쁨을 맛볼 자격이 없다. 작은 아들은 사랑의 모습을 되찾았기 때문에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이고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으로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다면 큰 아들도 아버지의 허락이 없으면 그 잔치에 참석하지 못 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 온 뉘우치는 작은 아들?

아버지와 있으면서 종처럼 일하는 큰 아들?

작은 아들을 용서해주고 측은히 여기며 받아주고, 큰 아들의 잘못에도 질책하지 않고 내 것이 모두 다 네 것이다. 하며 어루만져 주는 자비로운 아버지?

 이는 우리들의 영성의 단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마음 안에서 깊은 묵상을 통하여 자비로운 아버지와 닮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다음은 주님의 마음, 자비, 사랑, 연민이 가장 잘 드러난 십자가상의 일곱 가지 유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십자가 위에서 사랑하는 당신 자녀들에게 남기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온 몸에서는 물과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고통에 하늘도 땅도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 서 있던 어머니, 여인들, 제자들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도 할 말을 잃고 침묵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 바로 아래에서 침묵하며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서 들어 봅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가 23, 34) 한 동안 침묵이 흐릅니다. 이때에 예수님의 오른 쪽에 있던 강도가 말합니다.

우도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2.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가 23:43) 참된 회개에는 언제나 주님의 자비가 따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3.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요한 19:26-27)  사랑하는 제자 즉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당신의 어머니까지 남겨 놓으십니다.

4.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르 15:34) 고통은 극에 달합니다. 그렇게 잘 참으셨던 주님, 4850번의 채찍, 조롱, 무시, 비웃음에도 침묵하던 주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숨이 넘어갈듯 절규를 하십니다.

5. “목마르다.”(요한 19:28) 주님께서 진정 목이 말랐던 것일까요?

이것은 자녀들이 아버지를 몰라보는 것에 대한 목마름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었음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마지막으로 물과 피까지 다 쏟으시며 당신을 제물로 봉헌하는데도 인간들은 무관심합니다. 인간의 무자비함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6.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었지만 세상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 사셨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셨다. 이제 그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 것이다.

7.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가 23, 46) 마지막으로 당신의 영을 아버지께 맡기시는 겸손하시고 순명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십자가 위에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실로 뉘우치며 회개하면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당신 낙원으로 데려가십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가 되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끝까지 부르짖는 기도를 하십니다.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 자비로운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 자신과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며, 늘 기도하며 모든 일 안에서 감사하며 하느님의 섭리가 나의 일상을 통하여 이뤄지도록 빌고 또 빌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을 마친 다음에는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143,2

주님은 나의 사랑, 성채, 나의 산성, 구원자 방패시오 나의 피난처 백성들을 내 밑에 두셨나이다.

우리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당신의 온 몸을 번제물로 태워 바치시는 그 분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 분을 사랑해드려야 할까요? 주님의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부활 후 교회를 세우시고 그 안에서 우리를 당신의 살과 피로 먹여 살리시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삶을 살도록 촉구하십니다. 이제 사순시기도 절반을 넘기고 있습니다. 다시 흩어지는 우리 마음을 붙잡아 주님께 집중하고 몰두하며 주님 수난에 동참합시다.

겸손과 온유함으로 항구하게 주님께 기도하며 그분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여 살아갑시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여러분은 나의 에너지이며 나의 힘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리고 세속적으로 쓸데없는 것들이 조명되었고 정화되었습니다. 이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