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5일 하상의 날 “하상신학원과 나”
20158133 하상 24기 이정숙 마리아
<인사>
안녕하십니까? 24기 범계성당 이정숙 마리아입니다. 제24회 하상의 날을 맞이하여 ‘하상신학원과 나’ 라는 주제로 제 삶을 공유하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마음에 품고 되새김질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55-58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말미암아’라는 단어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말미암아는 말미암다가 어원인데 ‘어떤 현상이나 사물이 원인이나 이유가 되다.’ 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의 삶이 성부 하느님께서 원인이나 이유가 되었듯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삶의 원인이나 이유가 된다는 뜻이죠?
얼마 전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학자 기념일 제1독서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8장 6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상 신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이 자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선 것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2학년 부대표님의 진심어린 간절한 부탁은 저의 복잡한 상황을 거두절미하고 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부담을 안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횡설수설하지 않으려고 지난밤에 제 삶을 솔직하게 써내려갔습니다.
<2014년 남편의 선종>
2014년 1월 6일 남편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남편은 제 인생의 스승이며 멘토였고, 힘들 때마다 위로해 주는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기둥이었습니다. 정년퇴임을 하면 ‘하상 신학원에 입학하여 함께 신학을 공부하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함께 걷자.’ 고 약속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 남편이 갑자기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힘을 받으며 체험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기도를 하면 하느님께서는 깨끗이 치유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리라 믿으며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치료하는데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가혹하였습니다.
살이 녹아내리며 뼈가 마르고 몸 안의 물이란 물이 다 빠지고 통증이 밤낮으로 육신을 쥐어뜯던 어느 날, 주님은 치유에 대한 말씀은 없으시고 “네 남편의 선종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하는 내면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만은 안 된다고 몸부림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투병 10개월 후 남편은 “하늘 문이 열려 있다. 나는 하느님께 돌아간다. 세상은 인큐베이터이다. 더 큰 시스템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아라.” 하는 마지막 말을 가족들에게 남기고 홀연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허망하였고, 믿음이 흔들렸고, 삶이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남편이 없는 집안에 홀로 앉아있으면 온갖 망상이 스며들어 미칠 것 같았습니다. 날마다 성당에 나가 미사 드리고 기도하고 봉사활동을 하였는데 그 결과가 남편의 죽음인가? 상실감이 너무나 커서 우울증이 엄습하였습니다.
갑자기 과부가 되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우연히 조정래의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태백산맥 10권, 아리랑12권, 한강10권을 읽으면서 나보다 더 애석하고 원통하고, 어처구니없이 과부가 된 역사 속의 여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홀로 살아가는 주변 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부님, 수녀님, 수사님, 이혼한 분들, 혼인하지 않고 살아가는 분들, 사별의 상태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너무나 많았고 나름대로 모두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또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떠났던 국내 성지 순례에서 주님을 위하여 목숨, 재산, 젊음, 신분, 지위를 버리고 순교의 칼 날 앞에 용감히 자신을 내놓았던 순교자들의 마음과 신앙을 배우며 우울증과 상실감은 서서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래도 내게는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들과 부모형제들이 있고, 평생 동안 몸 담아온 직장과 저의 가르침을 받는 아이들과 서로 힘이 되어주는 동료 들이 있지 않은가? 신앙 안에서 친교를 맺으며 살아온 공동체와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보였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자 힘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2015학년 제24기 하상 신학원 입학>
2014년 10월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이제는 학교를 그만 두고 나의 사도가 되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정년퇴임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의외의 말씀에 고개를 저으며, 하느님의 뜻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의 사도가 되어라.” 어떻게 해야 사도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정년퇴임 후에 남편과 함께 다니자고 약속했던 하상 신학원이 생각났습니다. 신학을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37년 동안 몸 담았던 교직을 그만 두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단을 내리고 2015년 2월 28일 명예퇴직을 하고, 3월 2일 하상 신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가르치던 입장에서 학생이 되어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제 삶의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같은 목표점을 바라보며 같은 방향을 걷는 분들이 신앙 안에서 함께 공부하며 하느님을 찾아 간다는 것은 예측하지 못했던 흥분과 감동의 순간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신학원에서의 삶은 천국에서의 삶을 미리 맛보는 듯 즐겁고 행복하였습니다. 토막토막 들었던 그동안의 신앙 상식들은 전문 지식을 가진 교수 신부님들의 명쾌한 설명과 함께 조각난 신학들이 나름대로 체계를 잡아갔습니다.
24기는 공부뿐만이 아니라 날마다 먹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매점 언니가 있어서 누구든지 간식을 가져오면 매점 언니에게 드리고 시간별로 적절히 배분하여 골고루 나눠먹었습니다. 누구도 소외됨이 없이, 초대교회의 모습을 연상하면 될 것입니다. 또 매점 언니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어서 먹을 것이 늘 풍성하였습니다. 나눔과 배품에서 탁월한 재능은 가진 분을 만난 것입니다.
<2016년 하상신학원 휴학>
꿈같이 행복하고 달콤한 시간들을 시샘하듯이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결혼하여 5년 동안 아이가 없던 아들과 며느리가 아이를 갖게 된 것입니다. 둘 다 박사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하니, 제가 아이만 낳으면 잘 키워주겠다고 말을 했고, 남편이 떠난 자리를 메워줄 손자가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던 중이었기에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럽게 휴학을 생각하였습니다.
<2016년과 2017년 손자양육>
태어난 지 50일된 손자의 양육을 전담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생명의 신비, 인간의 존엄성,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자비하심을 체험하면서 하느님의 어린 아이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순수하고 거짓 없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끝없이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의 몸부림은 처절하였습니다. 뒤집고, 앉고, 일어서고, 걷고, 뛰기 위해 아이들은 수천 만 번 넘어져야 했습니다. 각 단계를 포기하는 순간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린이의 가장 큰 속성은 성장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과 양육자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며 자신을 발전시켜가는 자생력에 놀라왔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이! 성모님의 젖먹이! 예수님의 귀염둥이로 살아가는 것, 즉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천 만 번 넘어져야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어느덧 말을 하게 되고 걷고 뛰는 시기가 되어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2018년 복학하여 26기와 신학을 다시 배우다>
아이가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하게 되자, 다시 복학하여 공부를 해야겠다는 도전정신이 꿈틀거렸습니다.
성당에서는 성령기도회, 레지오, 울뜨레아, 직장인반 반장, 홍보분과장 직책까지 맡고 있는데 이 상태 그대로 복학하여 공부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도를 드리며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다하면서 복학하여도 공부를 할 수 있다.” 고 답을 주셨습니다. 용기를 내었습니다. 무조건 복학을 신청하고 아이들에게도 말하였습니다.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이다. 올해 복학하지 않으면 나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이해를 구하였습니다. 그래서 26기와 함께 합류하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2학년 수업은 1학년 때 들었던 기초신학들이 누적되어서 그럴까요? 수업 내용이 더욱 깊어졌고 심오하여졌지만 듣기가 편합니다. 매 시간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듣다보니, 강의 시간이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시간이 되었습니다.
26기동기들은 저를 언제나 따스하게 맞아주고 청소도 하지 못하고 수업 종이 울리기 전에 헐레벌떡 뛰어나가지만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분들이기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분들이기에 너그럽게 포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6기동기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갑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상 신학원 졸업 후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가?>
저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좋은 일거리를 마련해 놓으셨음을 믿고 확신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이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 6-7)
건강과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 한,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이 길만이 제게 진정한 행복과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하상인 여러분! 우리 다 이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저의 부족한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주님과 성모님께도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2018년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이정숙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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