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상신학원

조씨 형제 순교자의 묘(13)

기도하는 어머니 2015. 12. 7. 14:08

형제 순교자의 묘 (13)

 

(부산시 강서구 생곡동 272 부산교회사 연구소 T 051-462-1784)

 

2015123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장전동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하단역에 내렸다. 오후 330분쯤 되었는데 생곡마을버스가 오지 않아서 택시를 탔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몰랐지만 그냥 택시를 잡았다. 새로운 길이 생겨서 약간 돌아가는 느낌이었지만 기사분이 생곡동에 대하여 아는 분이어서 어찌어찌 찾아갔다.

부산시 강서구 생곡동 배씨 가문의 선산에는 배씨가 아닌 조씨(曹氏) 성을 가진 형제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병인박해 당시 신앙을 증거하고 죽음을 택한 창녕 조씨 석중과 석정의 유해가 문중의 선산에 묻히지 못하고, 선산을 앞에 둔 배씨 문중 선산에 묻혀 있는 것이다. 유교 집안이었던 창녕 조씨 가문에서 태어난 석중과 석정은 천주교로 개종한 뒤 열심히 선교 활동을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2년 뒤인 1868년 무진년에 두 형제는 가락면 상덕리 편도 부락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형제가 함께 순교의 영광을 얻는다. 순교한 이들의 시신을 조씨 선산에 매장하려 하였으나 사학 죄인이라 하여 문중에서 반대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의 배씨 집안(배정문 : 1994년 동해 앞바다에서 익사 직전의 사람을 구하다 살신성인한 배문한 신부의 증조부)에서 그의 집 언덕에 묻어 주었다. 이후 이들 형제의 순교 사실에 관한 구전이 배씨 집안에 대대로 전해 왔으며 묘소도 관리하여 왔다. 돌아간 배문한 신부의 생가를 개수하여 강당과 방을 마련하고, 그곳에 약간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조씨 형제의 묘에 경배를 하고 순례자 도장을 찍기 위하여 배문한 신부님의 생가로 내려왔다. 마당이 아담하게 꾸며져 있고 십자가와 성물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곳을 순례지로 꾸미려고 준비 중이라고 한다. 배문한 신부님은 수원가톨릭대학장 시절에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신자들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신부님의 생가를 볼 수 있음이 놀라웠다.

순례를 마치고 타고 갔던 택시를 타고 다시 하단역까지 왔다. 택시 기사분이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호감을 보이며 당신도 신앙을 갖는다면 천주교인이 되고 싶다고 하였다. 오늘은 운전기사에게도 복음을 전한 하루였다. ‘주님 이 영혼도 당신의 자비로 구원을 이루어주소서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였다. 택시비가 왕복 2만원이 조금 넘게 나왔는데 2만원만 받았다. 하단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이번에는 자갈치역에 내려서 미역 멸치 견과류 등을 샀다. 소꿉친구 연실이에게 전화하여 아는 분을 소개 받았다. 신동아시장내 자갈치 상회를 안내해 주었다. 산모용 미역을 다섯 개 사고 멸치와 견과류도 조금씩 샀다. 날씨가 추워서 옷도 하나를 사 입었다. 화명역에서 내려 집에 돌아오니 여섯 시가 다 되었다.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사돈님 내외가 오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은 준환이 생일이어서 생일파티도 할 겸 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딸이 케이크를 사 와서 친할아버지, 할머니와 외할머니와 형과 엄마와 함께 생일 축하 케이크를 잘랐다. 오늘도 사돈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손자의 열 번째 생일도 함께 지내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