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체험기

백두산 기행

기도하는 어머니 2014. 8. 12. 09:38

백두산 기행(14.08.06.-09)

 

이 정 숙

 

첫째 날(86일 수요일)

주님 변모 축일이다. 아침 미사를 나자로 마을에서 드리고 그동안 기도하며 기다려왔던 백두산 여행을 떠났다. 1030분 안양 범계에서 출발하여 1130분경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였다. 12시에 일행을 만나기로 한 출발 3M카운터 1번에서 참 좋은 여행 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일행 20명이 동행하게 되는데 10명씩 2개조로 나눠서 입출국하기로 하였다. 1230분에 수화물을 체크하고 짐을 부친 후 출국 준비를 하였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시간이 넉넉하여 막내와 함께 3층 카페라떼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36번 게이트를 통과하여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아시아나 비행기는 예정시간 오후 3시에 이륙하여 장춘을 향하여 날아갔다. 장춘까지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우리나라와는 시차가 1시간 차이가 나서 인천에서 오후 3시에 출발하면 현지시각으로 오후 4시에 장춘 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이륙 후 1시간쯤 지나서 기내식이 나왔다. 점심을 충분히 먹지 않아서 그런대로 기내식도 맛있게 먹을 수가 있었다.

아리랑을 읽는 동안 줄 곳 가고 싶은 곳이 백두산이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먹고 살기 위해 백두산을 넘어 만주로 건너 간 우리 조상들 그곳에서도 민족의 독립을 위해 독립군 및 의용군 활동을 하였던 그분들의 삶을 간접으로 경험하기 위해서, 또 민족통일을 기원하고 814일 교황님의 성공적인 방한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장춘 공항에 도착하자 참 좋은 여행 현지 가이드 이향화 씨가 나와서 안내를 해주었다. 공항에서 두 시간 이상을 달려 길림성 길림시에 위치한 중국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예약된 호텔에 도착하였다. 버스는 20인승 VIP가 나왔는데 이 정도면 A급이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향화씨는 자신을 소개하며 길림성에 대하여, 조선족에 대하여 또한 여행 일정에 대하여 자세한 안내를 해주었다. 커리어우먼답게 자신감에 넘치고 씩씩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좋았다. 우선 내일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6시간 정도를 달려 북파에서 보는 천지를 관람하고 장백폭포를 봐야 하는데 아침이 늦어지면 천지를 보는데 차질이 있을 것이란다. 하루에도 백두 번 변하는 날씨 때문에 백두산이라고 하였다면서 천지는 아무나 보는 것이 아니란다. 조상 3대의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천지를 본다면 조상님들의 음덕에 감사해야 하고 천지를 보지 못한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후손들을 위하여 덕을 쌓기 바란다고 엄포를 놓았다. 일행은 아침은 도시락으로 간단히 준비하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동의하였다. 또 북파를 다녀오면 저녁 식사는 북한식으로 하는데 옵션 추가비용이 3만원이 들어야하고, 피곤을 풀기 위해 전신 마사지를 하는데 또한 3만원 추가 비용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행들은 모두 동의하였다. 저녁 식사는 현지식인데 기름기가 많고 향이 독특하여 음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막내와 난 먹을 만큼만 먹었다.

장춘은 청나라 만주국의 수도이며 치욕의 황제인 푸이 황제가 134개월을 통치한 곳인데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위만황궁박물관을 추천하였다. 원래 일정에는 없기 때문에 가고 싶다면 3만원 옵션 비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정을 보면서 다시 알아보기로 하고 푸이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푸이황제(부인에 세 명이었지만 아이가 없었다.)는 중국 청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로 19083살의 나이로 청의 12대 황제가 되었지만 1912년 신해혁명으로 퇴위되었다가 1934년 일본에 의해 다시 만주국 황제가 되었지만 일본의 패전으로 소련에 체포되었다가 중국으로 송환되어 마지막에는 정원사로 생을 마치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알려졌는데 그가 마지막 남긴 자서전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마지막 황제란 영화이다. 또한 만주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만주는 땅이 비옥하고 석탄, 철광 등의 지하자원과 농산물이 풍부하며 백두산 일대를 중심으로 녹용, 인삼, 버섯, 고사리 등이 많이 생산된다. 중국은 22개성, 5개 자치구, 4개의 직할시(북경시, 상해시, 텐진시, 충칭시), 2개 특별자치구(홍콩, 마카오)가 있으며 우리 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는 6개의 시와 2개의 현이 있다. 연길시, 용정시, 화룡시, 도문시, 훈춘시, 돈화시(발해의 발원지)가 있으며 안도현과 왕천현이 있다. 인구는 218만 명이 되는데 조선족은 39% 정도이다. 조선족은 한족 다음으로 교육 1, 대학진학 1, 소비 1, 이혼율 1위로 조선족 나름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조국의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며 남한 북한 모두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조선족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TV, 냉장고, 세탁기 등을 사용하며 한국 방송을 날마다 보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세월호 사건 때에도 가슴아파하며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우리가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는 것보다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그들이 더욱 나라를 사랑하고 통일을 바라고 있었다. 그들의 조상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또는 자발적으로 만주로 건너가서 척박한 땅을 일구며 조국의 독립을 지원하고 직접 독립군과 의용군으로 활동했던 분들이 아닌가? 향화씨는 조선족 3세대인데 할아버지는 함경도 할머니는 경상도라고 한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를 잘한다. 전공은 경영학을 하여 회계사이며 여행사에서 가이드를 하는데 결혼에서 18개월이 된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녀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한국에 대한 사랑과 조선족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해 나갔다. 중국과 한국 사람의 차이점은 중국인은 식의주, 만만디,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싫어하고, 집을 치장하지 않으며, 한국인은 의식주, 빨리빨리, 집 관리를 잘하고 남을 의식하는 등의 국민성을 말하였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고 호텔에서 숙면에 빠져들었다.

 

둘째 날 (87일 목요일)

새벽 4시에 깨어서 묵상과 기도를 하였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은 나에게 진한 사랑의 고백을 한다. 나는 너의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오빠이다. 나는 너의 구원자, 산성, 방패, 하느님, 네가 숨을 바위이다. 두려워마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와 함께 있겠다.” 나도 그냥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이 나왔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나의 남편이며 아버지이고 나의 오빠입니다. 사실 남편도 당신 안에 아버지도 당신 안에 있으며 늘 당신은 나의 오빠로서 나의 모든 삶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하시기에 오늘도 두려워하는 나를 향하여 이렇게 살아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오늘 우리와 동행하시어 좋은 날씨 주시고 여행객들의 가장 절실한 바람인 천지를 볼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소서. 조상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주십시오. 동행하고 있는 글라라도 하느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시고 그의 모든 소망이 당신의 뜻 안에서 성취되기를 갈망합니다. 아침기도 묵상기도 묵주기도를 마치고 샤워 화장을 한 후 530분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승차를 한 후 가이드는 오늘의 일정을 이야기하였고, 등소평이 중국을 개혁 개방 한 이야기, 중국에서 가 볼만한 곳,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관하여, 끝없이 이어지는 옥수수 밭 이야기를 해주었다. 옥수수는 80%가 매옥수수인데 그중 80%는 석유를 만들고 20%는 사료를 만드는데 쓰인다고 한다. 찰 옥수수는 20% 정도인데 그것은 식용으로 쪄서 먹거나 구워서 또는 밥에 섞어서 먹기도 하고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옥수수 국수가 쫄깃쫄깃하여 잡채에도 사용이 되고 여름철 식용을 돋구는데 일품이라고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길림시를 출발하여 돈화시 훈춘시를 지나 장백산 입구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북파 주차장에서 장비를 정리한 후 셔틀버스를 타고 장백폭포와 북파 천지 입구인 삼문까지 갔다.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물결을 타서 어디부터 가야 천지를 볼 수 있을지 고민을 하였다. 가이드가 하늘의 구름을 보더니 장백폭포를 먼저 보고 와서 천지를 가잔다. 우리가 뭘 알간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우리는 서둘러 인파를 헤치며 노천 온천군(백두산 고산지대의 자연그대로 바위에서 온천수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최고 온도가 82가 되는 곳도 있으며 황화수소가 포함되어 있어 질병에 효험이 탁월하다.)을 지나 야생화 숲길을 따라 놓여진 계단을 따라 장백폭포에 도착하였다. 장백폭포는 비룡폭포라고도 부르는데 16개의 산봉우리가 천지 기슭을 따라 병풍 모양으로 천지의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북쪽의 트여진 곳으로 물이 흐르며 물은 1,250m까지 흘러내린다. 물의 양은 많지 않으나 가파른 지형의 영향으로 물살이 빨라서 먼 곳에서 보면 하늘을 오르는 다리를 연상하게 하여 사람들은 이를 승사하라고 부른다. 승사하는 개활지를 통해 흐르다가 68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며 90°수직으로 암벽을 때리며 떨어진다. 비룡폭포의 물은 겨울에도 얼지 않고 계속 흘러내린다. 폭포에서 막내와 사진을 찍고 약속 시간이 되어 서둘러 내려왔다. 다음 목적지인 북파입구에 갔더니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없어서 오늘은 일정이 끝났는가? 하고 놀랐다. 그런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이다. 한 시간 전에 그 많던 인파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의심스러웠다. 우리는 셔틀 버스를 타고 롤로코스터를 타듯이 이리저리 서로 몸을 부딪치며 30분 이상을 올랐다. 거친 길을 운전하는 기술도 놀랍고 사람들을 끌기 위해 이렇게까지 찻길을 만든 중국 사람들도 대단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첩첩으로 쌓이는 산의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고 신비로웠다. 북파 천지 입구에 도착하여 하늘을 보니 구름이 없이 파란 하늘이었다. 와우! 탄성을 지르며 또 다시 계단을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그곳에 천지가 있었다. 해맑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는 듯이 의연하게 맞아주는 천지의 모습은 웅장하고 거침없이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천지는 화산의 분출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칼데라 호이다. 중국과 북한 두 나라에 걸쳐 있으며 쑹화강과 두만강 압록강의 발원지이다. 둘레가 14.4km 면적이 9.17평방킬로에 이르며 평균수심은 213.3m이고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384m에 이른다. 일년 내내 물의 양이 한결같다니 참 신비롭다. 천지 주변은 16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잿빛의 봉우리들은 눈이 시릴 만큼 푸른 천지와 대조를 이루며 거울처럼 투명한 호수 위로 반사되어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을 이룬다. 물빛이 얼마나 고운지 파란색이 채도와 명도를 다르게 하여 물빛을 채색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희망과 위로를 받고 내려갔을까? 난 너무나 황홀하여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감탄사만 연신 터졌다.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천지를 감상하고 마음 뿌듯한 기분으로 천지를 뒤로한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천지를 본 후 갑자기 스쳐간 생각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어 주셨다. 창조주의 위대함, 인간을 위한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당신의 위대하심과 아름다우심을 피조물들을 통해 감상하도록 배려하심이 놀랍다.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창조주 하느님을 향하여 하루하루 계단을 오르고 있다는 느낌, 산을 오르는 동안에는 천지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 그림에서 보았던 천지의 모습은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기에 어렴풋할 뿐이었다. 사도 바오로도 세상에서는 주님을 거울을 보듯이 보지만 하늘에서는 그분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도 순례자로 신앙의 길을 가고 있지만 최종 목적은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아닌가? 꿈에도 그리던 그 나라 정의와 평화, 사랑과 행복, 진리와 자유가 현실이 되는 지복직관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오로는 인생의 거친 길을 다 달려 이미 그곳에 안착하였고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천지가 태초부터 오늘의 나를 만나기 위하여 이곳에 이렇게 있었듯이 하느님도 나를 만나기 위하여 하늘나라에서 태초부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내려오는 길은 너무나 행복했다. 천지를 품안에 가득 안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 목적이 완수된 것 같은 홀가분함과 행복함을 가지고 내려왔다. 일행들도 모두 기뻐하였다. 저녁식사는 북한식을 하였는데 북한 여성들의 예능 공연을 겸해서 볼 수 있었다. 한복차림을 한 원조미인들의 아름다운 자태와 노래, , 장구, 중창 등 30분 동안의 공연이 이루어졌다. 도라지, 아리랑, 고향의 봄 등을 구성지게 부르는데 한 민족이란 생각과 애처로움이 눈물겨웠다. 음식은 그런대로 입맛에 맞았고 저녁식사 후에는 전신 마사지를 하였다. 하루 동안 피곤함이 사르르 풀리며 마사지 후에는 호텔로 와서 푹 쉴 수 있었다. 이도백화진은 한국의 읍 단위 정도인데 투숙하는 호텔도 그런대로 좋았다.

 

셋째 날 (88일 금요일 : 음력 714)

여전히 새벽에 일어났다. 한 시간 정도 아침기도와 묵상기도를 하였다. 묵상기도를 하는데 오늘은 바오로가 뜬금없이 말한다. 저 사람 수고했어. 힘든 일정 잘 쫓아다니고 있네, 난 어디를 가든 당신과 함께하니 외로워하지 말게나, 난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늘 거닐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네.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행복하게 자유롭게 잘 살게. 때가 되면 당신을 데리러 올 것이니 아무걱정하지 말고 건강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세. 글라라와 요한이 걱정도 하지 말게 하늘에서 다 굽어 살피고 있다네.” 뜻밖에 바오로의 음성을 들으니 기분이 좋고 용기가 생겼다. 멋지고 고마운 당신! 당신처럼 다정다감하고 넉넉한 사람도 생각해보면 없는데 난 왜 그렇게 빡빡하게 굴었는지 여보 미안해요. 나 이 세상 떠날 때까지 항상 옆에 있어주어요. 그리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이 되면 언제라도 나를 데리러 오세요. 꽃단장하고 기다릴께요. 여보! 사랑해요.” 오늘 아침은 6시에 식사를 하고 630분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이도백화진에서 출발하여 1시간 정도 달려서 서파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서 셔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북파에서 보다는 수월하게 순서가 왔다. 우리 일행은 두 대의 셔틀 버스에 나눠서 서파 주차장까지 달렸다. 1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가는 길에 장백송과 자작나무 숲이 있었고 더 위쪽에는 야생화 군락지가 있었다. 고산화원은 아름다운 야생화 노란만병초, 하늘매발톱, 큰 원추리 등 이름만큼이나 개성적인 1,800여 종의 야생화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서파 주차장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갔다. 역시 인파에 밀려 오르는데 계단이 1,442개라고 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랐다. 천지를 보고 싶은 모든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천지를 보고자하는 열망이 그들을 이곳까지 이끌어 왔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이 중국인과 한국인들인 것 같다. 이곳에 와서도 건강하지 못하거나 계단을 오를 자신이 없으면 인력거를 타고서라고 오르고자 하였다. 계단 양쪽에는 수많은 야생화들이 즐비하여 행인들을 반기고 있다. 오르다가 지치면 뒤돌아서서 산 아래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산들이 어깨동무하고 나란히 사이좋게 놀고 있다. 또한 깍아지른 듯 아름다운 절벽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오늘도 하늘에는 하이얀 뭉게구름만 떠다닐 뿐 비구름은 없다. 어제와 같이 천지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역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르고 또 오르니 그곳에 천지가 있었다. 그림이나 교과서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천지가 모든 이들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서파에서 보는 천지는 확 트였고 마음이 넓은 어머니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었다. 너그러움과 포근함이 묻어나 여성적인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맑은 하늘에 구름도 두둥실 청객이 되어 천지를 감싸고 있다. 푸르고 깊은 물은 물의 깊이에 따라 채색을 달리하고 있다. 천지는 생명의 원천인 물을 가슴에 품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태연히 앉아있다. 천지에서 흐르는 물이 얼마나 많은 생명의 젖줄이 되고 있는가? 생명의 모체인 천지가 신비롭기만 하다. 북한에서 올라가 볼 수 있는 것이 동파에서 보는 천지라는데 그것이 더 아름답다고 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북한이 개방되어 동파에서 천지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중국 땅을 거쳐서 돌고 돌아서 오지 않고 서울에서 바로 직선코스로 백두산을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드시 통일이 되어 우리 후손들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 어제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려 사진을 찍을 수도 없을 지경이다. 천지에 오른 모든 이들은 사람사이를 비집고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혼자서, 둘이서,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나도 딸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여 몇 장을 찍었다. 어제의 아쉬움이 남아서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민족의 통일도 기원하고 교황님의 방한도 우리나라의 모든 아픔들도 다 봉헌하고 가족의 행복과 건강도 기원하였다. 30분정도 충분히 감상을 하고 내려왔다. 1030분까지 주차장에 모여야 하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다. 1,442계단을 내려서 일행과 만나 다음은 금강대협곡을 향하여 셔틀버스를 탔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 화산폭발로 용암이 분출된 V자형 계곡이다. 2001년 산불로 인해 진화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길이가 15km 폭이 약 200m로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릴 정도로 서파의 명소 중 명소란다. 자작나무와 삼나무 이름 모를 야생화, 갖가지 음지식물들이 숲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20분 정도 걸으니 협곡이 나타났다. 협곡 중간 중간 기암절벽들이 서있다. 어떤 것은 기도하는 성모님 같고, 어떤 것은 사랑을 속삭이는 부부 같고 어떤 것은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 같고, 어떤 것은 고뇌에 빠져 생각하는 사람과도 같았다. 보는 이가 의미를 부여하는 대로 형상이 다를 것이다. 그랜드 캐년보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모습이 정겨웠다. 나무와 꽃과 풀과 바위, 온갖 새들과 짐승들이 서로 마음껏 자유롭게 노니는 동식물들의 천국인 협곡 관람을 마쳤더니 어느새 12시가 다 되어 배꼽시계가 식사 때를 알렸다. 점심은 백두산 근처 강원도 식당에서 먹었는데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식단이었다. 콩나물, 감자, 목이버섯, 상추, 오이, 당근, 상추, 돼지고기 편육, 두부, 김치, 된장찌개 등 배불리 먹었다. 식사 후에는 갈 길이 멀다며 다시 버스에 올라 장춘까지 달렸다. 이도백화진에서 장춘까지는 6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데 비포장도로, 국도, 고속도로를 달렸다. 두 번 휴게실에서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옥수수 밭과 콩 밭, 벼 등 대부분은 옥수수 밭이었다. 석양이 서녘 하늘에 아름답게 내리고 있었다. 붉은 노을을 수놓으며 사라지는 태양 빛을 바라보며 나의 인생길은 대충 어디쯤 왔을까? 지금은 오후 몇 시쯤일까?를 생각하며 걸어 온 인생길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바오로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고 36년 교직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자는 신념으로 지금까지 걸어왔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저 석양처럼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을까? 혼자의 생각에 잠기면서 멀고 먼 길을 지루하지 않게 왔다. 저녁식사는 현지 식으로 하였다. 일행은 피곤하였는지 식사를 하고 모두 객실로 들어갔다. 나와 지원이도 하루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마지막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넷째 날 (89일 토요일)

호텔에서 늦게 일어났다. 오늘 아침은 모닝콜도 없다. 그렇지만 난 버릇대로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여행일정을 뒤돌아보며 안전하게 지금 이 순간까지 온 것에 감사 또 감사하였다. 외출준비를 마친 후 막내와 함께 밖에 나가 장춘역과 주변 일대를 둘러보고 식사를 한 후 또 호텔 뒤에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시가지를 살펴보았다. 고요하고 평온한 호수와 학교, 고층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은 장춘 조각공원을 둘러보고 위만주팔대부와 문화광장을 투어하기로 되어 있다. 930분 체크아웃을 하고 일행은 조각공원으로 갔다. 세계 최대의 조각 공원인데 세계의 모든 조각가들이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보내 온 것을 한 곳에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독특한 조각 작품들과 호수, 나무, 갖가지의 꽃들, 연꽃 등 1시간에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오랜만에 일행들과 함께 어울려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며 정다운 시간을 보냈다. 정년퇴임을 한 후 보은에서 친환경 주택을 지어서 부부가 함께 살아간다는 송장호씨 부부,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송기섭, 마음씨 좋아 보이는 동네 아줌마 허효순 등 여행을 통한 만남이지만 금방 친해졌다. 이곳에서 지원이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고 일행과 이야기도 많이 하였다. 조각 공원 관람을 마치고 차창관광을 하였다. 장춘 중심부를 지나면서 만주국일 때 지어진 팔대부 건물들은 지나가면서 보았다. 그리고 대부분 지금은 학교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문화광장은 수리 중이어서 입장할 수가 없었다. 바로 공항 곁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우리 일행 10명이 한 곳에서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가 오후 63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하였다. 위만황궁박물관에 가는 일정은 일행들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그만 두기로 하였다. 여유있게 움직이니 사람들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공항에 일찍 도착하여 기다리다가 630분 비행기를 탔다. 인천공항에는 우리시간으로 1030분쯤에 내렸다. 수하물을 찾고 리무진을 타고 집에 오니 1130분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은 보름달이 마중 나왔다. 이번 여행은 약간 무리수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뜻을 이룬 여행이었다.

 

34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맑은 날씨였다.(날씨, 여행사, 가이드 모두가 좋았다.)

첫째 : 하느님의 동행하심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사랑의 고백과 바오로의 사랑의

고백을 들었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복함이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임

둘째 : 막내 딸 지원이 글라라와 함께 할 수 있었음이 너무 행복했음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기회가 됨

셋째 : 천지를 가슴에 품고, 천지를 바라보며 양팔 벌려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모든 청원과

감사와 중재의 기도를 할 수 있음

넷째 : 교황님의 성공적인 방한과 조국통일이 이뤄질 것이란 확신이 생김

 

오소서 주 예수님! 성령을 보내시어 누리의 모습을 새롭게 하소서. 삼위일체하느님과 성모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집안의 모든 조상님들에게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