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기도하는 어머니 2013. 6. 26. 08:37

역발상이다. 사람이 하느님께 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람에게 빌다니!!

책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혼자서 감내할 수가 없어서 강론 자료로 만들었다.

25일 기도회에서 성령께서 이끄는 대로 말씀을 전하였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모두가 주님의 은총이다.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

사람에게 즐겨 기도하시는 하느님

루이 에블리 지음

김수창 옮김

1. 사람에게 즐겨 기도하시는 하느님

1) 기도란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경청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 무엇을 구하고자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원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신명 6, 4-6)

 

☞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탈출 19, 4-5)

 

2. 기도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자기의 요구, 반항, 원의 등을 잊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계획에 동의하고, 우리 안에 있어서의 하느님의 기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 15, 7)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아버지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은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요한 1, 18)

 

3)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하느님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그 인간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이 곧 기쁜 소식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의존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하느님께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인간에게 의존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인간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면(은혜, 용서 등)에서는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면에서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의존하고 계신다. 즉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

 

4) 십자가에 매달리신 하느님을 보라! 하느님은 거기서 그렇게 계신다. 다른 사람들에게 지배당하시고, 자유를 빼앗기시고, 포박당하시고 굴복당하셨다. 하느님은 당신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안에서 함께 고통을 겪으시며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가를 보이시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다. 당신이 자녀를 가지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충분히 봉사하고, 나중에는 언젠가 그들이 당신이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고 봉사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함을 뜻한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차례가 되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넘치는 사랑과 봉사에 의해, 인간들이 자기 차례로서 이웃에게 그 사랑과 봉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이 어버이가 되고, 사랑이 되며, 하느님이 되기를 원하신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이 점차로 퍼져 나가, 이 세상의 땅 끝까지 이르게 되기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다. 아버지의 기쁨은 아버지 자신이 완전히 그 자녀들에게 받아들여져, 하느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게 되는 데 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요한 4, 20)

 

당신은 사랑할 때 사랑을 알 수 있다. 사랑은 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이며, 전존재이시며, 인성을 구비한 성사를 통하여 사랑을 나타내신다. 당신은 사랑하는 것 이상의 것을 하느님을 위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하느님을 자기 안에 육화시켜, 하느님에 의해 자신을 신성하게 하고 자기 안에 계시는 하느님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느님이란 당신이 살아가는 생명 자체이며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 자체이시다. 그것은 당신 안에서 당신을 꿰뚫고 흐르는 흐름이며, 당신을 다른 사람에게 불어 가도록 하는 질풍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 베푸는 자선이다.”(마태 9,13)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1요한 3, 14)

 

우리는 하느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 빵을 나누는 법을 우리 사이에서 재현시킴으로써, 우리의 빵을 나누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기도 중에 당신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내부에 부어 주시는 온갖 사랑, 연민, 동정, 자비,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마음 등을 자신 안에서 샘솟게 하는 것이다. 하느님만이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실 정도로 이 세상을 사랑하실 수 있다. 기도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려 주시는 지극한 사랑을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람들의 집이며, 신자들의 모임이다. 하느님은 유일한 거처만을 가지신다. 즉 그것은 당신이다. 유일한 성스런 장소는 인간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는 사시지 않습니다.”(사도 7, 48)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1고린 3, 16-17)

 

성체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성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체는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 거하시는 것이 유일한 원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계시는 겸허하고 온유하며, 가난하고 자비에 넘친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서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고 구원을 가져다준다. 이 계시는

5)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선언하는 복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과 같이 되기 위해서도, 또 하느님이 되기 위해서도 부자가 되거나 권력자가 되거나, 현명하고 예의바르거나 위엄 따위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보다 좀 더 사람들을 사랑하고, 좀 더 사람들에게 봉사하면 됩니다.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의 말째가 되고, 모든 사람의 봉사자가 됨으로써 당신은 당신의 지금의 지위나 지금의 수준에서 곧바로 하느님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건물 안에서보다는 당신의 생활 안에서 훨씬 더 신성한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행하는 가장 평범한 행위야말로 가장 신성한 행위이다. 진정한 미사는 당신의 집에서 행해진다. 당신이 음식을 나누어 먹고 혹은 남을 용서할 때, 언제나 그곳은 바로 성사, 즉 하느님의 은혜를 외부에서 볼 수 있는 표지가 된다. 하느님께 대한 봉사는 가끔 행해지는 두세 번의 예식에 참례함으로써 끝나는 것이라는 따위의 생각을 가지지 말고, 당신 자신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사랑, 나눔, 용서 등의 행위를 되풀이함으로써, 하느님의 계시를 영속시키도록 불림을 받았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2.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기도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 마음 안에서 진정으로 하느님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6) 기도란 하느님이 당신 안에 육화되는 때이며, 하느님이 사랑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시는 시간이며, 당신 자신을 완전히 하느님과 닮도록 해주시는 시간이다. 그리고 자기가 변하는 것을 보고, 하느님이란 어떠한 분이신가를 아는 때이다. 기도란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다.

어떻게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은 매우 적다. 솔로몬이 지혜를 달라고 청했을 때(1열왕 3, 12) 하느님은 그에게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마음을 부여하셨다.

6) 당신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지껄이는 입을 가진 사람인가? 과연 남편 중에 몇 사람이나 아내의 말에 그리고 아내 중에 몇 사람이나 남편의 말에, 또 어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또 누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성령께서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해서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십니다.”(로마 8, 26-2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 14) 성령의 감도를 받지 않고는 기도할 수 없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하는 것이 아니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도 아니며 상속자도 아닐 뿐 아니라 우리의 기도도 들어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로마 8, 15)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하나의 독자적인 공부이며 예술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라든가 그 훌륭함을 알지 못하고, 또 생각하려 하지도 않은 얕은 생각들은 우리의 최대의 죄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가 인생의 의미, 사물의 아름다움, 다른 살아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 가장 둔감한 인간까지도 원하는 인생의 무한한 풍부함을 나타내는 일들이다.

7) 인생은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도하는 일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의 계시, 놀라움, 은혜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자기는 쓸모없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얼마나 훌륭하신가를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 안에 계시듯이 우리 안에도 계신다.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고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자라실 수 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영원한 면을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의 가장 평범한 일상생활에 온갖 사랑을 쏟을 수 있도록 자신의 일생을 노래할 것이며, 또한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행위를 하느님과 관계를 갖고 생각하게 해준다. 기도는 우리의 행위를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갖고 사랑과 자유, 이 세상을 변화시켜 가는 희망과의 크나큰 흐름과 연결되는 것이다.

 

8) 신앙은 체험에 기초한다. 아주 많은 크리스찬들이 자신이 체험한 그리스도가 아닌 자기의 부모나, 자기 본당의 주임 신부님이 전해주는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이 믿을 수 있을 만큼 하느님을 더 잘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당신에게 말씀을 하시는가?

당신은 하느님께서 말씀을 걸어 오셨다는 체험이 있는가?

 

당신에게 하느님께서 말씀해 오신 체험이 없다면, 하느님께서 말씀을 거신다는 것은 믿을 자격이 없다.

그리고 한번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즉 당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누구나가 들을 수 있도록 기쁜 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9) 그리스도 신자란 하느님께서 말씀해 주신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야말로 크리스찬의 定義이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은 자,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를 믿고 언제나 기쁘게 투쟁하며, 예언적인 사명을 띤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크리스찬이란 하느님의 언행을 본받겠다는 열망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람,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자들 -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 약한 자, 박해받는 자, 그리고 정의와 자비, 이웃들이 좋아하는 삶을 배운 사람들이다.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알았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아주 귀중한 것이며, 그 밖의 다른 것을 얻으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얼마나 황홀한 체험이냐?

 

“나를 보내신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서 일하시는 분은,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제 나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나의 나약함 속에서 그분의 강함이 나타납니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 우리 자신도 도달하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그것은 아주 깊은 곳으로서 하느님 자신이 당신 자신을 나타내시는 장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곳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이 그곳에 있다고 선언하실 때까지는 우리 자신도, 우리 안에 그런 곳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내면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만, 당신들은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므로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내 양은 내 목소리를 알고 나를 따라옵니다.”라고 예수는 말씀하셨던 것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느님의 말씀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하느님이 말씀해 오시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면 좋은가에 대해서 무엇인가 좋은 생각을 줄 수가 있다면, 당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많은 말씀을 듣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0) 기도란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바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은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 그리고 언제나 말과 행위와 원의를 가지면서도 막상 무슨 일을 시작하자마자 딴 길로 들어가 하느님의 뜻대로 하기가 불가능하게 된 우리에게, 다시금 하느님께서 말하고 행동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가지시게 함을 뜻한다. 즉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분은 하느님이신데, 사람이 그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기도란 하느님께 대한 호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고요히 귀를 기울이고 듣는 것이다.

 

범계성령기도회장 이정숙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