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순교성지 (25)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446 T 031-749-8522)
2015년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오늘은 남한산성 순교성지를 순례하기로 대녀 루치아와 약속하였다. 대녀는 서울에서 난 안양에서 출발하여 성지에 10시 20분에 도착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미사에 참례하기로 하였다. 집에서 9시 40분에 출발하였더니 성지에 10시 20분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곱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시원하다. 성지에 도착하여 대녀에게 전화를 했더니 데레사와 함께 오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렸다. 눈이 녹아내리면서 길이 질펀하였고 날씨가 쌀쌀하게 추웠다. 기도를 마치고 성전에 들어가서 미사 준비 기도를 하였다. 제대 앞 십자가와 장식이 독특하였다. 형틀에 달려 고통 받는 십자고상이 특이했다. 내부는 목조로 건축되어서 포근하였고 스테인글라스를 통하여 들어오는 빛이 부드럽고 온화했다.
남한산성은 한양의 군사적 요지로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는데, 이미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년)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으며, 신유박해 때에는 최초의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가 탄생하였다. 이어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순교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순교하신 분들 가운데 일부분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병인박해 때에는 백지사(白紙死)라는 특이한 형벌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사지를 묶고 얼굴에 물을 뿌린 뒤에 한지를 덮는 일을 거듭하여 숨이 막혀 죽도록 하는 형벌이다. 너무 많은 신자들이 잡혀오자 피를 보는 일에 진저리를 낸 포졸이나 군사들이 쉽게 처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해 낸 형벌이 바로 백지사 형이다. 순교자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은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한덕운 토마스를 비롯하여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일가인 김덕심 아우구스티노, 김윤심 베드로, 김성희 암브로시오, 김차희, 김경희, 김윤희와 이천 단내 출신 정은 바오로, 정 베드로 등 36명에 이른다.
성지에 이르는 길이 지금은 포장이 되어 있고 자동차나 버스로 다닐 수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구불구불 산길이 험했을 터인데 이곳까지 끌려오는 것만도 힘겨울 텐데 온갖 형벌을 다 이용하여 신앙인들을 몰살하였으니 생각만 해도 참담하다. 그것을 지켜보아야했던 양민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안타깝고 녹아내렸을까? 피비린내 나는 죽음을 보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신앙인들의 삶은 대단하다.
주님 순교자의 영성을 마음깊이 새겨 주소서! 전국 순교성지를 다 돌때까지 변함없는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고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여 순교자들의 삶의 흔적을 마음에 새기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은 대녀가 점심을 샀다. 두부집에서 전골과 손두부를 시켜 먹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영적담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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