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굴(대재 공소) (21)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산 2 간월산 정상 부근 T 052-262-5312)
2015년 12월 5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죽림굴(대재 공소)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충청도 일원과 영남 각처에서 피난해 온 교우들과 간월의 교우들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박해 시대(1840-1868년)의 공소로 언양 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 공소에 이어 두 번째 공소이다.
이 공소는 샤스탕 정 신부와 다블뤼 안 신부가 1840년부터 1860년까지 사목을 담당했던 곳이며, 경신박해(1860년) 때는 박해를 피해 들어온 최양업 신부가 3개월 동안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최 신부는 이곳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며 자신의 마지막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울산 장대에서 처형된 세 분의 복자 허인백 야고보, 이양등 베드로, 김종륜 루카가 한때 이곳에서 머물렀으며, 김 아카타도 최 신부를 도우며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후 계속되는 경신박해와 병인박해(1866년)의 여파로 교우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100여 명을 넘던 신자들이 사방 각지로 흩어져 대재 공소는 폐쇄되었다.
그 후 1986년 11월 9일 언양 성당 신부와 신자들이 죽림굴을 발견하고, 현재는 매년 발견 기념일에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이 굴은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오늘은 병영장대, 언양 성당, 살티 공소 등을 순례하였다. 죽림굴을 가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언양 성당 뒷산에 있는 성모 동굴에서 대신 기도를 하였다. 이곳 언양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의미 깊은 성지를 둘러보면서 많은 깨우침을 얻었다. 모진 박해와 고문 가운데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을 증거했던 신앙 선조들의 믿음을 본받아 용감하게 신앙을 전파하는 선교사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 보았다. 지금 우리 모녀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모녀가 천주교 성지 순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딸도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를 사서 도장을 받고 싶다고 하여 언양 성당에서 도장 세 개를 찍었다. 이제 딸에게도 순례가 시작된 것이다. 딸과 함께 오붓하게 묵주기도를 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주님 사랑을 이야기 할 수 있음이 오늘 하느님께서 우리 모녀에게 준 크나큰 축복이다.
주님! 김 데레사와 그의 가족들 남편 안 요셉, 아들 안 비오, 안 베네딕도를 축복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