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투병일지(2013 묵상집)를 날려버리던 날(2월 4일) 마음이 산란한 가운데 맨붕 상태가 되어 밥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책상위에 놓인 조정래 작가의 [황홀한 글감옥]이란 책을 처음으로 펼쳐들었어요. 그곳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분의 대작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소설 속에서 당신과 같은 사람도 찾아냈고요. 정치, 경제, 이념, 주의, 민중들의 삶, 4․3사건, 10․1폭동, 여순반란사건, 빨갱이, 순사들, 경찰들, 청년단, 전라도, 먹거리, 가난하고 궁핍한 여인들의 삶, 우남, 백범, 미군정, 김일성, 해방 후 백성들의 삶, 공산주의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실감나게 펼쳐져서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었지요.
“숯장시 아덜로 사범학교를 나온 염상진과 그의 처 죽산댁, 그의 동생 염상구, 염상진의 딸 덕순이와 아들 광조” “양반족보 지닌 안씨 문중 태생 안창민, 보성땅 이씨 문중의 이해룡, 땅딸보 하대치와 들몰댁, 그의 동생 서인출, 조성 오판돌, 정하섭과 무당 소화, 강동식과 외서댁” 다양하고 독특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재미나게 엮어가는 이야기에 심취하게 되었어요. 빨갱이들은 왜 하나 같이 똑똑하고 지혜롭고 인성이 훌륭한 것인지? 그 시대의 지식층으로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똑같이 나눠주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 하는 일념으로 빨갱이 짓을 한 것이지요. 해방과 함께 농지 무상 몰수 무상 분배의 이상을 실현하고 친일파를 색출하여 처단하고 민중이 주인이 되어 공평하게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속속들이 녹아 있었어요.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만 3년 1개월 2일 만에 총소리가 멈추게 되었다. 따라서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동시에 미․소의 합의로 그어진 직선의 삼팔선은 꾸불꾸불한 곡선의 휴전선으로 변했다. 그 난해한 곡선은 ‘전쟁이 끝난 선’이 아니라 ‘전쟁을 쉬는 선’이란 뜻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구체적인 차이를 잘 모른 채 그저 ‘전쟁이 끝났다’고 했다.
염상진도 적들의 포위망에 걸려들었다.
염상진은 적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한 번, 두 번, 빈 탄창이 튕겨 나왔다. 더 쏠 총알이 없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총알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도 방아쇠를 두 번씩만 더 당기면 빈 총이 되는 것이다. 그는 빈 총의 가늠구멍을 통해 몰려오고 있는 적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침내 왔구나! 이젠 가야지! 그는 어금니를 꾸욱 물었다. 문득 아들 광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새벽공기 같은 맑고 시원한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려왔다. 「아부지, 나도 싸게싸게 커서 아부지맹키로 훌륭헌 사람이 될라요.」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아내의 얼굴이, 딸의 얼굴이 겹쳐지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생각해 냈다. 얼른 왼쪽 윗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날 어머니가 주셨던 돈이 손 끝에 잡혔다. 그는 돈을 매만져보고 손을 빼냈다.
염상진이 팔을 벌렸다. 네 사람도 양쪽 팔을 벌렸다. 그리고 그들은 어깨동무를 했다. 어깨동무를 하게 되자 그들의 간격은 자연히 좁혀들었다. 수류탄을 든 염상진의 오른손이 그들이 만든 동그라미 가운데 놓였다.
[동무들 다 같이 만세를 부릅시다.]
염상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입으로 수류탄의 핀을 뽑았다.
[인민공화국 만세-]
꽝!(염상진의 빨치산 활동은 자결로 끝을 맺었다. 그의 종말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했다.)
대장부이든 졸병이든 죽음의 순간에 떠올리게 되는 것은 가족이다. 남편도 죽음을 직면하면서 아들, 딸, 아내, 어머니, 형제들, 사랑하는 친구들과 이웃들을 떠올리면서 세상에서 그들과의 추억을 나름대로 그리워하고 잘못을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해주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마감했을 것이다. 아파서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던 그 참담한 심정을 이제 비로소 알 것 같다. 삼촌 헌윤 그레고리오, 아버지 이재화 아우구스티노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오늘의 최강 특보!! 잠시만
4월 16일 세일호 침몰 사건이 발생하여 전 국민을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있다. 특히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제주도 수학 여행 가기 위한 뱃길이었다. 삽시간에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배 속으로 처들어 왔고 몸도 빠져 나올 틈이 없이 2시간 만에 완전히 침몰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용케도 갑판 위로 나왔거나 4, 5층에 있던 학생과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할 수 있었지만 거의 80% 학생들이 수장되어 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14명 정도의 선생님들도 탈출을 시도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마라, 구조를 할 때까지 당황하지 말고 기다려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질서를 지키다 모두가 물속에 수장된 것이다. 그의 부모들과 형제들 학교와 선생님들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 모두가 참담한 심정이다. 현재까지(18일 오후 5시) 전체 승선원 475명, 사망자 26명, 270명 실종, 179명 구조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사건의 진위는 시간이 흘러야 판결이 나겠지만 어처구니 없는 대처 방법, 과적의 화물, 급회전, 선장이 아닌 항해사가 키를 잡은 것 등 너무나 많은 의구심이 온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 단원고 교감 선생님도 목메어 자살했다는 속보가 뜨고 있다. 참으로 암담하다. 배 속에서 물을 먹으며 죽어 간 학생들과 승객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각자가 부모, 형제, 아들, 딸들을 생각하며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오호 이를 어찌하오리까? 하늘이여 바다여 땅이여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성주간 금요일이 이렇게 우울하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소서.
염상구 등장(청년단장이며 염상진의 동생이다.)
“「요런 개좆겉은 새끼덜아,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 당장에 못 띠내리겄어!」 염구상구가 두 경찰의 어깻죽지를 동시에 치며 외친 소리였다.
그려, 그려, 니가 사람이다. 하먼, 느그 성인디. 그제야 호산댁은 솟구치는 서러움을 눈물로 쏟아내고 있었다. 워메, 워메, 아즘찬은거. 시동상이 인자 사람이시. 예상이 뒤집히자 죽산댁도 비로소 고마움과 서러움이 범벅된 눈물을 줄줄이 흘리고 있었다. 죽산댁이 치마를 받쳐 들고 있었다. 염상진의 목은 그 치마 위로 옮겨졌다. 그 순간 죽산댁이 치마를 감싸안으며 주저앉았다.
[아이고메, 광조 아부지이, 광조 아부지이 ……]
통곡과 함께 그녀의 온몸이 심하게 떨려대기 시작했다.
늦가을볕이 스산하게 내리고 있는 길고 긴 방죽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유명한 대장이 저리 죽었이니 동기나 삼수가 살았을 리가 없는 일이제. 말자리나 하고, 생각 똑바라지게 묵은 젊은 사람덜언 다 죽어뿔고 인자 나 겉은 쭉징이에, 지 욕심 채리는 것덜만 남었구만. 해방이 되고 이적지 8년 쌈에 죽기도 많이덜 죽었제. 쓸 만헌 사람덜 요리 한바탕씩 쓸어불고 나먼, 그만헌 사람덜이 새로 채와지자먼 또 을매나 긴 세월이 흘러야 허는겨? 인자부텀 새로 낳는 자석덜이 장성혀야 헌께 한시상이 흘러가는 세월이제. 그렇제, 갑오년 그 쌈에서 3‧1만세까지 또 3‧1만세에서 해방꺼지가 또 시물여섯 해 아니라고. 인자부텀 또 그만헌 세월이 흘르먼 워찌 될랑고? 잉, 또 고런 심덜이 모타지겄제. 세월이란 것이 그냥 무심허덜 않는 법잉께. 나가 질게 살아옴서 보고 겪은 세월이 그렸어. 나도 징허게 오래넌 살었구만. 인자 나 겉은 쭉찡이부텀 얼렁얼렁 가야제. 그려야 타고난 목심덜이 묵고 커날 것잉께. (한장수 노인의 말)
대장님 지가 왔구만이라. 하대치여라.”
주인공 염상진/ 염상구/ 호산댁/ 죽산댁/ 광조/덕순이
하대치/ 길남이/종남이/ 천첨바구/조현제 손승호/박난희
김범준/ 김범우 안창민/ 이지숙 이근술/ 서민영 강동식/강동기/ 외서댁
마삼수/ 정하섭/ 소화/ 이현상/ 이해룡/ 이태식
가장 매력적인 주인공은 염상진, 하대치, 소화, 김범우, 외서댁, 이지숙, 서민영
해방 후 1952년 9월까지의 ‘민족사의 매몰시대’ ‘현대사의 실종시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분단사, 일제 강점기, 4․3사건, 10․1폭동, 여순반란사건, 정부수립, 농업, 경제, 인생, 처세술, 전쟁, 투쟁, 빨치산 활동, 6,25사변, 이데올로기, 지리산, 벌교, 보성일대, 미국에 대하여, 전라도, 남자, 여자, 부부애, 부모자식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 인간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재미있게 역사적 바탕 위에 써나가고 있다. 내가 읽은 장편 중에 가장 재미있으면서 깨달음과 함께 많은 가르침을 준 책이다. 특히 제주도 4.3사건에 희생된 자들과 6.25 사변으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10년이 넘었다. 책을 펴는 순간 그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진정성, 민중이 원하는 것, 민중의 소리를 듣고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빨치산 활동, 이데올로기로 피해를 당한 주변의 어른들 아무튼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남편의 죽음이 태백산맥을 읽는 동안 얼마나 준비된 거룩한 죽음이며 행복한 죽음인가를 알게 되었다.
인생을 멋있게 마감한 남편이 오히려 부러웠다.
태백산맥 1만 5천매를 읽었다는 것이 뿌듯하다.
80년대 최대의 문제작 1위, 전국 1650명이 뽑은 ‘가장 감명 깊은 책’1위, 대학생 필독도서 1위, 한국의 지성 49인이 뽑은 미래를 위한 오늘의 고전 1위, 전국 애장가 720명이 뽑은 ‘가장 아끼는 책’ 1위, 서울대학교 신입생 218명이 뽑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1위, ‘가장 읽고 싶은 책’ 1위, 조정래 노벨문학상 추천 서명 발대식, 미혼 직장 여성 520명이 뽑은 ‘친구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책’ 1위, 전국 20세 이상 독자 1천 2백 명이 뽑은 ‘우리 사회에 가장 영향력이 큰 책’ 1위, 대학 수석 합격자 40명이 뽑은 ‘후배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소설’ 1위, 전국 국문과 대학생 150명이 뽑은 ‘가장 좋은 소설’ 1위, 서울대학생 1천 명이 뽑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소설’ 1위, 20~30대 사무직 남녀 6백 명이 뽑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 1위, ‘한국인에게 큰 감동을 준 작품’ 1위 등 도서부문에서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08년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식(전남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 태백산맥이 시작되는 지점)을 갖게 된다. 기회가 되면 꼭 벌교를 가 볼 참이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성에 빠지면서 태백산맥 10권, 아리랑 12권, 한강 10권을 구매하여 2월 중순부터 태백산맥 읽기 시작하여 오늘(4월 18일)에 마지막 장을 넘겼다. 2달 만에 태백산맥 10권을 다 읽은 것이다. 눈이 아프기는 했지만 마음이 끌려 계속 읽게 되었다. 아마 나의 생애에서 장편소설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적은 없다. 토지 12권을 1년에 걸쳐 읽은 적은 있지만 …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성격, 특성, 역할, 직업, 가족생활, 삶의 방식을 소중히 다루며 시대적 배경, 민중의 소리, 애환, 일체 강점기의 삶, 무당의 삶, 종교적인 삶, 역사적인 현실을 사실 중심으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구성하여 흥미와 깨우침과 뉘우침과 열정과 사랑과 힘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나는 이 책을‘자녀들과 제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1위, ‘죽기 전에 꼭 한 번 읽어야 할 책’1위, ‘슬픔과 아픔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1위로 선정한다. 이제 아리랑 12권을 읽어야겠다. 앞으로 20년 동안 1,000권의 책을 읽는다. 하느님께서 나의 눈의 건강을 허락한다면
올해(4월 18일) 읽은 책(죽음 후에 무엇이 오는가?, 황홀한 글감옥, 눈물, 태백산맥 열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