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성지순례

미리내성지순례(2)

기도하는 어머니 2015. 9. 15. 00:17

미리내 성지순례(2)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031-674-1256

미리내 성지에서 9월 11일 하상의 날 행사가 있었다. 졸업생과 재학생의 교류을 통하여 동문의 활성화 방안과 졸업 후의 활동을 듣고 배우는 시간을 갖고자 23기가 행사를 주관하였다. 24기는 인원동원에 협조하였고 안내 봉사를 맡았다. 103위성인 기념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선후배 간의 나눔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난타공연과 웃음치료사 24기 한현자 세실리아 자매가 헌신적으로 봉사해 주어서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모두가 호탕하게 웃음으로 화합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리고 12일 성당 봉사자들과 함께 도보성지순례에 올랐다. 은이성지에서 미사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한 후 바로 신덕의 길을 걸었다. 이민식 빈첸시오가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을 새남터에서 미리내 성지까지 옮겼던 그 길을 도보로 걷는 것이다. 이민식 빈첸시오는 당시 17세로 김대건 신부님이 사제품을 받고 사목활동을 했을 때 복사를 섰던 소년이었다. 이민식 빈첸시오는 파수군졸의 눈을 피해 김대건 신부님이 치명한지 40일이 지난 1846년 10월 26일 몇 몇 교우들과 시신을 한강 새남터 백사장에서 빼내는데 성공했다. 그는 시신을 가슴에 안고 등에 지고 함한 산길로만 1백 50여리 길을 밤에만 걸어서 닷새째 되는 날인 10월 30일 자신의 고향 선산에 있는 미리내에 도착하여 신부님을 무사히 안장 시켰다. 어린 소년의 마음에 이토록 큰 사랑과 용기를 심어준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느님에 대한 열절한 사랑과 김대건 신부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도보성지순례는 침묵으로 묵상하며 걷는 것이어서 마음을 집중하고 천천히 걸었다. 묵주기도 20단을 봉헌하며 걷는데 태아기에서부터 30세까지의 삶이 조명되었다. 딸, 누나, 언니, 학생, 친구로서의 삶을 묵상하며 이런저런 일을 참회하고 마음의 눈물을 흘렸다. 어렵고 힘든 환경이었지만 늘 희망을 가슴에 품고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살았던 지난날이 감사했다. 20단 묵주기도가 끝날 즈음 와우정사에 도착하였고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화장실 다녀오고 사진도 몇 장 찍은 후 망덕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마을길을 걷기도 하고 오르막 내리막 길을 걷기도 하였다. 앞장서 기를 인도하는 총회장님이 고마웠다. 천국길도 누군가 반드시 인도해 줄 것이다. 망덕의 길에서는 30세에서 60세까지의 삶을 묵상하였다. 엄마, 아내, 교사의 삶에서 잘못한 모든 것을 반성하며 주님께 용서를 청하였다. 33세에 영세를 받고 지금까지 매일미사, 묵주기도, 성경읽기, 성사생활을 꾸준히 할 수 있었음이 감사했다. 오랫동안 걸어서 다리도 아프고 발가락도 아팠지만 인내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걸었다. 마지막 고개인 애덕 고개에 이르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미리내 성지까지 0.48km 밖에 남지 않아서 홀가분해졌다. 이때부터는 쭉 내리막길이어서 마치 나의 인생이 내리막에 이른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앞으로 30년의 인생프로그램을 새롭게 확립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묵주의 기도 20단을 봉헌하였다.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삶, 1년에 한 번씩 성경을 완독하고 매일미사를 살며 사랑을 실천하는 삶,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성지순례를 하여 한국의 성지 111곳을 모두 순례하는 것, 해외 성지 순례도 기회가 될 때마다 가는 것, 성지순례기를 써서 블러그에 올리는 것 등을 결심하였다. 성지에서 김대건 신부님과 페레올 주교님의 묘역, 김대건 신부님의 어머니 고우르술라의 묘역를 참배하며 성인들의 삶을 배우고 실천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인묘역 참배 후에는 103위 순교성인기념 성전에 들어가서 잠시 인사를 드리고 성지 입구로 내려왔다. 2015년 9월 12일